Category Archives: 미분류-경제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으며 드는 상념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정상과학의 새로운 전통이 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이행은 옛 패러다임의 명료화나 확장에 의해서 성취되는 과정, 즉 누적적 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에 근거해서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그 분야 패러다임의 많은 방법과 응용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는 재건 사업이다. 그 이행 시기에는 옛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에 의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크게 중복될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최근에 통찰력 깊은 어느 과학사학자는 패러다임 변화에 의한 과학의 재편성에서의 고전적 사례를 고찰하면서, 그런 변화는 “지팡이의 다른 쪽 끝을 집어 올리는 것”으로서, 그것은 “똑같은 자료 더미를 이전처럼 다루되 그것들에 종전과는 다른 테두리를 부여함으로써 각각의 자료들을 새로운 관련 체계 속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 포함되는 과정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토머스 S. 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2013, 까치, p175]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표현은 토머스 S. 쿤을 모르는 이들조차도 즐겨 쓰는 표현이다. 주로 쓰는 이들은 기존 여당을 물리치고 새로 권력자가 된 야당 지도자랄지, 회사가 위기에 빠졌거나 혹은 직원들이 너무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기업 경영인이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주문한 어떤 유명한 재벌 총수도 당시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표현을 적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표현이 풍기는 뉘앙스를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것이다.

인용한 부분은 저자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지는 의미를 핵심적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저자의 의미 해석에 따르면 “한 동안 연구자들의 커뮤니티에 모델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과학적 성취”를 의미하는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은 ▲ 누적적인 과정과는 거리가 멀며 ▲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중복될 수는 있으나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 지팡이의 다른 쪽 끝을 집어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쓰이는 코페르니쿠스 혁명 이전의 천문학계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고대의 체계 중에서 가장 자연에 잘 들어맞는 이론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행성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예측은 코페르니쿠스의 것만큼이나 잘 들어맞아 그 계산법은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프톨레마이오스의 패러다임이 옳다는 증거는 아닌 것이다. 지팡이의 다른 끝을 들어 올린 것이니 말이다.

스스로를 일종의 사회“과학”으로 여기고 있을 경제학계에도 물론 이러한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크게 보아 아담 스미스, 칼 맑스, 존 메이나드 케인즈, 밀턴 프리드만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기존 패러다임을 파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운 이들일 것이다. 다만 경제학계가 다른 과학계와 다른 점은 그러한 패러다임이 한 시대를 압도할 수는 있어도, 과학의 패러다임이 그러한 것처럼 이전의 패러다임을 폐기시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에서는 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관찰도구의 발전도 병행한다. 연구는 제반 변수들이 제거된 순도 높은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기존 패러다임이 새로운 변칙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해진다면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폐기시킬 정도의 파괴력이 없는 이유는 이러한 순도 높은 환경의 조성이 어렵다는 이유일 것이다. 더 중요하게 경제는 정치적 의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정치적 의지를 지니고 있는 집단, 특히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한 집단이 권력을 갖게 되면 그들은 대개 그러한 사익에 복무할 자세가 되어 있는 관변학자를 동원해 과학으로 둔갑한 경제이론으로 그들의 사익추구를 정당한 공익적 행위, 심지어는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행위로 둔갑시키고는 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자가 잘 살아야 빈자도 잘 살게 된다는,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적하이론(trickle-down theory)”일 것이다.

즉, 경제학이라는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그들이 관찰하는 환경은 자연과학에서의 그것처럼 순도 높은 환경이 아니며, 많은 비합리적인 인간들이 – 또는 연구를 진행하는 본인조차도 – 그 환경 안에 들어가 행동한다는 점일 것이다. 자연과학은 그래도 때가 되면 자신이 지팡이의 다른 쪽 끝을 잡고 있었음을 인정하겠지만, 경제학에서는 오히려 지팡이를 잡은 적도 없는 이들조차도 지팡이가 자기 것이라고 우길지도 모른다.

