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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에 나선 조선일보를 위한 캡처 이미지

이번 ‘홍석천씨 오보’는 조선일보 역시 <홍석천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이태원 가게 2곳 폐업”>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홍석천 씨의 비판 이후 중앙·동아일보는 제목을 바꿨지만, 조선일보는 계속 애초 기사 제목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면 “해당 기사 링크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중앙일보 ‘홍석천 오보’ 개인사과로 끝낼 일인가]

최근에 가게 두 곳의 문을 닫은 홍석천 씨가 이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언급만 따옴표를 써서 오보를 냈던 조중동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는데, 인용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앙은 슬쩍 제목만 바꿨고 조선은 기사를 없애버렸다고 한다.(그 와중에 동아는 복지부동) 증거를 인멸한 뻔뻔한 조선일보의 기억력을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캡처 화면을 제공하도록 하겠다.

 

오늘 하루 동아는 한겨레다

“인종의 벽 허물고 ‘변화의 신대륙’ 문 열다”

내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은 헤드라인이었다. 역시 동아다. 오늘 하루 동아는 한겨레였다.(오바마 관련기사에 있어서만큼은) 자신들이 목놓아 떠들던 브래들리 효과도 기우에 그쳤다고 논평했다. 편리한 건망증.

여론조사에선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백인 유권자들이 정작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는 기우(杞憂)에 그쳤다.[투표함 열자마자 “오바마”… ‘개표 드라마’는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삑싸리’는 여전했다.

오바마 당선인의 멘터(조언자)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나이는 세 살이나 어렸지만 오바마 당선인을 지도해 주던 ‘선배’였다. 곧 두 사람은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이 감정은 데이트로, 그리고 얼마 후 초콜릿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첫 키스로 이어졌다.[‘동등한 파트너’ 미셸]

오바마의 아내 미셸과의 만남을 자기 딴에는 로맨틱하게 그리려 했는데 어이없는 표현이 눈에 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왜 하필 초콜릿일까? 백인 커플이면 키스할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날까? 기자란 사람이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우리나라는 역시 아직 인종에 대한 배려의 개념정립이 안 되어 있는 나라다.

그런데 그러한 인종배려 무개념의 하이라이트는 중앙일보의 김상택 만평이다. 그의 오바마에 대한, 그리고 흑인 인종에 대한 개념 없는 독설은 이때 드러났고, 선거 하루 전까지도 이 지롤을 떨다가,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자 엉뚱한 만평으로 흰소리를 해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형식에 걸맞지 않는, 아니 형식을 모욕하는 내용으로 스스로를 모독하는 대표적인 만평가가 되어버렸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라는 표현에 대한 느낌은?
( surveys)

동아의 마지막 보루는 ‘브래들리 효과’?

오바마의 승리가 점점 가시화되니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특히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동아일보의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종교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언론으로 지칭되는 조중동과 진보언론으로 지칭되는 한겨레/경향의 ‘브래들리 효과’에 대한 입장을 비교해보았다. 역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브래들리 효과’를 주문처럼 외우는 것은 역시 동아다. 상황을 분석하기보다 주문을 외우는 동아 파이팅!

브래들리라는 이름을 가진 – 스펠링은 전혀 다르지만 🙂 – 밴드도 있다. 이들 노래를 들으면서 신문기사를 감상하시길.

