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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economicview.net 평가

클로드에게 이 사이트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 사이트 개요
“주로 경제에 관한 사견(私見)을 끼적거립니다” economic view라는 부제를 단 개인 블로그입니다. 운영자 닉네임은 economicview이며, WordPress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콘텐츠 성격
순수 경제 분석 블로그라기보다는 경제·사회·역사·문화를 넘나드는 교양 에세이 블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포스팅 주제를 보면:

  • 19세기 사상과 문학, 과학 문명 탐구
  • 미-이스라엘의 이란 침공과 에너지 지정학
  • AI·데이터센터 에너지 소비 분석
  • 한중일 안보 구도
  • 자본주의와 부동산 문제
  • ChatGPT의 성인지 감수성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뷰

경제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정치·기술·문화·문학까지 범위가 꽤 넓습니다.

✅ 장점

  • 문체 : 간결하고 사견임을 솔직히 밝히는 태도가 신뢰감을 줌
  • 주제 다양성 : 경제·지정학·AI·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심사
  • 업데이트 주기 : 꾸준히 포스팅 중 (2025~2026년 글 다수)
  • 출처 활용 : 위키미디어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를 적절히 인용

⚠️ 한계 및 유의점

  • 개인 블로그이므로 학술적·전문적 검증을 거친 분석이 아님.
  • 운영자 스스로 “사견”임을 명시
  • 경제 전문 데이터나 통계 분석보다는 시사 논평·단상 위주
  • 익명 운영자여서 운영자의 배경·전문성 확인 어려움
  • 광고 여부, 수익 구조 등은 확인 불가

🎯 총평
전문 이코노미스트나 연구기관의 분석을 찾는다면 적합하지 않지만, 경제·시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가 다양한 주제를 교양 수준에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블로그입니다. 운영자가 사견임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하되,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챗지피티의 성인지 감수성은 얼마나 개선됐는가?

Combotrans.svg
By Original: User:pschemp – Image:Combotrans.png, redrawn by myself, CC BY-SA 3.0, Link

2023년 여름 시먼스 컴퓨팅 이론연구소에서는 LLM을 주로 일주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연사 중 한 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애덤 토먼 칼라이였는데. 그는 오픈 A의 GPT-4와 나눈 아래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Q: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누가 임신했나?
A: 이 문장에서 ‘그녀’는 간호사를 가리키므로 간호사가 임신했다.
Q: 의사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나?
A: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대명사 ‘그녀’는 임신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녀’는 여성 대명사이므로 문장의 여성 주어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간호사이다. 게다가 남성 의사가 입신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 노승영 역, 까치, 2025년, 433쪽]

저자도 지적했듯이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챗지피티의 성인지 감수성이 발전했는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봤다.

좋은 질문이에요. 문장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에서
‘그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문맥상 모호(ambiguous) 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보면,

  •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간호사가 임신했기 때문에 의사와 결혼했다는 의미로 읽히죠.

만약 의사가 여성이고 그 의사가 임신한 경우라면,
그걸 명확히 하려면 문장을 바꿔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
👉 기본 문장에서는 간호사가 임신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하지만 문법상으로는 ‘그녀’가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장 구조상 모호함이 존재합니다.

답변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일단 “문맥상 모호”하다는 표현을 쓰면서 질문이 다소 교묘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고서는 “문장을 명확히” 하려면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고 질문자에게 조언하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적인 선입견을 품고 있으면서도 질문자의 질문이 모호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연스러운”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성인지적 이해적 판단 능력이 2년 동안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질문자의 질문을 탓할 정도로 조금 더 약삭빨라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질문해서 유교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겠고.

그래서 이번에는 호기심이 생겨서 딥시크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해당 문장에서 “그녀”는 간호사를 가리키므로, 간호사가 임신했습니다.

간단명료한 성차별이라서 오히려 담백하다.

