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예전에 올린 포스팅 재탕입니다. 오리지널은 1998년, 그러니까 11년 전에 썼던 글이로군요. 장르는 ‘어설픈 리얼리즘 하드코어’ 쯤 될까요. 제목은 ‘가족이야기’입니다. 심심할 때 읽으세요. 🙂 

<최성호>

교도소문을 빠져나왔다. 당장 공기가 달라지는 것만 같다. 옅게 깔린 구름은 교도소 안에서와는 또다른 감흥을 안겨주고 있었다.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두분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금새 눈이 붉어지면서 아버지를 채근해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지는 코트에 두 손을 넣은 채 말없이 서계셨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아버지는 말없이 운전만 하셨고 어머니는 연신 ‘교도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느냐’, ‘이제 네가 집에 왔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등의 위로를 해대셨다. 차안에서도 내내 멍하던 나의 의식은 동네 골목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3년간의 짧지 않은 감옥생활, 그 세월동안 나의 의식은 정지해 있었다. 물론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책도 읽고 주요시기마다 정치투쟁도 벌여 동료들간의 연대의식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나의 대외적 모습이었다. 나의 육신은 갇혀 있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의식의 정지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참을 수 없는 폐쇄공포로 말미암아 나는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문을 열어준 것은 성길이었다. 인터폰으로도 열 수 있었을 텐데 궂이 마당까지 나와 문을 열고는 나의 눈을 어색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성길이는 쭈뼛거리며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며 나의 등을 밀었다.

실로 오랜만에 3평짜리 안방에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았다. 어머니는 깍아온 과일을 이쑤시개로 찍어 나에게 권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과일을 받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을 꼰채로 말없이 앉아 계셨고 성길이는 애써 외면하며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아버지셨다.

“이제 가족이 모두 같이 모이게 됐으니 참 좋구나. 음… 그리고… 성호없는 동안에… 너에겐 애써 말할 필요가 없다 싶어서 미뤄둔 것이지만… 애비가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었단다.”

‘아… 소위 말하는 구조조정의 여파가 우리 집에도…’

“에… 나는 명예롭지 않게 회사에 남는 것보다도 명예롭게 그만 두는 편이 낫다 싶어서 니 애미와 상의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셨다. 어머니와 그런 문제를 상의할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리고 난 아직 한창 일할 나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간 있는 돈으로 조만간 이런 저런 일을 해볼 계획이다. 내가 너희 둘에게 말하고 싶은 건 모쪼록 이런 집안 사정을 알고 국가도 좋고 민족도 좋지만 이제 집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며칠을 멍하니 집에만 있었다.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며칠째 광고까지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에 반갑게 웃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오라는 말에는 애써 사양했다. 나 자신이 아직 갈팡질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무채색이던 세상이 점차 유채색으로 바뀌어 갔다. 마당에 나가 청소도 하고 어머니가 외출하셨을 때는 혼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 마음을 차지해가는 한가지 생각은 가족을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4학년 1학기쯤 영어생활을 시작한 나의 인생,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1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을 할 것이고 어떡하든 직장을 잡아서 집안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깻다. 언뜻 창밖을 보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방안을 둘러보니 성길이가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어디 나가니?”

성길이는 내가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성길이가 만류했지만 성길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최근 며칠간 내가 나태해졌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성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성길이가 아직 서먹한 모양이다. 나는 서랍에서 체육복을 꺼내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었다. 아직 해가 짧은 탓에 이른 아침에도 밖이 어두운 것이었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아침준비를 하고 계셨다. 운동을 하고 오겠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감싸고 돌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우리 둘은 말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사실 형제라고는 하지만 그리 공통점이 많은 형제는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모범생 소리를 들어가며 무난한 학창생활을 보내다 대학에서 학생운동권이 되어버린 나, 중학교 때부터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다 소년원을 갔다 오고 급기야 고교졸업후 강도 짓으로 교도소까지 갔다온 동생….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종착지는 같았다. 숨막힐 듯한 교도소 생활. 동생은 나보다 한달 먼저 들어가서 한달 먼저 출소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뒷산 공원은 널찍하게 터를 닦아 놓고 이런 저런 체육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었다. 배드민턴장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평행봉에서는 중년의 아저씨가 섣부른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는 딱히 무슨 운동을 하려고 여기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달리 할게 없었던 것이다. 동생과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성길이가 어디로 가고 없었다. ‘어디 갔지? 화장실 갔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벤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운동을 하러 나온다는 핑계로 담배만 더 피우게 된 꼴이었다.

