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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과연 주식시장의 ‘큰 손’인가? 아니면 ‘봉건적 자본주의’의 맥거핀인가?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기업 261개사에 대해 각각 지분 5% 이상을 갖고 있다. [중략]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4%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 자본시장의 ‘큰손’이다. [중략] 하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자신들의 지분에 따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 [중략] 국민연금의 작년 배당수익률은 1.1%다. 최근 5년 평균치가 1.4%로 2% 중반인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도 적극적으로 배당 확대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화제의 인물 국민연금공단 상대로 ‘나홀로 소송’ 중인 김병희 씨, 건설경제신문, 2014년 2월 20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라는 1997년 애플의 광고 카피를 되새기며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주의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인 김병희 씨의 인터뷰 중 일부다. 그는 헌법 제23조가 말하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는 조항에 따라 국가가 국민연금을 이용하여 대기업들의 독점적 전횡을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이의 승리를 위해 엔지니어 일자리까지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카피 그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김 씨의 무모한 도전이 성공을 거둘 것인지는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적어도 변화는 감지된다. 이번 달 초 국민연금의 작은 반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6일 다음날 예정된 만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만도가 100% 자회사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부실 모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이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 소식은 김병희 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지분 13.12%을 차지하고 있는 대주주 국민연금의 이러한 방침을 적지 않은 언론이 제법 비중 있게 보도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주주총회에는 전체 주주의 59%가 참석했으며 72%의 찬성률로 신사현 현 대표이사 재선임안이 가결됐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겠지만 만도의 한라건설 유상증자 참여가 본질적으로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 주주가 3분의 2가 넘는다는 것을 의미한 셈이다. 또는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더라도 상관이 없는 주주가 그렇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둘 중 어떤 생각이었던 것일까?

주식시장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투자를 크게 늘리며 투자기업의 지분을 확대해가고 있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연기금과 달리 순환출자로 인한 대주주 우호지분에 막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 주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87개사의 국민연금 평균 지분률은 7.98%인데 반해 이들 기업의 대주주 및 특수 관계 우호지분은 37.01%로 4.6배에 달해 국민연금이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막혀 있는 셈이다. 또 국민연금이 대주주 우호지분을 넘어서는 실질적 최대주주인 회사도 전혀 없었다.[국민연금, 무늬만 ‘큰 손’, 금융경제신문, 2014년 03월 13일]

이 기사에서 위의 물음에 대한 답변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불리고 있지만 기사에 따르면 그건 겉치레뿐이고 우리나라 특유의 순환출자 등을 통한 대주주 우호지분과 비교하면 사실 상 ‘식물 주주’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2011년 이전에 찬성률이 90%가 넘었던 연금은 2012년 이후 두 자릿수가 넘는 반대 비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만도의 예에서 보듯이 그러한 적극적 행동주의는 우호지분의 공동행동에 의해 저지되고 만 것이다.

연기금의 주주행동주의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김병희 씨처럼 위헌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본질적으로 전문적 식견이 없는 연기금이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판단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주주라는 것이 1주1표의 권리를 가지고 대주주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는 것이 자본주의 기업의 철칙이라고 한다면 순환출자를 통한 우호지분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원리와 부합하지도 않고 결국 국민연금이 ‘큰 손’이라는 착시효과만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순환출자는 봉건적인 작태다.

귤이 바다를 건너와 탱자가 된 또 하나의 사례,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는 의사결정의 권력을 기업의 주주에서 보다 공공의 지분소유자인, 노동자, 소비자, 공급자, 근린주구, 더 많은 이들 등 보다 큰 그룹으로의 이동을 제안하는 사회경제학적 철학이다.
Economic democracy is a socioeconomic philosophy that proposes to shift decision-making power from corporate shareholders to a larger group of public stakeholders that includes workers, customers, suppliers, neighbors and the broader public.[wikipedia.org]