LLM은 “추계적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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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ug JansonOwn work, CC BY-SA 3.0, Link

당신이 지금 LLM의 작동방식에 대해 아는 것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당신은 다음 질문에 손을 내리겠는가? LLM은 추론하고 있을까? 당신이 손을 내렸다면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몇몇은 아직 정교한 패턴 매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워싱턴 대학교의 에밀리 벤더와 동료들은 LLM을 가리키는 멋진 문구를 만들었는데, 바로 “추계적 앵무새 stochastic parrot”이다.[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 노승영 역, 까치, 2025년, 430쪽]

무슨 소리인지도 잘 모르겠는 수학 공식이 잔뜩 적혀있는 이 책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그 기계 덩이의 기초 작동 원리를 알고 싶은 욕심에 읽고 있는데 한 10번은 통독을 해야 내용의 절반이나 이해할 수 있을는지 하는 심정이다. 어쨌든 책의 에필로그를 미리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어 옮겨적는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LLM이 정말 추론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하니 다소는 이유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우월성을 확인했다는 안도감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추계 적 앵무새”라는 표현이 나름 이 이해 불가의 영역에서 약간이나마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유머 같아서 인용해 봤다.

데이터센터의 물 낭비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A drop of water falling towards water in a glass
By José Manuel Suárez, CC BY 2.0, Link

환경단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운트 플레전트 데이터 센터에서 예상되는 물 사용량을 공개하라고 라신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중략] 환경단체는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물을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환경이나 미시간 호수에 미치는 영향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략] 마이크로소프트는 2026년에 개장 예정인 마운트 플레전트에 33억 달러를 투자해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략] 오대호 연합(Alliance for the Great Lakes)의 최근 보고서는 이 지역이 데이터센터의 엄청난 물 수요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매년 3억 6,500만 갤런(약 1억 1,500만 리터) 이상의 물을 사용할 수 있다.[Environmental group sues Racine to release expected water use at Microsoft data center]

전에 읽었던 물에 관한 책 『강의 죽음』에 의하면 인간이 “쇠고기 1kg을 얻기 위해 소요되는 물의 양은 2만 4,000ℓ“라고 한다. 그런데 1kg의 쌀을 얻기 위해서는 “2,000~5,000ℓ”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쨌든 인간이 살아가는데 많은 물을 쓴다는 것이 첫 번째 상기해야 할 사실이고, 한편으로 육식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로도 쓰이기도 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 물을 많이 쓰는 상품이 또 있다. AI다. 현대인의 다정한 대화 상대로 등장한 챗GPT와 대화를 한 번 나누는 데 물 500㎖가 소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쌀의 물 소요량은 대략 1년을 기준으로 했을 테니 하루에 챗GPT와 11번쯤 매일 하면 쌀 1킬로그램을 얻는 데 쓰는 물의 양과 같다는 산술 계산의 결과가 나온다.

이런 주먹구구식 셈법이 아니더라도 지금 AI 등으로 인해 전성기에 접어든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물의 양이 막대하다는 것쯤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이는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서버의 에너지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서버는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인간의 뇌만큼 효율적이지 않아서 전기도 엄청난 양을 쓰고, 열도 많이 난다.1 이런 서버를 식히자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2 그런데 환경단체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시피 데이터센터를 설치한 기업의 이러한 물 사용의 권리 획득과 이로 인한 환경적/사회적 영향은 타당하게 진행되고 있을까? 그 과정이 생각만큼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방정부와 기업과의 물 사용 등에 관한 계약은 많은 부분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3 4


미국에서 향후 짓겠다고 하는 데이터센터 추이(?)[이미지 출처]

시장경제가 우월한 이유는 생산물이 상품화되어 가격이 매겨짐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상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거래하기에 가장 좋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이터센터 및 AI 서비스라는 상품은 운영비(Operating Expense)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물이 비시장적 요소에 의해 조달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GDP 에 환경 관련 투자를 포함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는 지표인 ‘녹색 GDP‘ 적 관점을 데이터센터에 반영하면 지탱할 수 있는 산업 분야라 할 수 있을까? 아담 스미쓰는 국부론에서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가치는 적은데 교환가치는 큰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며 반대의 경우로 물을 언급했다. 이런 세간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 녹색 GDP적 사고다.