담배를 두 대 피우고는 어슬렁거리며 산책로로 천천히 푸드웤을 해보았다. 한 300여 미터를 뛰고는 금방 숨이 차서 멈춰 서서는 심호흡을 쉬었다. 그리고 산아래 펼쳐진 동네경치를 바라보았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사는 삶들, 고단하고 힘든 삶임에도 무엇 때문에 그리도 삶에 연연하는지….

그때 저기서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곡선이 진 산책로라 발소리만 들릴뿐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발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길이었다. 무엇에 쫓기는 듯 급히 뛰어오던 성길이가 나를 보자 놀라서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잠시 무언가 망설이던 성길이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하고는 작은 상자를 내 체육복 앞에 달린 제법 커다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들어가기는 했지만 제법 볼록하게 모양이 드러났다. 성길이는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상황인지라 나는 성길이에게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뛰어가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10초뒤에 점퍼차림의 – 새벽 산에 오를 차림으로 어울리지 않는 – 한 사나이가 급히 뛰어오더니 나를 스쳐 산책로 아래 성길이가 도망 – 이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나? – 갔던 쪽으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머리가 혼란해졌다. 성길이의 그동안의 행동으로 보아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맡긴 이 물건도 좋은 물건을 아닐 것이다.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왠지 이런 곳에서 꺼내보기가 두려워졌다.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상가밀집지역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은 해장국집 정도였다. 심란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문득 똥이 마려웠다. 아침부터 연신 담배를 피운 탓인지 갑작스럽게 배가 살살 아파왔다. 열려있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급히 찾아 헤맸다. 큰 길에서 악간 안쪽으로 들어간 해강빌딩이라는 곳에 보니 1층에 화장실 표시가 있었다. 다행히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화장지도 있었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랫도리를 벗고는 양변기에 앉았다. 똥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또다시 체육복 상의 안에 들어있는 상자 생각이 났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상자를 꺼내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상자를 여니 신문지로 채워져 있는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권총이었다! 갑자기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뛰었다. ‘성길이 이 녀석이 도대체!’ 도대체 권총으로 무얼 하려고 그랬단 말인가? 권총을 거머쥔 손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다시 모인 가족이 이 권총 한 자루 때문에 또다시 산산조각이 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를 내면서 내가 앉아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마에선 식은 땀이 흘렀고 나는 급히 권총을 신문지에 다시 싸서 상자속에 집어넣었다. 타일 바닥을 울리는 구두소리는 문 앞에 멈추더니 천천히 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핏줄이 끊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아까 성길이를 쫓아가던 그 사나이…’

나의 응답에도 불구하고 문밖에 있는 구두소리는 그 자리에 서있는 듯 했다. 조그마한 화장실 안에 상자를 숨길 곳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안에는 휴지통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 곳에 숨겨봤자 1분이면 찾아낼 것이다. 나의 긴장감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똥 한무더기가 창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소리마저 나의 가슴을 울렸다. 구두소리는 여전히 밖에 서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구두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세 번. 이제는 세 번을 두드렸다. 나는 잠시 시차를 두고 다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그 녀석에게 들키지 않도록 상자를 체육복 안쪽에 꼭 품어 안고 있었다. 또다시 의식이 정지되는 교도소 안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세월이 멈춰버리는 그 곳으로… 놀고먹어도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놀고 싶다. 또다시 똥 한 무더기…

