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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투자, 인프라스트럭처, 공익성 등에 관한 단상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인 주식, 채권 등과 달리 Private Equity,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의 계속되는 낮은 수익에 대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00개의 가장 큰 규모의 대체 펀드 그룹의 자산은 지난 해 6% 성장한 3조3천억 달러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 가장 핫한 투자자들이 바로 연기금들이란 점이다.

연기금들은 가장 큰 100개의 펀드 하우스에 투자한 돈 중 1조3천억 달러를 구성하며 대체 자산 매니저들에게 있어서 자본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남아 있다. 대체 펀드 산업에게 연기금 자금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고 Rajan 씨는 믿고 있다. 그는 유럽 연기금의 약 4분의 1이상이 현재 적자의 현금흐름이며 전후의 가장 큰 규모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함에 따라 다음 5년 동안 이 숫자는 두 배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Pension funds seek ‘sweet spot’ in alternatives]

대체투자 시장은 1980~90년대 이후 금융의 세계화, 국유 인프라스트럭처의 민영화 추세, M&A 시장이 성장 등과 맞물려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투자 시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 규모가 날로 늘어나서 인용기사의 말미에도 나오듯이 앞으로 “대체가 주류가 되는” 시절이 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세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집단이 각국의 연기금인데 이는 개인적으로 참 흥미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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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cuated Highway 401 Color” by Kenny Louie.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즉, 대체투자, 특히 인프라스트럭처와 같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공급하던 소위 “공공재”가 시장화되면서 그 투자자로 다시 공공의 돈이라 할 수 있는 연기금이 참여하는 현상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의 사회적 투자행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듯이 인프라스트럭처의 소비자로서의 공공과 투자자로서의 공공 간의 긴장관계를 낳기도 한다. 소위 “공익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앞으로 대체투자 시장이 정말 주류가 되고 국경간 지역간 투자와 소비가 이렇게 다양한 주체로 나누어지다 보면 경제학자 또는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갈등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미국에 투자한 도로 사업이 미국정부에 의해 “공익성”이라는 이름하에 – 한국인이 보기에 – 부당하게 몰수당한 정황이 있을 경우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는 어떤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무상급식”에 대해 주절거린 트윗 모음

# “무상급식”도 사실 “마녀사냥”, “혈세” 등처럼 단어 내에 선입견이 포함된 안 좋은 네이밍이다. 따지고 보면 대개의 재정집행이 이미 무상이지만 그들을 “무상도로”, “무상경찰”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조금은 불가피한 면이 있긴 했다. 이 개념을 정책으로 선도적으로 쓴 정치조직이 바로 민주노동당인데, 당시 정책을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슬로건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 슬로건이 바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 무상급식에 대해 보수가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이유는 급식이라는 서비스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 즉 배제/경합 가능성이다. 공공재는 배제와 경합이 어렵다는 경제학적 원리가 내재되어 있고 도로나 치안 등이 대표적인 데 급식은 이와는 다르기에 공격하기 쉽다.

# “공공재(Public Goods)”와 “공익성(Public Interest)”는 특정 재화/서비스의 공통적인 속성이면서도 그렇지 않기도 한데, 공익성이라는 특성은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급식을 공공재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등.

# 급식이 또 하나의 교육이 되는 과정에는 급우와 같은 음식을 먹으며 평등 의식을, 건강한 급식을 먹으며 생산 노동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도지사가 급식을 거부하고 학교가 성적순으로 밥을 주는 사회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원문

“공유경제” 비즈니스모델 관련 트윗 모음

# Uber의 경쟁업체 Lyft는 지난 10월 이후 우버 직원들이 약 5천 건의 예약을 취소하는 방해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함. 공유양아치짓? 기사 보기.

# “Lyft가 뉴욕 시장에 진입한 후, Uber는 운전자들에게 양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뉴욕시 규정상 금지돼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규제 싫어하시는 분들이 이런 규제를 운전자에게 강요하시다니?

# 나는 우버나 에어비앤비의 “공유경제” 비즈니스모델은 규제에서 교묘하게 벗어남으로 인한 아비트리지의 규모 경제에서 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하거나 경쟁자가 생길 경우 비용은 증가하고 이것이 모델의 몰락을 초래할 거라 생각한다.