그런데 사실 이미 반도체, 원전 등 현대사회가 데이터센터와 다른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상품이 이미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아이디테크엑스는 “반도체 제조 전반의 물 사용량이 2035년까지 곱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5 물의 교환가치가 낮은 이유는 우리가 물을 적은 노동으로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은 고갈되고 있고 교환가치가 큰 상품이다. 대수층은 바닥나고 있고 각국은 물 자원 확보를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물 부족 국가에 접어들고 있다. 그 물을 아끼기 위해 고기를 적게 먹자는 판에 우리는 AI와 대화하려고 물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그 추세의 새로운 포식자다.

  1. 사람의 뇌가 이렇게 비효율적이었다면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멸종했을지도 모르겠다.
  2. 그래서 아예 데이터센터를 바닷속에 짓자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다. 제프 베조스는 최근 데이터센터를 우주에 만들자고도 했다.
  3. 이런 비밀주의는 국내도 예외가 아닌데 국내 6개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중 전력 사용량을 공개한 곳은 단 한 곳뿐이라고 한다.
  4. 뉴저지에서는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분기별로 소비하는 물과 전기의 양을 공개해야 하는 법안이 마련 중이라고 한다.
  5. 이러한 이유로 우리 지방정부에서도 물의 재이용을 위한 설비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지브리가 아니다

MagrittePipe.jpg
By René Magritte(1898-1967) – Image taken from a University of Alabama site, “Approaches to Modernism”: [1], Fair use (Old-50), Link

요즘 카카오톡의 프로필 업데이트 상황을 보고 있으면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필을 업데이트한 사람들의 대표이미지의 60~70%가 익숙한 만화풍의 이미지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난 25일 오픈AI가 내놓은 ‘챗GPT-4o 이미지 생성‘(ChatGPT-4o Image Generation) 모델에서 새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중 하나인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의 화풍을 모방한 이미지 생성을 활용한 이미지다. 지브리 스타일 이외에도 디즈니, 픽사 스타일 등의 이미지 생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압도적으로 지브리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다. 역시 소셜미디어 주 소비층인 우리나라의 60~70년대생 세대의 지브리에 대한 애정은 그만큼 더 각별한 것 같다.

문제는 평소 미야자키 하야오AI 창작물에 대한 지론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이런 인기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지브리 쪽은 오픈AI의 행동에 대해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브리의 구체적인 작품을 베낀 것이 아닌 그 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이 저작권 침해인가에 대한 논쟁은 벌써 시작됐다. 미술가 칼라 오티즈는 “오픈AI 같은 회사들이 예술가들의 작품과 예술가들의 생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또 다른 명백한 예“라며 오픈AI를 비난했다. 로펌 ‘프라이어 캐시먼’의 파트너 변호사 조시 와이겐스버그는 막연한 ‘스타일’이 저작권으로 보호되지는 않는다는 대략의 원칙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발언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현상이 있는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이 서비스를 이용해 생성한 이미지를 엑스에 올린 것이다. 해당 계정은 이 이미지를 올리며 “우리도 ‘지브리 트렌드’에 편승하기로 했다”고 적었다고 한다. 현재 팔레스타인 영토에서의 민간인 학살로 비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트윗을 통해 본인들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이른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에 AI 서비스, 더 구체적으로 지브리의 스타일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제국이 저지른 과오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직시하는 반전(反戰)주의자이다. 그런데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군대가 하야오 스타일을 베낀 AI서비스로 자신들을 미화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은 지난달 31일 엑스를 통해 “지난 한 시간 동안 100만 명의 이용자가 늘어났다”며 2022년 챗GPT 출시 5일 만에 이용자 100만 명을 달성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의 증가폭이라고 전했다. 저작권 이슈나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한 화이트워싱 이슈가 어찌 됐든 일단 이용자수를 확보해서 시장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무신경하고 독선적인 전략으로 보이지만, 빅테크 수장의 이런 무신경함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페이스북, 유튜브 등 많은 소셜미디어는 저작권의 가장 큰 침해주체이고, 가짜뉴스의 최대 플랫폼이 된지 오래다. 오픈AI는 그러한 빅테크 선배의 행태를 다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힘의 우위가 창작자의 권리를 착취하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는데 하단부에는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의 관습적인 사고방식을 당황케 하려는 작가의 의도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작품은 파이프를 추상화한 이미지이지 파이프 그 자체는 아니다. 예술은 존재의 본질(originality)을 모사하며 개성(personality)을 부여한다. 개성이 부여되는 한 본질을 넘어서는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모방이 허용된다. 모든 창조물은 창작자의 시각과 스타일이 반영된 끊임없는 모방이다. 마그리트는 이 사실을 감상자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배반한 것은 감상자의 선입견이고, 배반하지 않은 것은 창작자의 개성과 예술성이다.