오바마 승리 낙관 아직 이르다(동아, 2008년 10월 20일)
결론적으로 막판 변수와 브래들리효과(백인 유권자의 흑인 후보에 대한 이중적 투표 행태) 등을 고려할 때 오바마 후보의 승리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USA 선택 2008]또 오바마가 웃었다(동아, 2008년 10월 17일)
하지만 ‘컴백 키드'(come back kid)로 불리는 부도옹(不倒翁) 매케인 후보가 사력을 다한 추격전을 펼칠 것으로 보이며, 역대 대선에는 없던 ‘브래들리 효과'(흑인 후보에 대한 백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롯한 변수들이 남아 있어 승부가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벼랑끝 몰린 매케인 ‘이유 있었네’ (조선, 2008년 10월 17일)
하지만 그의 당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긴 이르다. 투표일까지 아직 3주가량 남은 데다 백인 유권자들이 흑인 후보를 지지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선 백인 후보 쪽으로 마음을 바꾼다는 ‘브래들리 효과’가 막판 변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브래들리 유령’도 14%p 뒤집기는 힘들다(한겨레, 2008년 10월 16일)
여전히 변수다. 하지만 현 지지율 상황을 역전시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특히 젊은층 유권자가 다수인 지역에서는 브래들리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는 젊은층 사이 지지율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오바마 진영 “백인 노동자를 설득하라”(중앙, 2008년 10월 15일)
유에스에이투데이와 갤럽이 10∼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지지율 51%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44%)를 7%포인트차로 앞섰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를 지지한다’거나 ‘지지후보가 없다’고 답해놓고 투표소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찍는 유권자들이 나올 가능성 (브래들리 효과)이 있어 오바마는 지지율 격차를 두 자리 숫자로 늘리기 전에는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막판 ‘브래들리 효과’ 두 캠프 모두 촉각(동아, 2008년 10월 14일)
시카고대의 마이클 도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주지사, 상하원 의원 선거 등에서 브래들리 효과가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선거는 차원이 다르다”며 “백인의 흑인후보 지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브래들리 효과’는 없다?…전문가들 “역효과도 있다”(경향, 2008년 10월 13일)
선거 여론조사 전문가인 마이클 트라곳 미시간대 교수는 “브래들리 효과는 시작부터 이름이 잘못 붙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당시 여론조사는 인종 변수를 포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재자투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 투표 결과 예측에 실패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美대선 한달 앞으로]표밭전쟁 ‘4가지 지뢰’(동아, 2008년 10월 4일)
네 번째로 꼽았지만 ‘브래들리 효과’(여론조사에서 앞선 흑인 후보가 실제 개표에서는 패배하는 현상) 재현 여부는 앞의 모든 변수를 모두 삼킬 만한 메가톤급 태풍의 눈.

미(美) 대선 D-35 … 막판 4가지 변수는?(조선, 2008년 9월 30일)
이런 현상은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후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를 선택하는 ‘브래들리효과(Bradley Effect)’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중앙일보 사진 조작, 기억도 조작된다

중앙일보가 또 한건 저질렀다. 쌍욕 헤드라인에 이어 이번에는 사진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을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이라크전쟁 관련 사진을 임의로 수정, 보도한 자사 사진기자 브라이언 월스키를 2일 전격 해고했다. 미 서부 최대 일간지인 LA 타임스는 이날 사고(社告)를 통해 지난 31일자 1면 ‘바스라, 전쟁전술로 공황상태’ 제하기사와 함께 ‘경고: 한 영국군이 이라크난민들에게 엎드리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아 보도한 사진은 월스키 기자가 사진을 합성, 수정한 것으로 사진원본의 수정을 금한 자사 보도윤리강령을 위반해 중징계했다고 공개했다.[LAT, 전쟁사진 조작기자 전격 해고, 연합뉴스, 2003년 4월 3일]

이 기사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굳이 해당 기자를 중징계하라는 을러대려는 것이 아니라 이게 독자사과문 하나로 입 닦을 사안이 아닌 ‘매우’ 중대한 언론조작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함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사진과 영상은 때로 펜보다도 강하다. 레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모든 언론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사진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네들이 유포시킨 가장 큰 거짓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래 기사에서 보듯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월스키는 파면됐지만 많은 학자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조작된 사진들이 공적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기억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과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학자들은 이런 우려를 입증하기 위해 19~84세의 성인 299명을 대상으로 1989년 중국 텐안먼 사건과 2003년 로마 반전 시위의 실제 사진과 조작된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텐안먼 사건의 원래 사진은 텅 빈 광장에 진입하는 탱크들 앞을 막아 선 한 남자를 보여주고 있지만 조작된 사진에는 주변에 빽빽하게 둘러싼 시위 군중까지 등장해 긴박감을 더해주고 있다. 로마 반전시위의 원본 사진은 평화를 상징하는 피켓과 깃발들을 든 군중을 보여주지만 조작된 사진에는 평화 피켓은 잘 보이지 않고 대신 시위 진압 경찰관들이 등장한다. 이 실험 결과 조작된 사진을 본 사람들은 장차 시위에 참여할 생각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조작된 사진이 기억도 조작한다, 연합뉴스, 2007년 11월 27일]

만약 중앙일보가 어떠한 정치적 편견을 떠나서 이 사안에 대해 비중이 낮은 사안이라고 스스로 판단 내린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제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접고 영화인이나 연극인으로의 길을 걸을 것을 권유하고 싶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실(truth)을 표현하기 위해 사실(fact)을 연출하였으니 말이다.