# 특히 그들이 스스로 호텔 업체나 운수 업체가 아니라 “플랫폼”이라고 강조하는 방식은 대기업이 파견업체 노동자를 활용하며 실질적 고용주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방식과 유사하다. 결국, 그런 모습은 장기적으로 서비스의 질 저하를 불러올 개연성도 크다.

# 내 트윗에 동의 못한다는 트윗을 봤는데 멘션하지 않았으니 직접 답할 필요는 없고, 그는 내가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과 “공유경제 모델”과 다른 차원에서 말한 점을 간과하고 있음. 우버는 “공유경제”를 사칭하며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한 사례라고 생각함.

# 공유경제는 이미 인프라와 같은 공공재나 버스와 같은 집합소비재에서 일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이를 사적재에 적용하여 비즈니스모델로 만들겠다는 것이 우버 등의 생각인데 그것이 집합소비재의 진입 장벽을 탈법적으로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요컨대 공유경제 자체는 자원절약형 집합소비 시스템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공유경제”라 칭하는 비즈니스모델은 수익원이 공공재에 무임승차하는 규제 아비트리지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라면 제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또 다른 세월호 사태를 막기 위한 방법은?

잔인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민 우울증”이라 할 만큼 많은 이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사고를 불러온 것으로 추측되는 이들을 비난하고, “용서하지 않겠다”나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비극적인 참사다. 너무나 안타까운 갖가지 사연과 복잡하게 얽힌 원인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블로그에서 섣불리 뭐라 하기도 조심스러운 사고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마침 논지가 비슷한 두 개의 글을 동시에 읽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이에 공감하는 바가 있기에 여기 옮겨왔다.

똑바로 말하자.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이 물질과 생산,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본주의라 말할 수도 없는, 천민 약탈 도적의 무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이다. 최소한의 도구적 합리성이 있다면 기업이 이딴 식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러나 이 “해운회사”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빈 자리를 광신과 무책임과 끼리끼리의 문화가 채웠다. “돈보다 사람”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 없다. 어떤 수준에서는 돈이 더 중요하다. 그딴 식으로 사업하면 쫄딱 망한다는 경험을 보여주면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안 망했을까? 공무원과 금융기관을 꽉 잡으면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과 “인간관계”를 잘 구축해 놓는 것이 합리적 기업경영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출처]

미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때로 지나칠 만큼 안전을 강조해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고치러 가 보면 느끼는데, 차에 안전에 관한 문제가 하나만 있어도 수천 달러를 메기며 전체를 다 갈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번에는 바퀴에 바람이 좀 빠져 정비소에 가져갔더니 바퀴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타이어가 새 것이었고 내가 보기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좀 고쳐서 써도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라이어빌리티(liability) 문제가 있어 날 그냥 보낼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바퀴를 새 것으로 갈았다. 이들이 도덕성이 높고 진정으로 내 안전을 걱정해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니 애초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소송이 쏟아지는 나라인지라, 뭐라도 잘못해서 책 잡히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을 해야 하니, 회사의 자산을 책임질 수 있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그들을 철저히 교육하게 될 수밖에 없다.[세월호 여객선 침몰, 그리고 세모 그룹 유병언]

첫 번째 글을 권복규 이화여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고, 두 번째 글은 실리콘벨리에서 활동 중인 조성문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글들의 요지는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약간 각색을 해서 요약해본다면, 이 사회에서의 벌어지는 참혹한 사고의 원인은 “도구적 합리성”이 결여된 “천민 약탈 도적의 무리”가 “합리적 기업경영”이 아닌 “인간관계”로 장사를 해서 생겨나는 일이며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라이어빌리티”를 강조하여 회사의 책임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왜 안전사고에 대한 시스템이 이토록 미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시장경제에서 비용만 발생하는 안전조치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발생할 비용이 조직의 존망을 흔들 정도가 되어야 반응할 뿐이다.[출처]

