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선진국 대한민국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2015).jpg
By Wei-Te Wong – https://www.flickr.com/photos/wongwt/27202724082/, CC BY-SA 2.0, Link

탄핵에 관한 남한의 경험은 매우 드문 장면이다. 내가 공동으로 저술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탄핵이 성공한 것은 단지 열 번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한은 다른 이들이 따를만한 가치 있는 선례를 남겼다. 어떤 이는 민주적으로 선출한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탄핵은 민주주의를 보호함에 있어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략] 그들의 결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인증은 – 요컨대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한 합법성의 체크 – 또한 입법자들이 당파적으로 온당치 못했다는 비난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헌법재판소의 최종 점검과 새로운 선거를 조속히 치루는 절차가 미국의 시스템에는 없고, 이는 명백히 더 열등한 것이다. 남한 헌법의 제정자들의 현명한 선택 덕분에 탄핵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하드 리셋’으로 작동하고 있다.[South Korea’s Impeachment Battle Is Democracy in Action]

어느 위정자의 광기어린 행동덕분에(?) 한국의 탄핵 절차가 때 아닌 칭찬을 받고 있는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다. 개인적으로는 12월 3일 10시 30분쯤 뉴스를 접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켜니 “비상계엄” 운운하는 기사가 보여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소통과 협력이라는 단어를 업무에 적용하지 않았던 검사 출신의 신출내기 위정자가 과연 어디까지 극단적으로 갈 수 있을까가 걱정이 됐는데 현재까지는 한 극한치의 60% 이상은 보여준 것 같다. 그 덕분에(?) 국민은 지금 87년 헌법의 약점이 무엇인지 실전으로 익히고 있다.

저자가 한국의 시스템을 칭찬하고 있지만, 위정자 하나가 멋대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끔 해놓은 이 시스템은 이제 온당치 못하다. 냉전의 공포를 극대화하여 정권을 연장했던 우익 정권의 짙은 그림자가 21세기 한국을 또다시 군홧발에 내던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견고하다 할지라도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자아를 가진 인간이기에1 언제든지 남용, 오용, 전복될 수 있다. 그래서 상호검증을 위해 권력분점과 견제장치를 두고 있지만,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광기에 대응한 저항은 이성(理性)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현 대의정치 체제의 딜레마다.

부디 이번 비극이 새로운 희망을 낳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1. 오히려 요즘은 이제 그 운용을 AI의 손에 맡겨두면 더 혼란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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