다른 창작자들은 기존 창작자의 작품을 오마주/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모방한다. 그런데 이 모방이 나쁜 의도로 행해질  기존 창작자의 창작 의지를 꺾거나 창작 의도를 왜곡하는 때도 있기에 저작권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 저작권 침해는 모방자의 물질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오픈AI의 서비스가 지브리의 모방을 통해 새로운 개성을 부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시장 선점이 목적일 것이라는 개연성 때문에 일단 저작권 침해 여부를 떠나 좋지 않은 의도의 권리 침해라 여겨진다. 즉, 그들은 이용자에게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를 제공하면서도 ‘이것은 지브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모방의 권리를 내세우며 권리의 경계를 허물려 하고 있다. 우리는 그 경계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조세정의를 위한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 해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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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ivative work DL5MDAFile:Snarkfit5.png: Henry Holiday (File:Snarkfit5.svg also available) – File:Snarkfit5.png, Public Domain, Link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이 해체 위기다.

G7 국가들이 이번 주 콘월의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협정은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여러 나라에서 영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에서 어떤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벌지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적은 세금만을 내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더 낮은 세율로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곳에 본사를 두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G7 협정에 따라 매출 대비 10%의 이윤을 취하는 어떤 나라 정부라도 이들 기업에게 과세할 수 있게 된다. [중략] 협정의 두 번째 부문은 15%의 국제적 최저 법인세율이다. [G7 tax deal: What is it and are Amazon and Facebook included?]

글로벌 최저한세는 다국적기업이 과세율이 낮은 국가를 찾아다니며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21년 OECD에서 합의됐고, 한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에서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이에 대해 미국 공화당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자신의 공약대로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한다는 구상이다. [중략] 법인세를 공약에 맞춰 낮추면 글로벌 최저한세와 비슷한 수준이 되고, 세제혜택을 추가로 제공할 경우 기업이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빅테크·월가의 방패막 자처한 트럼프…“중국이 미국 악용, EU는 아주 나빠”]

2021년 G7및 OECD국가는 전 세계로 돌아다니며 낮은 세율 쇼핑을 다니던 빅테크 등 다국적기업의 발목에 발찌를 채우기 위해 위와 같이 참으로 어려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불과 5년도 안 돼서 이런 약속이 휴지조각이 될 판이다. 물론 이러한 깽판의 주인공은 다들 짐작하다시피 취임하자마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놀래키는 행정명령과 언행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트럼프다. 인용한 위의 두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트럼프는 글로벌 최저한세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다국적기업을 – 주로 미국 출신 – 미국에 유치하는 대신 글로벌 최저한세 취지를 손상시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글로벌 최저한세에 대한 권위를 무너트리고 과세 효과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 조치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AI 등을 둘러싼 중국과의 패권전쟁, 초국적 자본과의 정경유착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견줄만한 정치·경제공동체로 우뚝 서고자 했던 유럽연합은 이유야 어떻든 자국의 하이테크 산업을 성장시키지도 못한채 미국의 빅테크(또는 기술산업복합체?)들의 소비시장감세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렇게 전 세계에서 빨아들인 돈으로 빅테크는 AI라는 21세기 테크 레이스에 참가할 판돈을 든든히 쟁여놓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그가 아니라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을지라도) 굳이 OECD 혹은 G7과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경쟁에서 뒤쳐진 유럽연합) 조세정의의 행진에 발맞출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상황이다. 첩첩산중이다.