4월 17일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위의 두 주장과 유사한 주장이고 이 체제에서의 세월호와 같은 기업 – 또는 공공 – 이 제공하는 집합적인 소비재에 대해서는 이러한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권복규 교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실제로 안전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하며 우리는 이제야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조문성 씨가 경험한 그 고지식한 정비소일 것이다. 결국 안전하게 하는 게 비용절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제도적 합리성을 구현하는 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한 정몽준 씨가 실질적 주인인 현대중공업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달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모두가 안전조치 미흡으로 벌어진 일들일 텐데, 막내아들의 페북 망언에 대해서는 사과하던 정몽준 씨가 이 사태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정몽준 씨는 그러면서 정작 서울시에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겠단다. 사회가 아직도 이런 행위에 대해 너그러워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편, 권복규 교수의 애초의 글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지나치게 매크로적인 비판이라는 취지의 글이었고, 이에 대한 방증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울 지하철 추돌 사고를 들었다. 취지에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결국 과적이 침몰 원인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이윤 논리를 여전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바 있고 지하철 사고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윤 논리, 보다 정확하게는 비용절감 논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기업 특유의 이윤논리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공기업의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고 있지만 사실 공기업에 대한 이런 공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축적이 일천하고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공기업이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몫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던 것이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실패” 논거가 등장하고 재정압박에 직면하자 정부는 공기업의 개혁을 주문했고 이는 거의 예외 없이 이윤추구 논리로 귀결됐다. 그 결과 공공재의 내구연한은 계속하여 늘어났고 안전을 위한 비용은 삭감됐다.

다시 큰 틀에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보다 안전에 있어서는 마이크로하게 더 엄밀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통제와 규제는 이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매크로한 측면에서 보자면 체제적 반성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규모의 대량생산/대량소비/집합소비로 고도화된 것은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다. 당시 지어진 인프라는 서구에서조차 이제 낡아가지만 긴축재정은 공공/민간 양측에서 새로운 정비를 유예하게 만든다. “안전이 이익”의 선순환 고리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R.I.P.

‘전 국민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으니 더 좋은 세상이 된 것일까?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게 될수록 잘 사는 이들은 더 못사는 이들과 보다 적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나누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중요한 상품들을 – 건강보험, 교육, 보안 서비스, 교통, 레크리에이션 서비스 – 민간부문에서 개별적으로 구입하거나 사적인 커뮤니티 혹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시킬 목적의 조닝 제도에 의해 관할되는 지방자치제 안에서의 공동으로 구입하고, 그럼으로써 이러한 상품들이 더 광범위한 대중에게 공공적으로 공급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출처]

이코노미스트의 “Why aren’t the poor storming the barricades?”이라는 기사가 인용한 미시간 대학교 철학교수인 엘리자베스 앤더슨의 글이다. 이글은 오늘날 아무리 가난한 이들일지라도 이전 세대에서는 더 잘사는 사람들이 살수조차 없었던 많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 예를 들면 냉장고나 휴대폰 등 – 세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자와 빈자간의 차이에 대해 유념하여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글이다. 즉, 가난한 이들이 각종 재화와 서비스 중에서도 특히 집합재와 공동재 등과 같은 소위 “공공재”에로의 접근권이 제한받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재는 위에서 언급한 건강보험, 교육, 치안, 교통 등 사회발전을 위한 하부구조로써 공공유틸리티, 공공서비스, 사회간접자본, 복지 등 다양한 이름1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집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각국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늘어나는 소요(needs)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던 것이 빈부차가 심해지면서 인용문에서 설명하듯이 여러 서비스들이 민영화되거나 보다 값비싼 사적재(私的財)로 대체되면서 공공적 사용이 배제되거나 질이 하락하고 있다.

“공공재”로 불리는 많은 것들이 경제학적으로는 비배제성/비경합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인 동시에 시장에 의해 공급되어 특정 세력을 배제시키게 되면 사회의 유지 및 발전에 저해될 것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기에 공공재로 공급된 것이다. 보편적 교육이 없으면 “결과의 평등” 이전에 “기회의 평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기에 공립학교가 공급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이러한 배제 없는 서비스 이용을 부자들 혹은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반대하기에 빈부차가 여전히 유의미하다.