“재능기부” 단상

# 재능기부가 적어도 진보적이진 않은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사견으로 맑스주의적이진 않다. 맑스는 합법적인 시장에서도 노동이 착취당한다는 입장이었다. 돈이 아니라도 반대급부가 없는 기부란 이름으로 시장 외 영역에서 추가 착취가 진행되는 상황은 더 나쁘다.

# 그 반대급부가 현재의 상상력으로는 시장 내에서의 가격이 되겠지만 만약 협업이나 기부 등을 통해 협업자/기부자에게 사회가 돌려주는 어떤 효용이 있다면 – 예를 들면 기본소득? – 선순환은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기부강요는 착취일 뿐.

# 아무리 이름을 바꿔도 “재능기부”는 이미 시장외의 영역에서 “자원봉사”란 이름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전적인 자율적 의사에서 비롯된 노동은 계속 자원봉사라 부르면 된다. 재능기부라고 새로 호칭하는 맥락은 아직도 의아하다.

# 어떤 이가 정확히 지적했지만 “재능기부”는 결국 자기 재능으로 받았어야 할 돈을 기부하는 “임금기부”다.

# 혹시 “재능기부”란 표현을 만든 이가, 기부자에게 “당신은 재능을 가진, 남보다 우월한 자이니 베풀 여유가 됩니다”란 선민의식을 부추길 요량이었다면 상당히 악랄한 의도랄 수 있다.

# 결국 누군가의 무임노동이 필요하면 “재능기부 해주세요”하지 말고 “무임노동 해주세요”라고 해야 한다. “재능기부”란 표현으로 가장 크게 힐링받는 이는 줘야 할 돈을 안 주고 노동만 향유하는 이다.

“소비는 무의식으로 하고 의식으로 합리화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에 1,110달러를 휴대전화 서비스에 지불했던 미국인들은 2011년 1,226달러를 지불했다. 같은 시기 이들은 식료품에서는 48달러, 의료비는 141달러, 오락비는 126달러 정도 지출을 줄였다. 이 덕분에 미국의 이동통신사들의 매출은 2007년 220억 달러에서 2011년 590억 달러로 대폭 증가하였다.

튜어스 가족의 스마트폰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인데, 이는 그녀가 아무리 오래 웹을 서핑 하더라도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폰으로 거의 매일 “Covert Affairs”나 “Grey’s Anatomy”와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튜어스 씨는 이제 3년 된 스마트폰들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존은 이번 여름에 고객들에게 지원금으로 전화기를 업그레이드하길 원할 경우 무제한 데이터 요금을 포기해야 한다고 고지했다.

튜어스 씨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새로운 첨단 전화기를 제 값을 다 주고 사기 위해 1천 달러 이상을 함께 지불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비디오 감상 버릇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지도 모르는 버라이존의 단계별 데이터 요금제를 받아들여야 할지 셈하고 있다.[Cellphones Are Eating the Family Budget]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많은 미국인들은 – 물론 많은 한국인들도 – 가족마다 한 대씩 휴대전화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 휴대전화는 단순한 전화기능을 넘어선 복합기능의 기기였기 때문에 인용문의 튜어스 씨와 같은 소비패턴이 일반화되었다. 전화기로 게임을 하고, 트위터를 하고, 영화를 보고. 아~ 그리고 전화통화도 한다.

Blackberry 8900 ColorIsOff.jpg
Blackberry 8900 ColorIsOff” by LP-mn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블랙베리 스마트폰

유선전화기 하나를 집에 놓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쓰던 – 그래서 가족 몰래 사귀는 연인들을 애타게 했던 – 소비 패턴은 휴대전화가 등장한 이후 급속하게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는 더욱 다양한 소비 패턴이 일상화되었다. 애플과 같은 인기 있는 하드웨어 회사는 주기적으로 기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소비욕구를 자극시킨다.

과연 휴대전화 서비스가 다른 지출을 줄이고서라도 즐길만한 쾌락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일까? WSJ의 설문에 따르면 현재 대다수(66.8%)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그간 지출을 늘려온 것을 보면, 우리의 소비가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EBS에서 방영한 자본주의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소비는 무의식으로 하고 의식으로 합리화 한다”라는 멘트가 나왔다는데 어쩌면 미국인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그러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이동통신사들이 너무나 요금제를 복잡하고 교묘하게 해놓아서 자신들이 뭘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모를 수도 있고.