경 제민주화는 경제조직의 단위들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또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될 때 실현된다. – 최우선적인 이해관계가 단기적인 재정이득인 원격 주주들보다는,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에 의해서 소유되고 통제되는 것을 말한다.
Economic democracy exists when the units of economic organisations are owned and controlled by the people who work in them, and/or by those who use their services – people who have a genuine long-term interest in the organisations and the communities in which they operate rather than remote shareholders whose overriding interest is short-term financial gain.[equalitytrust.org.uk]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개념의 정의는 명확하다. 바로 경제에 있어 의사결정의 주체를 소수의 손에서 다수의 손으로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재벌총수의 전횡, 단기적 이해의 주주자본주의를 포함한다면, 후자는 소비조합, 노동자의 경영참여, 이해자 자본주의, 기타 보다 급진적인 경제단위의 민주적 통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박근혜 씨가 처음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꺼냈을 때에는 우선 위와 같은 이 개념의 고갱이에 대해 고민하였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본질이 “박정희 체제”의 적자인 그로서는 그와 같은 급진적인 사고를 차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경제관료 출신 김종인 씨의 영입이다.

김종인 씨는 전두환 前 대통령이 개헌을 할 적에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을 집어넣자고 건의하여 관철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 주장이 진실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그 조항이 이 경제적으로 극우적인 나라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명성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119조의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원문 보기]

이 조항을 보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하는 주체가 “국가”다. 비록 그 규제와 조정의 목적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 국가주의의 통제에 의해 경제시스템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온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그 주체를 국가로만 국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백번 양보하여도 “경제민주화”가 포괄하는 주체와는 동떨어져 있다.

한편, 왜 박근혜 씨가 이번 선거에서 이 개념을 선점하려 하였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실제로 경제체질의 개선에 관심을 가졌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밖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정책의 좌클릭을 통한 중도층의 흡수와 ‘근대화 세력 對 민주화 세력’이라는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란 분석을 해볼 수 있다.

그러한 포지셔닝이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씨가 결국 경제민주화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기존의 재벌개혁 공약에서도 한참 미진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오히려 주주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정도의 “경제민주화”와 전혀 상관없는 정책이지만 민주당은 이런 보수성에 동질화되어버려 이슈파이팅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어느 샌가 한국화(韓國化)되어버린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씨의 아버지 박정희가 주창한 “한국식 민주주의”를 연상시킨다. 박정희는 “서구 선진국과 우리는 역사적 배경과 토양이 다르므로 정치도 달라야 한다”며 한국의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를 주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없는 “한국식 민주주의”인 유신(維新)체제였다.

박근혜 씨의 “경제민주화”도 국제사회에서 통용이 될 수 없는 “한국식 경제민주화”다. 재벌의 소유구조 왜곡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태원 SK “회장”은 티끌만한 지분으로 공금을 가로챘고, 기업은 신종자본증권으로 – 역시 한국화된 – 회사의 자본상황을 윤색하려 하고 있다. 박근혜 식 “경제민주화”는 이 혼탁한 바다에 소금 한줌 뿌리는 짓이다.

한편 “노동자 대통령”을 표방하며 출마한 김소연 씨는 “재벌 재산을 몰수하여 사회화하고, 모든 주요 산업을 사회화하여 노동자와 민중이 통제”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몰수의 정당성, 현실성에 대해선 의문이 가지만, 적어도 “노동자와 민중의 통제”는 경제민주화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다. 너무 거칠어 거부감이 들지 몰라도 사전적(!) 정의에는 충실하다.

‘자본주의가 소유권이 엄존하고 그걸 보호해주어야 유지되는 체제인데 그걸 부정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어느 현명한 철학자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들어보자. 우리가 주체적으로 당연하다 생각하는 생각들은 남의 생각이고 시대적 맥락을 가진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란 생각은 절대진리인가?

(러셀이 책을 저술할 당시인 1940년대 초반인 현대에는 많은 국가들이) 정치 권력의 세습이론을 거부하였음에도 이것이 민주 국가의 경제 제도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우리는 여전히 부모의 재산을 자식들이 상속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즉, 정치 권력의 세습은 거부하면서도 경제적 권력의 세습은 수용하는 것이다. 정치적 왕조는 사라졌으나 경제적 왕조는 살아남았다.