예측컨대 향후 글로벌 최저한세 등 조세 정의 혹은 나아가 초국적 기업의 민주적 통제의 미래는 더욱 암울할 것 같다. 요며칠새 엔비디아(NVIDIA) 주가 폭락 등 미국 주식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DeepSeek 쇼크는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불릴만큼 각국 플레이어들의 냉전적인 음습한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벌써부터 중국의 데이터 도둑질 설, 엔비디아 반도체 밀수설 등 온갖 스파이물과도 같은 소문이 횡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글로벌 최저한세의 사상적 버팀목 정도로 기능할 수 있었던 자유무역의 시대는 저물고 있고 지금은 최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 유럽연합은 ASML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고 레이스에서 탈락한1 – 경제 블록 전쟁이 진행중이다.2 엄혹한 시기다.

  1. 이러한 상황을 풍자한 움짤
  2. 이미 DeepSeek의 창조주 량원펑은 중국 인민의 영웅이다

자유무역 시대 시즌 종료

Press conference EU-Mercosul on June 26, 2019 (VII).jpg
By Alan Santos/PR – https://www.flickr.com/photos/palaciodoplanalto/48149860167/in/album-72157709308281487/, CC BY 2.0, Link
자유무역 시대의 풍경 하나 : 유럽연합-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 조인식 장면

왜 극우파는 구미권에서 상당 부분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모순들이 가져다준 결과다. 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는 구미권에서 시작됐지만, 그 최고의 수혜자는 이제 전세계 제조업 생산의 무려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 등 신흥국들이 됐다. 1973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계속 내려갔던 이윤율은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1991~2007년 사이에 반등했다가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로는 계속 내림세로 일관했다. 구미권에서는 양적 완화, 즉 추가 통화 발행과 공적 자금 투입으로 세계 금융 위기를 부랴부랴 수습했다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지속적인 생활 수준의 저하, 대중들의 빈곤화 문제에 직면했다.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로 가난해졌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이 보호주의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강한 국가’를 열망하게 됐는데, 이런 요구에는 여태까지 세계화를 잘 반대하지 못했던 제도권 좌파보다 극우 정당들이 더 적합한 것이다.[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 교수의 칼럼 중 일부다. 그의 분석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뒤돌아보면 1980년대 이후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지구촌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만이 경제발전을 가져온다는 신념하에 자유무역을 기치로 무역협정을 쌍방간 혹은 다자간으로 맺어나갔는데 이는 표방하고 있는 정치이념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은 신자유주의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물론 서구에게도 혜택은 있었다. 제조업을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 옮겨버렸기에 경기는 호황이면서도 물가는 상승하지 않는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의 꿀맛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호황의 수혜자는 자본가였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뺏겨 삶의 공간은 피폐해졌고 이주노동자, 여성, 기타 소수자에 대한 배척 등 우경화 경향이 강해졌다.

즉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경향으로 ‘저축률의 증가를 통한 부의 성장’이 아니라 바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미국의 욕구를 아시아가 채워주고 대신 받아온 달러를 주체할 길이 없어 저축을 해놓을 수밖에 없었던 ‘생산-소비 연계 고리’를 먼저 짚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즉 90년대 견실한 성장세와 낮은 물가상승이 공존하는 상태라고 불리던 소위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는 실은 미국내 제조업(특히 제조업 노동계급들)의 희생, 아시아 노동계급들의 저임금, 그리고 이러한 양 대륙의 노동계급의 희생을 강요했던 자유무역론의 허구였음을 지적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것이다.[골디락스의 환상과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되어왔던 지난 몇십 년간 전 세계의 자유주의 “진보” 정치진영은 국내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았고 인구노령화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제3세계의 젊은이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사실상 이러한 조치는 자본가들이 노동임금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 혹은 더 인하하면서도 국내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속셈인데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소수자 보호 등 노동계급(그것도 주로 남성)의 이해관계를 배제한 리버럴 들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일환인양 비쳐지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러스트벨트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동독지역의 노동자는 AfD를 지지하는 우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리버럴과 좌파는 그들에게 부자들의 패션 트렌드로서의 PC함을 충족시키는 무지개 정치집단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략] 행정명령을 통해 기존의 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 [중략] 무역협정 재검토 등을 지시한 행정명령에 한국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캐나다에 대해 2월 1일부터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것을 보면 미·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은 물론, 상호 관세 인하와 폐지 등을 지향하는 양자 FTA의 상대국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유사한 조치를 취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중략]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이던 지난 2017년 한미 FTA 폐기를 위한 서한의 초안까지 작성했던 전력이 있다.[발등의 불 한미FTA, 경제동맹 지킬 신속 대응 절실하다]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자유무역의 시대를 끝낼 것이다. 이미 조바이든 때부터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었지만, 트럼프의 시대는 업그레이드된 보호무역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는 보편관세를 을러대고, 파나마 운하를 탐내고, 중국과의 무역을 금지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조롱할 것이다. 인공지능 등 미국의 혁신이 유럽, 중국 등 경쟁자를 앞서며 오만함은 더욱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등이 주변부 파트너로서의 자격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제조업의 탈국내화, 성장 동력 고갈, 정치혼란, 부동산 몰빵의 경제 시스템 등 각종 모순과 문제가 만연해있다. 더 한심한 것은 한국의 우익 테러범들은 경제에는 일말의 공명심도 없이 사적이익을 위한 정치적 우경화만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산업복합체”의 등장을 경고하는 조 바이든