주요 야당의 총선 공약 단상

각 주요 야당의 총선 공약집을 보고 적은 트윗을 정리했습니다. 당의 순서는 가나다순.

녹색당(공약보기)

  • 핵폐기의 대체에너지 태양열, 태양광, 풍력 에너지 중심 조력, 폐기물에너지 고려치 않음. 사실 태양광은 설치지역의 식생 초토화 풍력에너지도 소음 및 자연 파괴의 부작용이 있음. 반면 폐기물에너지는 기존 화력에 보조연료로 환경영향이 제일 적음.
  • 당칼라에 맞게 에너지 공약이 전면에 나서 구체적인 수치와 계획을 나열하고 있음. 하지만 스마트그리드 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것이 의아함. 혼잡통행세의 경우는 서울시 예에서 보듯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
  • <귀농자들, 그리고 최저규모 이상의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농민기본소득을 보장>ㅎㅎ 사회당의 공약이 여기에서 등장.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는 오히려 현실성이 느껴지기도 함.
  • 진보신당 측 @GeumMin 의 의견 : 기본소득을 농민이라는 한 계층에게만 주는 것은 WTO 위반이라 제소됩니다. WTO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경우만 정합적입니다. 전 국민이나 특정 연령층에 주는 것은 위반이 아닙니다. @sepials @economicview @freesty0811
  • 동물권 강화를 주장하는 녹색당 공약 중 “토끼도 웃고 나도 웃어요! 경제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실험 금지” 공약 중에 가장 귀여운 공약이 아닐까 하는. 토끼야 미안하다.
  • “반려동물 진료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정책 등은 생명을 경제 원리로 바라보는 관점을 확산” 부가세는 과세원 확보가 근본목적이라 개인적으로 생각. 들쑥날쑥 기준이 없는 동물병원 진료비와 적정치료의 기준을 확정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 “suicide food 광고(동물이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이나 동료를 먹으라고 권하는 모양새의 광고) 금지” 이건 전적으로 찬성. 지난번엔 “행복한 돼지”라는 고기 집 간판도 목격. 너 같으면 너 먹는데 행복하겠니? -_-;
  • “채식인의 선택권 보장과 채식문화 확산을 위한 제반 법령 입법화” 비록 육식을 하지만 이 공약에 찬성. 우리나라는 채식에 대한 개념이 너무 희박. 예전 어떤 이가 채식주의자라고 하자 옆자리 동료 왈 “그럼 핏자먹어요~”

민주통합당(공약보기)

  • 민주통합당 공약 “보편적 복지를 위한 공공 및 민간부문에 35만개 괜찮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우리는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선입견이 있으나 실은 복지분야엔 많이 부족. 이런 일자리를 늘려 고용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에 찬성.
  • “현행 최저임금은 시간당 4,320원(2011년 기준),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32.0% 수준으로 OECD 19개 국가 중 16위에 머물고 있음” 민주당 공약집 中 안 좋은 것은 죄다 우리 차지야 암튼
  • “노조 조직율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고, 산별교섭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양극화를 해소하는 주요 방안 중 하나” 결국 노조조직률 증대 및 산별노조 강화를 통한 협상력 강화가 노동조건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경로라 생각됨
  •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를 제외하고는 집단해고 제한” 정리해고의 법근거를 만든 당으로써 여전히 무책임한 말장난. 어떻게 되면 ‘긴박한 이유’일까? 그 말을 만들면서 생각은 안 해봤나?
  • “사외이사 1인에 대한 노동자 대표의 추천권 보장” 이거 감질 맛나게 1명이 뭐야?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참고로 진보신당은 “노동자평의회가 선출한 노동자 이사가 주주 총회 선출 이사와 동수로 총감독 이사회에 참여”
  • “사모펀드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은행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경우 은행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지배에서 확인된 바 있음” 참나~ 주범인 민주당이 뻔뻔하게 이런 말을 잘도 하고 있군.
  • “MB정부가 추진 중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의 민영화를 일단 중지하고, 공적 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 재검토” 산은이랑 정책금융공사랑 다시 합치는 것 아냐?
  • 민주당 공약집, 역시 집권의 경험이 무섭긴 하다. 그 공약에 찬성 여부를 떠나 각론이 강하다.
  • “불평등한 한·미 FTA의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개정하고 양국 간 이익 균형을 회복하여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FTA로 발전” “좋은 FTA”등장. 대안도 없음. 참고로 통진당은 남미 사회주의 블록의 ALBA등을 대안으로 제시.