불평등은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을 질투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박탈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Why aren’t the poor storming the barricades?]

아무리 가난한 이라도 웬만하면 집에 TV는 있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집만 나서면 실업자가 거리를 배회하는 근린에 거주하고, 몸이 아파도 여력이 안 돼 병원에 가지 못한다면 사회의 지탱가능성은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을 체감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경제정책을 복지에 중점을 맞추어 시행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2 그 와중에 현 정부는 예산부족을 핑계로 등록금 인하 공약을 파기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한국형 복지모델의 전망과 모색’ 보고서에서 지난해 9월 표본추출한 만 19세 이상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중략] ‘경제성장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와 ‘복지정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54.7%와 42.0%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60▪70대 65.0대, 50대 67.3%, 40대 60.1%로 40대 이상은 60% 이상이었으나 30대와 20대는 37.1%와 39.8%로 나타나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반면 복지정책의 중요도에 대해서는 30대와 20대가 61.3%, 56.8%의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과 달리 40대는 38.6%, 50대는 31.2%, 60▪70대는 26%에 그쳤다. [세계일보, 60,70대 65% “복지보다 성장 우선”, 2014.1.20]

9호선 지하철 논란에 관한 트윗들(2)

9호선 민자사업의 또 하나의 유의점은 원인자부담원칙의 적용여부다. 민자사업은 이 원칙이 적용된다 할 수 있고, 재정으로 설치운영할 경우 이 원칙이 희석된다 할 수 있다. 정부가 9호선을 매입하면 “안 타는 사람이 손해”란 소리는 그런 맥락이다.

anoweb @EconomicView 수익자부담원칙 아닌가요?

@anoweb 영어표현 polluter pay principle에서 유래되었으니 ‘오염자’,’원인자’,’수익자’ 다 같은 맥락으로 쓰면 됩니다.

searcherJ @EconomicView 어… 그런데 좀 무식한 질문이지만 민자사업에 수익자부담이 적용되는 이유는 뭔가요? 그리고 똑같은 지하철인데 어떤 노선에는 수익자부담이 적용되고 어떤 노선은 적용되지 않는다면 민자사업이 어떻게 그걸 설명하나요? 1번이 2번설면?

@searcherJ 민자사업이 추진동기 중 하나가 이런 원인자부담원칙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가격을 시장가격화하자는거죠. 지금은 공공운영 시설에서도 이런 상황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교통권의 공익성에 대한 생각이 혼란스러운 상태랄 수 있죠.

woohyong @EconomicView 여기서 ‘수익자’는 어떻게 정의될까요? 1) 이용자, 2) 교통편의가 증가되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자산가들, 3) 서울시의 교통이 전반적으로 원활해져서 전반적 편익상승 (누구에게 얼머가는지는 논외)

@woohyong 3번이 가장 편익이 작을 수 있지만 바로 그 개념이 인프라의 공공에 의한 공급을 정당화하기도 하죠. 2번과 같은 맥락에서 신도시에선 집값에 인프라설치비를 포함시키고요. 1번이 결국 ppp의 오염자 개념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는 “경합성”과 “배제성”의 관점에서 경합되지 않고 배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공익(public interest)과는 엄밀하게는 다른 개념이다. 결국 어떤 서비스를 시장화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 일종의 계급정치이다.

세금 한 푼 안 낸 맥쿼리, ‘실주인’ 따로 있다 http://bit.ly/HZbtX8 언론보도 중 가장 사실관계에 근접한 선대인 씨의 글. 어찌 보면 이런 풍경은 변종채권이랄 수 있는 대안투자 위주의 펀드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미 전형적인 풍경.

morquesong @EconomicView 9호선에 대한 생각을 써봤습니다. http://t.co/mkMMH87w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마녀사냥이 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morquesong 잘 읽었습니다. 하나 지적하자면 9호선 민간투자사업은 민영화(privitazation)의 큰 틀에서 개념상 민영화가 맞습니다. 국유기업/시설 매각이 전형적이라면 이는 애초에 운영권을 국가가 민간에 허가한 형태로서의 민영화입니다.