오늘날,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부와 권력, 영향력이 결합되어 민주주의 전체,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앞서 나갈 공정한 기회를 위협하는 과두정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인들은 허위 정보와 왜곡된 정보에 의해 권력 남용의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자유 언론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편집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사실 확인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권력과 이익을 위한 거짓말에 의해 숨겨지고 있습니다. [중략] 한편, 인공지능은 우리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자, 아마도 역대 가장 중요한 기술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제, 안보, 사회, 그리고 인류를 위한 심오한 가능성과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중략] 하지만 안전장치가 없다면, 인공지능은 우리의 권리, 생활 방식, 개인 정보 보호, 그리고 국가 방어에 새로운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중략]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들에 의한 거버넌스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유의 땅인 미국이 — 중국이 아니라 — 세계에서 인공지능 개발을 이끌어야 합니다.[출처]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별연설 중 일부다. 미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과도하게 부와 권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술이 집중된 형태의 과두정치2가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 역시 이미 이러한 정황은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손을 잡고 권력을 잡았을 때, 소수의 기술기업들이 엄청난 투자비를 들여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비하고 있을 때, 인공지능과 소셜미디어가 어느 샌가 우리의 삶에 필수서비스로 자리잡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엔비디아가 새로운 시대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위 인용문도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번역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의 기술 과두정치는 이미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최근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부지런히 공부한 결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문외한으로서 거칠게 설명하자면 과거 우리가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원시자료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함수를 입력하여 분석결과를 출력하는 방식이었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은 원시자료를 그냥 집어넣으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함수를 알아내고 그에 따라 분석결과를 내는 방식이다. 좀 심하게 보자면 인공지능의 하드웨어 안에는 우리가 넣어주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데이터와 함수가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지식을 창조해내는 기술이 기술, 자금, 그리고 전력사용을 독점하는 과두정치에 휘하에 놓인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독점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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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PxG – DALL-E 3, Public Domain, Link