진보신당(공약보기, 그리고 여기)

  • “국민연금 소유 지분을 통한 경영의 공적 개입” 역시 연금을 거론하고 있다. 이게 의회주의 좌파정당의 마지노선인 것 같다. 사실 민노당 시절에도 심상정의 공약이 가장 급진적이었다. 노회찬이나 권영길은 거의 “경제민주화” 수준이었던.
  • 에너지공약 “재생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TIF) 부활, 재생가능에너지의무할당제(RPS) 요건 강화” RPS요건 강화는 맘에 듬. 발전차액과 RPS를 동시에 구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 재벌공약 “삼성이 노동자-국민을 지배하는 ‘삼성 공화국’이 아니라 노동자-국민이 삼성을 통제하는 ‘노동자-국민 기업, 삼성’으로 전환” 통진당엔 없는 대표적 경제공약. 필시 총선에 출마하는 정당 중 가장 급진적인 공약일 것임.
  • “2011년 12월 현재,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소유 지분이 5.17%인 데 반해 국민연금은 5.95%를 소유하고 있음” 진보신당 공약집 중에서
  • 대기업 중에 물론 소위 “총수”의 지분보다 국민연금의 비중이 더 많은 기업도 꽤 될 것이다. 그럼 수치상으로 총수보다 연금이 더 지분을 소유하면 기업의 사회화가 가능할까? 그들의 부채는 실은 연금은 하지 못할 그룹사의 보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storystroy 주주지분을 획득하지 않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대표적으로 “이해자 자본주의”에서 주장하는 노동자나 소비자의 경영참여가 있겠죠. 소비자는 다른 의미에서 주주라 할 수 있고 노동자 경영참여도 우리사주란 방식으로도 하지만요.
  • 진보신당 공약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평일 중 하루를 휴일로 지정하는 대체휴일제 도입 ” 오예!!
  • 세수공약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부과”가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이고 진보신당 역시 과거 민노당 공약이었던 “부유세”는 언급이 없음.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여겨짐.
  •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으며, 우리나라 주택불균형의 가장 핵심은 공급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배체계에 있음.” 통진당의 임대주택100만호같은 공약이 없음. 보급률을 근거로 공급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짐.

통합진보당(공약보기)

  •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금지 법제화” 통진당 어느 분의 희한한 명함과 오버랩되면서 묘한 느낌이 드는 공약.
  • 통합진보당 증세방안 “상장주식/파생상품 양도차익 과세신설,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 종합부동산세 정상화” 예전 민주노동당의 “부유세”보다도 후퇴한 공약.
  • 대박이네요! RT @ahnjunsang 황선후보의 777대박전략을 모르시는군요. ㅋㅋ
  •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 강화” 그 제도를 시행했을 때 거의 태양광으로 집중되는 부작용이 발생. 발전회사의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현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가 낫다고 생각됨.
  • “외평기금 축소” “외평기금을 동원한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 대기업 혜택” 심상정의 냄새가 물씬 나는 공약으로 개인적으로 찬성. 시장자유주의를 부르짖는 기업과 학자들은 왜 이건 비판하지 않는 걸까?
  • 통합진보당 공약 “통신,정유사 재공공화” 필요재원은 국민연금/퇴직연금/우리사주조합 활용. 역시 심상정 냄새 물씬. 레닌의 코맨딩하이츠도 연상됨. 요는 국민연금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이 제도를 영구화할 것인가 하는 점.
  • “공공임대주택 100만호” “재원의 반절을 국민연금에 의존, 나머지는 국채발행” 이거 국민연금을 주머닛돈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연금 역시 적정수익을 창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수익펀드임을 알아야 할 것.
  • @chonae 통진당의 안을 보면 국민연금 투자분은 전체의 절반, 나머지는 국채발행이고 수익률은 7% 보장입니다. 관리비의 반은 국가가 지원하는 형태고요. 그 정도면 세입자의 부담분은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결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homme73 공공임대주택 공급방안을 들여다보니 현재 시행되고 있는 BTL민간투자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연금 및 시중 투자자들도 참여하고 있고 적정수익률만 보장해준다면 윈-윈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고 여겨집니다.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어떻게 하는 것이 공익일까?