나는 지금 두 형태의 권력이 다르게 취급되는 행태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러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이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 사람이 삶을 통해 축적한 부를 다른 사람에게 상속할 수 있다는 견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지를 고려해본다면, 로버트 필머 경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왕권의 세습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크의 혁신적 견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마도 (부의 세습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의 생각이) 미래에는 필머의 이론만큼이나 공상적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러셀의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中, 재산의 상속에 대한 러셀의 견해에서 재인용]

읽어볼만한 또 다른 관련 글 “경제민주화라는 유령”(이정환닷컴)
An Alternative Model: Economic Democracy

문재인, 박근혜, 헌법 등등 잡담

블로그를 여기저기 조금씩 정리했다. 배경에 이미지도 넣고, 자유게시판도 만들고, 블로그 소개 글도 좀 바꾸고(소개라기보다는 그냥 푸념), 태그 구름도 새로운 플러그인을 적용하였다. 그렇게 하니 조금 집안 분위기가 화사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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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씨가 대선 슬로건을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대한민국 남자’로 정했다고 한다. 문재인 씨가 특전사 출신임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이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의 특전사 경력은 박정희의 학생운동 세력에 대한 강제징집 덕분에(?) 쌓은 경력이다. 이렇게 쌓은 경력으로 박정희의 시대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의 딸 박근혜 씨와 대항하려는 상황이니 무슨 ‘뫼비우스의 띠’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한 트위터러의 지적에 따르면 문재인 씨의 그런 슬로건들은 2012년 프랑스 대선의 좌우파의 슬로건을 모두 흉내 낸 것이라고 한다. 하나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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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근혜 씨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5ㆍ16 군사쿠데타에 대해 “선친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다만 반대 의견을 가진 분도 계시니 이 문제에 대해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도 했는데 이미 국민과 역사의 판단은 내려졌다. 군사쿠데타 범죄로.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쓰여 있는 바, 4.19정신을 파괴한 5.16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변호한 박근혜 씨는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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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장경제 덕분에 더 잘 산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각국 국민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설문만 놓고 보자면 중국은 자본주의, 일본은 사회주의 국가에 가까울 것 같다. 한편 설문에 응한 국가들 중에서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념의 공백상태를 어떤 정치세력이 파고들 것인지가 향후 남유럽 및 전체 유럽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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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증권사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조작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사안이 서구 금융권의 라이보 조작 사건과 유사해서인지 연합뉴스 웹사이트에서도 비중 있게 소식을 다루고 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CD를 고의로 떨어트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번엔 오히려 CD를 고의로 떨어트리지 않고 있다고 보고 조사를 하는 것 같다. 어쨌든 라이보는 직접 이해당사자인 은행권이 제출하는 금리지만 CD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증권사가 제출하는 것인지라 좀 사안이 다른 것 같고, 만약 짬짜미가 이루어졌다면 어떤 식으로 짬짜미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언론의 호들갑에 비해 그렇게 큰 스캔들이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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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The Ruling Class란 영국영화를 봤다. 피터오툴이 주연한 작품인데 명문가의 후계자가 된 피터오툴이 연기한 Jack이 스스로를 예수라 생각하고 있다는 설정의 풍자극이었다. 결국 가족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Jack은 망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Jack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반전은 Jack이 새로 얻은 정체성은 명문가의 Jack이 아닌 Jack The Ripper의 Jack이란 사실.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재밌는 작품이니 기회 되면 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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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이 어서 빨리 공휴일로 재지정되길….

에콰도르에서 무슨 일이?

에콰도르는 일요일 라파엘 코레아 Rafael Correa 의 권력을 확대하고 그의 – 베네주엘라, 볼리비아와의 좌익 연합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 “21세기형 사회주의”로 인도하는 새 헌법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7월 24일 제헌의회를 통과한 새로운 마그나카르타는 인구 1천3백9십만의, — 인구의 반은 빈곤층이고 — 주로 석유수출과 이민자로부터의 송금에 의존하는 작은 나라의 경제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리서치 회사 Cedatos의 사견에 따르면 이번 투표에서 개혁안은 에콰도르인의 60% 정도가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24% 이상이 개혁안에 반대할 것이다. 또 다른 독립적인 조사기관인 Market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새 헌법은 투표의 31%에 대해 60%로 승인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지지율 차이가 70%일것이라고 믿고 있다.

[원문 및 전문보기]

제헌절이 더 이상 휴일이 아닌 이유

오랜만에 한미FTA에 대해 글을 올리니 손이 근질근질하여 몇 자 더 적어야겠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한미FTA는 FTA 초유의 발명품 ‘투자자의 정부제소권’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자신의 투자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받았다고 여겨지는 투자자는 정부를 제소하여 제3국에서 중재에 참가하게끔 강제할 수 있다. 이는 위헌의 소지가 많은 조항임은 이미 설명하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이때 중재부는 어떠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그 건을 판정하는가이다.