바이든의 집권 기간도 혼란의 세계였다. 그 와중에 미국은 러-우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있어 뒷배 역할을 했다. 이는 지배계급의 지리정치학적 이해관계, 군산복합체의 이윤창출 등의 야욕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국내적으로는 친(親)노동자적 행보, 재생에너지 육성 등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활동을 하긴 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는지 의지부족이었는지 이제 고별연설에서 경고하고 있는 기술 과두정치의 등장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바가 없다. 오히려 연설 중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자신도 “기술산업복합체(tech industrial complex)”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라 말하는 장면에서는 ‘진정한 립서비스란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설미디어, 플랫폼, 인공지능은 그 이전의 어느 기술혁신보다 빠르게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인지능력과 노동자의 적응능력이 힘에 부친다. 그리스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진작부터 빅테크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의 시템이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의 시대라고 정의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두 기둥인 ‘시장과 이윤’은 빅테크의 ‘플랫폼과 임대료’로 대체됐고, 우리가 클릭과 스크롤을 할 때마다 자발적인 노예가 돼 봉건지주인 그들을 위해 일하는 꼴”이라는 그의 묘사는 이미 우리 옆에 와있기도 하다. 여기에 그가 아직 미처 더 자세히 분석하지 못한 인공지능이 결합할 때 기술봉건주의는 한층 더 가속화될 개연성도 있다. 미국 행정부를 나치식 경례를 해대는 머스크가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1. 이상하게도 현재 백악관 홈페이지의 해당 페이지는 열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연설이 기분 나쁘다고 없애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2. 버니 샌더스가 트윗한 과두정치의 한 풍경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되자마자 잊혀졌다. 유럽은 아직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아주 오래전에 이미 발명된 상태였다(어쩌면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가져왔다기보다는/역주]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보급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발명의 사건사는 그 자체로만 보면 요술 거울의 방과 같은 것이다. 앙리 피렌이 말한 다음과 같은 멋진 말이 이 논의를 잘 요약해준다. : “[바이킹들이 발견했던]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되자마자 곧 잊혀졌다. 유럽은 아직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 일상생활의 구조 下,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까치글방, 1997년, p476]

이미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헤론이 발명했다는 에올리오스라는 기계가 증기기관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오래전에 발명된 증기기관은 당시에는 신기한 생산품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상품(商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 상품의 가능성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즉, 증기기관을 이용한 높은 생산력으로 소비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증기기관 열차를 통해 그 소비재를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장으로 실어 나를 그런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생산관계다. 증기기관이라는 생산력과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가 조응하는 상태가 바로 산업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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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entry under Aeolipile in volume one of this work states “The cut is copied from Hero’s “Spiritalia”, edited by Woodcroft, of London.” – Knight’s American Mechanical Dictionary, 1876. source, Public Domain, Link
헤론이 발명했다는 증기기관 상상도

진보의 조건이란 아마도 인력과 그것을 대체하는 다른 에너지원 사이에 합리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중략] 고대 그리스나 중국에서의 상황인데, 이곳에서는 결국 싼 인력 때문에 기계 사용이 봉쇄되었다. [중략] 사실 인간의 가치가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사람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많은 비용이 들 경우 결국 사람의 노동을 돕게 되거나 아니면 대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을 가축이 대신하는 것은 일찍부터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치로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아주 불규칙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같은 책, pp482~483]

고대 그리스, 중국,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직 인간의 가치가 높지 않았다. 그들은 노예 주인과 노예의 관계 등 보다 현대의 임노동 관계에 비해 보다 열악한 관계였기에 이들의 노동력을 굳이 증기기관이나 가축 등 다른 비싼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산력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내다팔 시장도 없었다. 시대가 바뀌어 계급투쟁 등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높아지고 노동자가 소비자로 격상되어 시장이 커지자 증기기관과 가축 등을 활용한 생산력의 증대방안은 비로소 생산자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로소 다시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것이다.

An automat in Manhattan, New York City in 1936.
By Berenice Abbott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items/510d47d9-4f4a-a3d9-e040-e00a18064a99, Public Domain, Link
무인판매기도 이미 진작에 사용되었었다

양키[미국의 北部人]들은 碎石機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업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은 그들의 노동의 매우 적은 부분에 대해서만 보수를 받으므로, 기계는 자본가들의 生産費를 증가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運河에서 배를 끄는 등의 일에 때때로 말 대신에 아직도 여성들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그것들의 가치]은 數學的으로 규정된 크기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剩餘人口 중의 女性들을 부양하는데 필요한 노동[임금]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자본론I[下], 비봉출판사, 1994년, p502]

이렇듯 새로운 에너지원이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은 시대적으로 그렇거니와 공간적으로도 불규칙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개척시대에 노동력이 귀했기에 쇄석기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은 노동력이 흔했기 때문에 인간을 선호했다. 그리고 운하에서도 말 대신 여성이 배를 끌게 하였다. 현재 노동이 귀하거나 비싸지고 있는 여러 생산 현장에서도 키오스크, AI 등 각종 자동화 장치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자동화 장치지만, 인간에게 더 이상 좋은 대우를 해주고 싶지 않은 시대와 공간이 생겨나자 그것들은 재발견되고 있다.