개통한 지 40년이 넘어 곳곳의 도로 노면이 훼손됐고 방음벽 시설도 노후했다. 그런데도 통행료 800원을 내야 한다. 시민 김진형(50·인천시 옥련동)씨는 “시도 때도 없이 막혀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인데 왜 통행료를 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시민과 시민단체가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운동에 나섰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등 4개 시민단체와 30명의 공익소송인단은 1일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중단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수원지법에 냈다.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다.[“경인고속도 통행료 폐지하라”]

경인고속도로의 이용자로서는 분통터질만한 일이다. 불가피한 이유로 계속 그 도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용자라면 자신이 내는 통행료가 해당 도로의 정비개선에 쓰이는 것 같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날 법도 하다. 더구나 공익소송인단이 주장하는 바, 1968년에 개통된 이 도로가 유료도로법 시행령에 정해져 있는 “30년의 범위안에서의 수납기간”을 어기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유료도로법 시행령 제10조 (통행료의 수납기간 등) ① 유료도로관리청은 법 제16조의 규정에 의하여 30년의 범위안에서 통행료의 수납기간을 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인용기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02년, 법원은  유료도로법에 명시된 ‘통합채산제’를 근거로 “고속도로 추가 건설을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요금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특정 고속도로에 대한 통행료 인하나 폐지가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결국 경인고속도로의 관리청인 한국도로공사는 통합채산제로 운영되니까 제10조의 수납기간의 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여겨진다.

유료도로법 제18조(통합채산제) 유료도로관리청 또는 유료도로관리권자는 2 이상의 유료도로가 다음 각호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당해 유료도로를 하나의 유료도로로 하여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유료도로관리권자는 유료도로관리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 유료도로에 대한 유료도로관리청 또는 유료도로관리권자가 동일할 것
2. 유료도로가 교통상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
3. 유료도로에 대하여 통행료를 통합하여 받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것

2002년 법원 판결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유료도로법 제18조의 통합채산제의 내용을 근거로 한 도로의 수납기간이 30년을 넘어도 된다는 취지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행령 제10조의 입법취지가 한 개의 도로만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이를테면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시행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법원의 판결이 전혀 엉뚱한 것만 아닐 것이다.

즉, 한국도로공사는 전국에 수많은 도로들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일을 업태로 하여 유지되는 회사이고, 도공이 운영하는 도로들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지 않는 한은, 경인고속도로와 같이 통행료 수입이 좋은 도로에서의 수입으로 다른 지방에 도로를 깔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자금운용은 여러 공공기업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운용행태이다.

약간은 역설적이게도 만일 경인고속도로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어진 도로라면, 공익소송인단이 법정에서 질 일은 없을 것이다. 민간투자사업은 예외 없이 한 개의 사업장에서만 영업을 하므로, 예외 없이 시행령 제10조의 수납기간을 적용하고, 실제로 경인고속도로의 하단에 지어진 제3경인고속도로 역시 통행료 징수기간이 30년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당연히 통합채산제가 아닌 독립채산제다.