구두소리는 무언가 시간을 가지려는 듯 바깥으로 예의 명징한 구두소리를 내며 나갔다. 나는 서둘러 화장지를 밑을 닦아냈다. ‘이틈에 도망가자.’ 밑을 다 닦아내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헛일이었다. 그 녀석은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화장실 앞에서라도… 이곳에 권총을 숨겨놓고 나가봤자 결국 그녀석이 나를 끌고 들어와서는 권총을 찾아낼 것이다. 변기를 부숴서라도 권총을 그 속에 쳐넣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하얀 타일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영창>

성호가 출소하는 날이다. 퇴직 이후 나태해진 나는 여전히 잠자리를 뭉개고 있었다. 아내가 안방에 들어오더니 어서 나가자고 한다.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녀는 어떻게 아들이 출소하는데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성길이가 나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성길이는 한달 전에 출소했지만 나나 내 아내나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성길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할 수 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밖으로 나섰다. 성길이가 방에서 나와 아내에게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다. 아내는 ‘거길 뭐하러 또 가?’하며 거절했다. 성길이는 실망감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를 배웅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퇴출당한 가장에 감옥 갔다온 두 아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 것 같던 나의 가정이 이토록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 줄이야… 두 아들을 생각해보았다. 모범생과 문제아라는 양극단의 길을 걷던 두 녀석의 종착역은 감옥….

사실 나는 모범생이었던 성호보다는 문제아였던 성길이 녀석이 더 눈에 밟힌다. 성호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고 성길이는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둘은 서로가 가진 장점을 가지진 못했다. 여하튼 성길이는 그러한 점에서 나를 닮았다. 나역시 머리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과 뚝심으로 건설회사의 중역자리까지 꿰차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놈의 뚝심이 약삭빠른 잔머리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성길이 녀석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한다. 그 녀석 역시 나와 같은 꼴이 될까 두려워서….

교도소문이 열리며 성호가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졸업을 한 학기 앞에 두고 저지른 하찮은 시위 때문에 3년의 시간을 저당 잡힌 불쌍한 인생이다. 아내는 급히 아들 녀석에게 쫓아가 등을 어루만져 준다.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저런 애정을 성길이에게 한번이라도 내비쳤더라면… 어찌 보면 그건 비단 아내만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들을 모아놓고 퇴직 소식을 알리는 나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동안 나름대로 지켜오던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내 나이 아직 쉰셋 이제 한창 일할 맛을 익혀 가는 시기인데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한파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나갈 녀석이 없으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그 순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슬며시 화장실로 피해버리고 싶다.

성호가 집에 돌아온 며칠간 나는 여전히 싸돌아다니는 성길이와는 달리 집에만 있는 성호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부지런히 밖으로 돌아다녔다. 핑계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나와보면 막막했다. 어찌 보면 직장이라는 온상속에서만 자라왔던 나… 세상에 내팽겨지고 보니 난 그야말로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기에 불과했다.

어느 날 새벽 선잠이 깨어서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성호와 성길이가 아침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미소지었다.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부유하는 두 녀석이 같이 운동을 나간다니 슬며시 흐뭇해졌다.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결국 가장으로서의 할 도리를 할 때 가족의 평화가 지켜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성길이에게도 좀 더 살갑게 대해주리라.’ 약간은 낯간지러운 다짐을 해보며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새벽공기라도 마시며 돌아다니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만나볼 요량이었다.