민간투자사업은 금융권 시각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주식/채권 투자에 건설/운영 위험을 가미한 대신, 프리미엄을 취하는 “대안투자”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선 변종채권인데, 국가가 채권지급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바로 신용리스크인 셈이다.

맥쿼리가 9호선에 수취하는 15%이자는 후순위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자상환순위에서 선순위에 밀린다. 그래서 SPC는 이를 메자닌, 즉 중자본으로 간주하고 고금리로 투자자를 유치한다. 월가의 구조화 금융과 유사한 형태의 금융기법이다.

woohyong  @EconomicView 15% 후순위채는 전채장기채무의 10%선. 나머지는 선순위로 CD연동/고정 가중평균6%대입니다. 배당은 불확실성크니 이자로 리턴설계하는 전형적 PE SPC투자방식인듯. 9호선운영이란 운영사통해 현대로템은 한번 더 빨대꽂고

@woohyong 민간투자사업은 사실상 현금흐름이 다른 사업에 비해 변동폭이 작고(특히 MRG가 있는 경우 환수조항이 있어 업사이드는 어려우니) 장기여서 주식배당수익률로만은 수익을 맞추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후순위가 배당이나 마찬가지인 구조죠.

투자은행과 철도

39년 동안 선임 파트너로 회사를 운영한 시드니 와인버그는 헨리 골드만이 골드만 삭스의 사업을 혁신시킨 창의적인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바로 이 골드만이 새로운 사업 형태, 즉 간사(underwriting)업무에 뛰어들어서 회사를 투자은행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 그러니까 1890년대부터 1차대전 때까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투자 은행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당시 미국은 자본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종류의 투자 은행가들이 그것을 돕기 위해 나타났다. 미국 금융 기관들의 자산은 1900년과 1910년 사이에 90억 불에서 210억 불로 배 이상 늘었다. (중략) 그리고 이들은 가정용품과 철도 산업의 엄청난 사업 확장에 돈을 댔었다. 거의 12억 불에 달하는 새로운 철도 증권들이 1900년과 1902년 사이에 발행되었다. 그러자 헨리 골드만은 철도 주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도 회사들의 눈에 띄어 당시 가장 유망했던 간사 업무에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세계를 움직이는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 리사 엔들리크 지음, 형선호 옮김, 세종서적, 1999년, pp65~66]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국가가 나서서 대규모의 자원동원을 하지 않았던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 – 국가가 실질적인 대규모 자원동원에 나선 것은 대공황 시절 –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국가가 공급하여야 한다고 알고 있는 ‘공공재’의 상당부분을 민간이 공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 이상의 자금조달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던 – 아직은 런던 다음이지만 –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민간에 의한 철도공급이 두드러졌는데 철도가 사회간접자본이자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공공재라기보다는 경제재, 즉 상품성이 있는 아이템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공공재는 사실 그것의 공익성에 의해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그 이용을 배제할 수 없고 같이 이용한다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 공공재로 간주되는 것이다.(주1) 이 기준으로 보면 철도는 경제재에 가깝다. 즉 수지타산 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기업들이 오로지 운영수입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들은 철도주식의 상장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단기차익을 노릴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골드만 삭스는 위에서 보듯이 그러한 주식상장 등을 돕는, 오늘날로 치면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같은 업무를 시작하면서 투자 은행으로서의 기틀을 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읽기에는 이치에 맞는 모습이지만 그 속은 엄청난 야합과 투기가 판을 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니엘 드루, 제이 굴드, 코넬리우스 반더빌트 등 당대의 철도거물 들이 이리 철도회사를 둘러싸고 벌인 주식전쟁은 거의 국가변란 수준의 개싸움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통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세계 최고수준의 자본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치 삼성의 이재용 때문에 한국의 상속법 제도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주1)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 소프트웨어나 mp3는 가장 완벽한 공공재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의 복사를 배제하기 어렵고 그것을 복사해서 쓴다고 소프트웨어가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잘 알다시피 그러한 재화를 경제재로 만들기 위해 기업은 무수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