이러한 독립채산제를 광의로 해석하면 소위 오염자부담원칙(PPP ; Polluter Pay Principle)이라 할 수 있다. 환경오염을 일으킨 자가 그 비용을 부담한다는 이 원칙은 도로사업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제3경인고속도로는 그 도로를 이용하는 이로부터의 통행료 징수만으로 건설비와 운영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회수한다는 개념이다. 경인고속도로는 이를테면 이러한 원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즉, 이용하는 시민들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통행료는 내고 있지만 그 돈이 해당 도로에 적절히 재투자되고 있지도 않은 것 같고, 실제로 법원도 언급한 것처럼 그 돈은 “고속도로 추가 건설을 위한 재원 확보”에 쓰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익”적 차원에서 말이다. 이쯤 되면 도공이 생각하는 “공익”과 공익소송인단이 생각하는 “공익”은 서로 모순되는 듯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도공은 지불능력이 있는 경인고속도로 이용자가 낸 돈으로 도서지방의 도로를 까는 것이 “공익”이라 할 것이고, 공익소송인단은 통행료로 적정한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 할 바에는 통행료를 폐지하는 것이 “공익”이라 할 것이다. 둘 다 별로 물러설 틈이 없어 보이지만 절충점은 결국 도공이 경인고속도로의 수입금 일부라도 해당 도로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재투자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컨대, 이런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서비스에서는 – 특히 도로와 같이 지역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 소위 “공익”이란 것의 개념규정이 참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여도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일정하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공익인지, 또는 더 나아가 오염을 유발한 – 도로에서는 교통체증을 유발한 – 이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공익인지, 지불능력 있는 이가 더 지불하여 지불능력 없는 이를 돕는 것이 공익인지는 여전히 만장일치로 통일된 의견은 없는 것 같다.

그래프의 마술

경제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곤 하지만 그래프를 별로 쓰지 않는 편이다. 생각이 좀 삐딱해서 그래프란 글 쓰는 이의 주장에 따라 얼마든지 – 완전 맘대로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정도로 – 조정(이라 쓰고 조작이라 읽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글로 쓰는 주장 역시도 불편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편향될 수도 있다. 다만 그걸 (객관적인 척 하면서) 그래프나 숫자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는 – 또는 있을 거라는 – 그 개연성이 개인적으로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참 피곤하게 사는 듯).

어제 트위터에 이런 평소의 소신(?)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프를 하나 소개했다. 아래 보시는 그래프가 트위터에 소개한 미국의 최근 5년간의 설비가동률 그래프다. 2005년 내내 80%이상을 웃돌던 설비가동률 수치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9년에는 70% 아래까지 극적으로 내려갔다가, 현재는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2008~2009년을 포함한 각종 경제 관련 그래프는 이 그래프처럼 모두 유례없는 급격한 하강 또는 상승세를 기록했으니 만큼 놀랍지 않은 편인데 금년 들어 수치가 나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하튼 재밌었던 점은 이 그래프에 대한 트위터 이용자들의 다양한 반응이었다.

@Windholder 하지만 y축의 마술은 주의해야 됩니다.
@jihawkchoi 지나치게 드라마틱해서 지속가능성이 의심스럽네요
@taeri77 2번째 대공황을 막았다는 수많은 증거 중 하나
@nextofsearch_kr 충격적이네요.. 헐…

그래프의 극적인 면에서 놀라는 분,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는 분, 약간 회의적으로 보시는 분, 그래프의 착시현상을 지적하시는 분 등 참으로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일단 @Windholder 님의 의견을 살펴보면 그 분의 말씀은 결국 2009년 최저치가 최고치에서 15%정도 하락한 것인데 y축이 67.5%에서부터 시작하니 느낌이 배가된다는 의견일 것이다. @taeri77 님의 의견은 결국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서든 뭐든 실질적으로 제2의 대공황의 염려는 사라졌다는 것을 그래프가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분들의 의견에 대해 이 글에서 이견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저 서두에서 말한 바, 개인적으로 이 해프닝에서 그래프 역시 – 오히려 더 – 불편부당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다. 이 글에서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nextofsearch_kr 님처럼 첫 느낌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일 것이다(나도 그랬기에 소개를 한 거고). 하지만 이 그래프를 기간을 달리해서(x축의 마술) 아래와 같이 표현해보면 애초 그래프가 일종의 프레임化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설비가동률 통계를 조사한 이래 이 수치는 다른 경기변동 그래프가 그렇듯이 부침을 거듭해왔다. 첫 번째 그래프도 이전의 패턴과 유사함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2009년의 수치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긴 했지만 금융위기의 심각함을 감안하면 의외로 적게 떨어진 수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요컨대 기간의 변경만으로도 그래프의 시각적 효과는 달라진다. 이번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두 번째 그래프를, 심각하다고 주장하려면 2005~2009년 그래프를, 경기 회복됐다고 주장하려면 첫 번째 그래프를 쓰면 된다.