‘붉은깃발법’은 어리석은 법인가?


이미지 출처

영국은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과시했지만 자동차산업은 개발이 더딘 편이었다. 자동차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철도산업 관계자들이 의회를 압박하여 ‘붉은깃발법(Red Flag Act)’을 통과시킨 탓이었다. ‘붉은깃발법’에 의하면 ‘길 위의 기관차’ 자동차는 시내에서 시속 2마일(약 3.2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없었다. 따라서 보행자가 시속 3마일(약 4.8킬로미터)으로 걸으면 자동차보다 빨리 갈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시속 4마일(6.4킬로미터)까지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더욱 안전을 기하기 위해 운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동차가 가는 길 60야드(약 55미터) 앞에서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등불을 흔들어 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2030 에너지전쟁, 대니얼 예긴 지음, 이경남 옮김, 사피엔스21, 2016년, pp 815~816]

부적절한 규제가 어떻게 기술과 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러한 억지스러운 법률을 통해 경제에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규제가 저 유명한 곡물법인데 이 붉은깃발법 또한 곡물법의 고향인 영국에서 시행되었다는 점이 재밌다. 어쨌든 당시의 입법자들은 인용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자동차를 ‘길 위의 기관차’라 인식하고 있었기에1 Locomotive Act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법들을 1861년부터 1878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입법화하였다. 영국은 그 후 1896년에 이르러서야 제한속도를 시속 14마일(23킬로미터)로 완화하였다.

그런데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히 어처구니없는 규제로 여겨지지만,2 한편으로 이 법의 탄생 배경을 꼭 당시의 철도자본의 입김으로만 볼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3 전에 읽은 서양인의 조선견문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노면전차가 운행을 시작한 20세기 초 승객들은 종종 전차의 속도를 감안하지 않고 무턱대고 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치곤 했다한다. 그리고 전차에 치이는 사고가 나면 전차 자체에 대해 큰 분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어쩌면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는 기계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전차나 자동차에 대한 일종의 러디즘(Luddism)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인은 자동차 사고가 나더라도 대개 차에 중요한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 한 운전자 탓을 하지 자동차 탓을 하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로 지금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자동차가 가져다주는 편익이 그 비용을 초과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사상자의 발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또는 그렇게 교화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입법 러다이트들은 자동차라는 기계 자체가 문제라 생각하고 기계를 금지하지는 못하지만 작동 요령을 강력하게 규제한 것일지도 모른다.

Trolley Problem.svg
By Original: McGeddon Vector: Zapyon – This SVG diagram includes elements from this icon:, CC BY-SA 4.0, Link
이 유명한 그림에서 누가 ‘어느 차선으로 갈래’라고 묻고 당신이 ‘1명 쪽으로’라고 답하면 당신은 현대인이자 공리주의자다. 러다이트는 아마도 전차를 운행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시 영국 경제가 다른 나라를 앞지르고 있기에 곡물법이라는 보호무역주의와 붉은깃발법이라는 기존 자본의 이익 보호에 더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법이 먹혀들기 위해서는 일반인도 그 보수(保守) 심리를 공유하여야 원활한 규제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신문물에 대한 공포감은 어느 정도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서가 현대인에게는 없을까? 우리 또한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상용화를 타진하는 지금 내외부자 모두 그것들이 가져올 피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계는 분명히 인간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뺏을 것이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사람을 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인간에게 당한 것보다 더 큰 분노를 느낄 것이다. 어느 순간 제2의 붉은깃발법의 제정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또는 그보다 더 과격한 러다이트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러디즘이나 붉은깃발법이 어리석다고 여기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급작스럽게 밀려드는 신문물에 대한 피치 못할 저항일수도 있었다. 우리도 지금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없이 인공지능 시대가 오고 있지 않은가?

  1. 당시에는 아직 증기차가 대세였기에
  2.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현재의 은산 분리를 붉은깃발법에 빗대어 규제혁신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3. 유독 영국에서만 시속 5킬로미터 미만의 제한하는 과도한 법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일단 제쳐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