신작로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왔다. ‘아차 집에서 변을 보고 나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디 열려 있는 화장실이라도 있는지 하는 생각에 어색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빌딩사이를 헤맸다. 마침 해강빌딩이라는 곳 1층에 화장실 표시가 보였다.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 안쪽 문을 두드려보니 벌써 누군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아픈 배를 달래보려고 화장실 안을 걸어다녔다. 1분여가 지났지만 아직 안쪽에 있는 사람이 나올 기색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또다시 아직 해결이 안됐다는 응답이 들려왔다. ‘할 수 없지.’ 서둘러 문을 나서 다른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최성길>

오늘은 형이 출소하는 날이다. 방에 누워 팔베개를 베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도 엥간히 속썩겠네. 자식 둘이 모두 별을 차다니….’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형을 마중 나가는 모양이다. 내가 출소할 때에는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 집으로 들어서서도 두분 중 누구 하나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살얼음처럼 지냈다. ‘살얼음 가족’.

그게 싫어서 바깥으로 부지런히 싸돌아 다녔다. 그렇지만 전에 어울리던 녀석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만화방에 가서 정말 신물나도록 만화책만 보았다.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만화책이 날 보는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와도 만화속 인물들이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 했다.

그러기를 이십일 여… 아버지에게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왠지 집안이 서먹한 분위기 더니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돈버는 재주가 없었는지 회사중역까지 했다는 양반이 24평짜리 단독주택이 재산의 전부다.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네 사람이 뭘 먹고산단 말인가? 왜 빌어먹을 IMF가 터져서 이렇게 못사는 사람만 고통받아야 하나? 하는 알량한 생각 때문에 만화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려 나는 마당까지 나가 문을 따줬다. 형이 문 앞에 서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들어 악수를 했다. 철들고는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않은 형… 그렇지만 나는 형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한다. 담배 피며 애들 푼돈을 뺏던 중학교 시절 나는 전교1등을 하는 형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부각시키며 나도 맘만 먹으면 1등은 일도 아니라는 허풍을 떨었다.

형이 명문대에 합격하던 그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내어 실컷 술을 먹였다. 마치 내가 합격이라도 한 듯이… 그러나 형이 감빵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그날 난 감빵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울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한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나의 철없는 행동에 매를 드셨지만 난 절대 그분이 감정을 가지고 매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은 과묵한 성격 때문에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왜 마중을 나오지 않았느냐’는 나의 볼멘 소리에 말없이 눈가에 물기를 닦아내며 밥을 차려주셨던 어머니…

이 가족을 내가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형이 돌아온 며칠동안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았다. 결국 배워먹은 짓이 그 짓이라고 일확천금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무슨 수로 돈을 모은단 말인가? 똥같은 돈이 가득 들어있는 은행을 털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안면이 있던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녀석에게 이틀 후에 연락이 왔다. 동네 뒷산으로 새벽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형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 나가니?”

‘빌어먹을…’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나는 만류했지만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산으로 올라오는 도중 우린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철없이 따라 온 형이 야속했다. 뒷산 공터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형 나 화장실 좀”하고 말하려는데 형은 내 말을 못들은 눈치였다. 그래서 몰래 약속장소로 향했다. 공터 위 비탈진 곳에 서있는 비석 옆이 약속장소였다.

그 녀석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상자를 건넸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상자안을 열어 신문뭉치를 헤쳐보니 검은 총대가리가 보였다. 다음 순간 수상한 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 자식이 짭새들한테 뒤나 밟히고 다녀?”

낮게 그 녀석에게 소리치자 그 녀석 역시 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대방향으로 튀었다. 얼른 공터로 뛰어내려왔다. 점퍼 차림의 짭새 한 마리가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산책로 쪽으로 급히 뛰었다. 저쪽에 사람이 한명 서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형까지 이일에 끼어들게 해서는 안되는데.’

‘그렇지만 내가 계속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나는 형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

형은 어안이 벙벙한지 아무 말도 않은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형의 손에 상자를 쥐어주려다 형의 체육복 상의 주머니가 제법 커보여 그곳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형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산 아래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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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14일 오전 7시 15분 최성호는 아직 해강빌딩의 화장실에서 벌벌 떨고 있었고 최영창은 바지 안에 똥을 지리고 말았고 최성길은 뒤쫓아오던 형사의 배를 가지고 있던 재크나이프로 그었다

4 thoughts on “가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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