숫자의 착시현상

우리나라에서는 김혜수가 드라마에서 부르짖은 ‘엣지’라는 단어의 정체가 무엇이냐며 설왕설래한 바 있는데, 지금 외국의 경제학 관련 블로고스피어에서는 다른 ‘엣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James Manzi라는 경제학자가 National Affaris란 보수우익 냄새 물씬 풍기는 제목의 사이트에 올린 ‘Keeping America’s Edge’가 바로 그 엣지다.

제목을 어설픈 실력으로 해석해보면 ‘미국의 경쟁력을 사수하자’쯤으로 읽힌다. 경쟁력은 바로 ‘자유시장 자본주의(free-market capitalism)’다. 필자는 미국의 경쟁력인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주체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로 상정하고 둘 간의 비교를 통해 전자의 우월성을 주장하였다. 문제는 이 주장의 근거가 틀렸다는 것.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1980년부터 오늘 날까지, 미국의 전 세계 산출량의 지분은 일관되게 21%다. 반면 유럽의 지분은 1970년대 40% 약간 못 미치는 수치에서 오늘 날 25%까지 떨어지면서 지구적 경쟁에서 탈락할 지경에 있다. 혁신적인 자본주의 대신에 사회민주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유럽은 (대부분) 중국, 인도, 그리고 나머지 개발도상국들에게 그들의 지분을 넘겨주고 있다.
From 1980 through today, America’s share of global output has been constant at about 21%. Europe’s share, meanwhile, has been collapsing in the face of global competition — going from a little less than 40% of global production in the 1970s to about 25% today. Opting for social democracy instead of innovative capitalism, Europe has ceded this share to China (predominantly), India, and the rest of the developing world.[원문보기]

이 서술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문제다. 미국은 ‘혁신적이고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자본주의’를 채택하여 산출량이 끄떡없는데, 유럽은 사회민주주의로 경제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글은 미국의 우익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The New Public의 Jonathan Chait이 이 글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Chait는 Manzi가 그의 글에서 서술한 유럽은 사회민주주의의 서유럽뿐만 아니라 동유럽,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으로 포괄하고 있고, GDP의 기준이 되는 1980년 이후 미국의 인구는 35% 상승한 반면 유럽과 러시아는 각각 7%, 0.7% 상승한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범위설정의 오류와 산출 원단위의 왜곡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Paul Krugman 역시 이 논쟁에 가세했는데,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약 Manzi가 수행한바 유럽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 하더라도 실제 산출량은 40%에서 25%가 아닌 30%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결국 Manzi는 조사방법도 잘못 되었지만 그 숫자마저 잘못 산정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이 해프닝은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사회에서 ‘숫자의 마술’ 혹은 ‘숫자의 착시현상’이 주는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해프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숫자는 공평하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이 논쟁에서도 숫자는 가장 정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인운하 사업성 분석, 주식의 기술적 차트, 세종시의 발전상, 원자력발전소의 수주금액 및 향후 기대수익 등은 하나같이 뛰어난 학식을 갖춘 전문가들에 의해 산출되어 그 기대효과가 마치 눈앞에라도 있는 것처럼 제시된다. 하지만 오늘 날 이 엄밀한 계량주의적 의사결정에 대한 맹신은 벽에 부닥치고 있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숫자는 ‘사람하기 나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숫자나 그래프만한 것이 없다. 애매하고 흐릿한 상황도 숫자를 제시하고 이를 그래프로 표현해지만 군말이 없어진다. 사실은 Manzi의 경우처럼 몇 개의 숫자를 오려붙이고 산식을 꼬면, 또는 추세선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數)는 결국 사람이 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