“중재부는 이 협정과 적용가능한 국제법에 따라 분쟁을 판정한다.”[한미FTA 11.22조 1항]

언뜻 보면 별 문제없는 조항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조항은 그 판정기준에 국내법이 배제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국제중재 판정에서 피소된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국제조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은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유재산권에 일정정도 제한을 가하는 취지의 내용이 꽤 있다. 이러한 법취지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의 행정권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얼마 전 뉴라이트 이하 보수주의자들이 삭제하자고 주장한 헌법 제119조 2항이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행정행위가 남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미명 하에 행정권이 봉쇄당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뉴라이트 주장은 꼴통들의 주장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한미FTA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비준 발효되는 순간 위와 같은 판단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행정행위가 정체불명의 ‘국제법’에 의해 투자이익침해행위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의를 진행하다보면 혹자는 한미FTA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똑같이 적용되는 자유무역협정이므로 미국에게도 우리가 그렇게 하여 이득을 취하면 될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한미FTA는 어찌 보면 미국식의 재산권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가치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는 것이고, 둘째, 결국 이득을 얻는 것은 해당 조항을 유용할 수 있는 양 국의 거대자본인데 이들의 이윤동기 아래 양쪽의 국가, 나아가 그 국가의 보호 하에 있는 국민들의 공익향유권은 침해당해도 상관없다는 신자유주의 논리라는 점이 문제다.

둘째 이의제기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것이 없을 것 같고, 첫째 이의제기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겠다.

“정당한 보상 없이, 사유재산을 공용으로 취득당하지 아니한다.”[미국 헌법 수정 5조]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헌법에서 재산권 조항은 오로지 한 조항뿐이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재판정은 이 조항을 근거로 재산권에 있어서만큼은 공익의 침해 여부와 상관없이 그 권리를 절대적으로 – 적어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비율로 – 인정해주곤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미FTA는 미국의 법취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주1)

자 이제 여러분은 왜 제헌절이 휴일에서 제외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물론 농담이다. 과연 농담인가?) 그 이유는 한미FTA가 비준 발효되면 그간 우리나라 사법권과 헌법은 별로 효용성 없는 기관과 문서조각으로 전락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법기관이나 헌법은 가끔 ‘아주 순수하게’ 해외법인이나 외국인이 전혀 섞이지 않은 상투 튼 사람들끼리의 송사에나 관여할 것이다. 이명박이 달리 영어 몰입교육을 하자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어떠한 이유를 떠나서라도 이러한 개떡같은 FTA를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누무현을 꼴통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는 그것을 통해 물건을 더 파는 것보다는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주2) 각 분야의 세계의 제도와 뒤섞이지 않으면 수준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노무현 前대통령, 2007년 5월14일, 두바이 동포간담회)

“다음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안할 것 같았는데,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손해 가는 일을 하는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특단의 의지로 결정했다”(노무현 前대통령, 2007년 3월20일 농어업분야 업무보고)

(주1) 보다 복잡한 방식에 따라 한미FTA가 국내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국내 헌법상의 조항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고, 미국의 경우 한미FTA는 별도의 이행법으로 처리되어 여타 법이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이 글에서 전반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의 ‘한미FTA 핸드북’(녹색평론사)을 참고하기 바란다.

(주2) 수준을 끌어올린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앞에 간단히 설명한 바 있다.

MB의 장관인선은 헌법 파괴?

“헌법에는 총리가 장관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총리 권한을 침해, 인수위가 장관후보를 인선해 보고하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것”

사실이 이렇다면 현재 국민들을 엄청 열 받게 하고 있는 장관 후보 생쇼는 그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위 발언자의 말이 맞는지 헌법을 확인해보았다.

제94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에는 정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기왕의 정부들이 관행처럼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을 뽑아놓았던 행위는 – 소위 인수위가 선정하는 그림자 내각? – 위헌이라는 이야기다. 이거 지금이라도 위헌소송을 내야하나? 🙂

아 참고로 위의 발언은 2003년 2월 18일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이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에 대한 비판이다. 문제는 왜 이제는 이런 바른 말을 하는 분들이 없냐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