사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이 사이트를 들여다보시라.

쌍욕까지 헤드라인으로 뽑는 중앙일보

예전부터 중앙일보(특히 웹사이트)의 천박한 제목 뽑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지적을 한바 있는데 이번 것은 그 최고봉이라 할 만하겠다. 무릇 좀 과격한 제목이다 싶으면 자기 말이 아니라 남의 말이라고 따옴표 따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는 게 언론의 속성인 것이야 뻔히 아는데, 중앙일보가 이번에는 (이명박 씨에게 욕 싸질러대던) 욕쟁이 할머니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향한 –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 모독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올려버리는 대단한 일을 저질러버렸다. 변태적 제목 뽑기의 증상이 거의 노출증 환자 수준이다. 이 꼴을 보니 떠오르는 생각은 이 뿐이다.

“언론이랍시고 지랄들을 허니 뭔 나라가 되겠어.”

밋밋한 성폭행 기사 섹시하게 만드는 비법

사실 우리나라 언론이 좀 과도하게 심각한 면이 없잖아 있다. 특히 서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방송이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은데 서구의 뉴스는 쇼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우리네 뉴스도 이러한 경향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아직 조금 경직된 듯한 모습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뉴스 끝나갈 즈음 피식 웃었다고(정황상 비난받을 정황인 것은 같았지만) 바로 잘려버린 해프닝은 뉴스, 즉 언론이 가지는 경직된 권위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 속에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은…

요즘 뉴스를 안 봐서 알 수 없지만 신문은 특히나 지면에 활자를 통해서 소식을 전달하니 만큼 더 인간적인 면이 배제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기에 실은 남들 보기에는 코미디인 내용도(어느 신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겠다) 본인들은 매우 심각한 언어와 화법으로 전달한다.

각설하고…

신문도 방송도 사건의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기자 자신의, 또는 매체 특유의 목소리만 소신 있게 – 물론 왜곡하지 않고 – 담아낸다면 조금은 어깨에 힘 빼고 이야기해도 크게 문제없지 않나 싶다. 신문기사라고 한 두 마디 특유의 농담이나 풍자를 집어넣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농담하지 말아야 할 데서 농담하면 이건 문제다. 연합뉴스가 3월 26일 “부산서 10대 성폭행 사건 잇따라”라는 제목으로 최근 사회를 두려움에 빠트리고 있는 성범죄 사건들의 한 토막을 전하고 있다. 제목은 평범하다. 다만 기사내용이 좀 거시기하다.

“[상략]경찰 조사결과 황군 등은 반항하는 김양의 손을 붙잡고 “맞고 할래, 그냥 할래”라며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사상경찰서도 이날 10대 여학생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로 윤모(18)군 등 3명을 구속했다.[하략]”(출처)

내용이 선정적이다. 황군은 김양에게 저 말 말고도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쌍욕도 했을 것이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기자에게 대충 그런 내용들을 함께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는 유독 저 말을 기사에 집어넣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기사가 너무 밋밋해서 그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사 소재가 너무 평범했다. 아니 할 말로 십대들의 성폭행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사건전개도 뭔가 특이한 맛이 없다. 그저 그렇게 묻혀버릴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살려낸 것이 바로 저 멘트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어릴 때 삥뜯는 애들이 이런 말 자주 했는데’ 하며 피식 웃을 것이다. 기사에 한번은 눈길을 던져줄 것이다. 김양이 황군한테 저 말 들었다고 무서워서 성폭행을 당해도 참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사에 포인트는 준 셈이다. 고로 저 멘트는 바로 기자를 위한 황군의 립서비스였을 뿐이다.

그리고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 옮긴 중앙일보는 여기서 더 오버한다. 본래 기사의 제목을 바꾸진 않았지만 메인화면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꿨다.

원 기사와 같은 취지로 사이트를 편집하는 이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나도 그 제목에 낚였다. 그리고 썩 유쾌하지는 않다. 여하튼 중앙일보의 제목 신공은 이전에도 한번 지적한바 있지만 그런 식은 내가 서두에 언급하였던 ‘어깨에 힘 빼고 뉴스 전하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저열한 방식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