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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주식회사’에 관해 트위터에 올린 내용

#이제 개신교 교회를 다니는 것은 신앙심의 유무가 아니라 지적(知的) 판단력의 유무에 해당한다. 노동자로 사는 것은 착취당함을 앎에도 소득이 있기 때문이라는 반대급부가 있는데, 교회에는 돈과 시간을 갖다 바치고 얻는 것은 내세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신자, 즉 소비자에게 남는 것 없는 장사다

#다만 유산계급은 여전히 교회 다니는 게 남는 장사. 교회 안에서의 네트워크를 통해 변호사나 의사는 먹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산계급은 목사의 따까리 짓이나 하기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대형교회에 찾아가는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다. 교회는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착취 체제

#교회 매물은 신자수로 계산하고 절은 기와 숫자로 계산한다는 속설이 있다. 허언이 아닌 것이 교회는 성경이라는 콘텐츠를 – 업데이트도 안 되는 후진 – 가지고 내세 장사를 하며 신자의 헌금으로 캐쉬플로를 맞추는 – 세금도 안 냄 – 프로젝트파이낸스 사업에 해당한다. 바보들이 수입원인 투자사업

#사랑제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말고가 현재의 썩은 개신교계에서 어떤 이득이 되는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단”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명성교회가 세습을 정당화하고, 사랑의교회가 불법 점거한 공간을 “영혼의 공공재”라고 떠드는 개신교가 정통이라서 정상인 집단인가? 싹 골병이 든 집단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봉사”를 하러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대형교회에 가는 신도를 본 것은 내가 실제 마주친 경험이다. 그의 신앙심은 높이 살 수 있어도 그의 어리석음은 인정할 수 없는데, 이런 노동 착취가 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만연해 있다. “성직자”의 묵인 내지는 의도적 조장 하에서.

#1990년대 말이 지나면서 교회성장론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그것은 마케팅과 자본주의 논리의 도입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소위 말하는 총동원 주일 등의 행사를 통해 경품과 많은 실적(?)을 올린 성도들에게 시상을 하는 해괴한 짓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http://economicview.net/12400/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 후 자기계발서 시장을 연다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불안사회를 전제하고 있다. 가령 노후 자금을 최소한 10억은 모아놓아야 안정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를 위해 실제 이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노후의 경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물론 금융회사와 그와 연계된 경제 연구에서 나온 공포마케팅의 일환이다. [중략]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집단과 나아가 한 사회 전체에 공포의 감정을 조장한다는 점이다.[거대한 사기극, 이원석 저, 북바이북, 2013년, p201]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특정상황에 대한 은유 등으로 쓸모가 많은지라 각종 지면에 꽤 많이 인용되는 영화다. 인용문의 메시지를 이 영화제목에 끼워 맞추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 후 자기계발서 시장을 연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공포심이고 현대의 자기계발서나 재테크서는 이러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시장을 창출한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계시를 통해 독자들의 불안도 잠재우고 영혼도 계발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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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ream“. 위키백과에서 제작됨.

이 그림을 자기계발서의 표지로 쓰면 어떨까?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기계발서를 읽고 신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계발서가 미국, 개신교, 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탄생하고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이 세 요소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남의 도움이 아닌 자조(自助, self-help)를 최대의 미덕으로 여기는 자기계발의 메시지다.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마치 종교의 그것처럼 ‘믿고 실천하면 당신만은 현실의 난관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그 성공은 대개 자본주의에서의 물질적 성공이다.

자기계발 전파자들은 메시지 전파의 대상을 미국의 세일즈맨에서 직장인, 여성, 심지어는 어린이까지 넓혀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각각의 대상에게 자기계발 신화는 불안을, 특히 물질적 빈곤에 대한 불안을 조장한다. 그나마 자본주의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류의 “윤리적 자기계발”이, 저성장으로 접어든 때에는 「시크릿」 류의 “신비적 자기계발”이 유행한다는 정도의 차이다. 이제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은 자기계발 신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개인의 불안으로 전가되었다.

올해 읽은 중 인상적이었던 책들

올해가 아직 한 달 조금 넘게 남았지만 글 올리는 것도 뜸하고 해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문가인 그렉 브라진스키의 저서다. 저자 스스로도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쓰인 책이다. 저자는 미국이 자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시도한 허다한 사례 중에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남한을 꼽았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위정자와 시민사회, 남한의 위정자와 시민사회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이승만을 개차반 취급하는 것이 이색적임.

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우리는 경제사조차 서구의 시각을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다. 그러하기에 과거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대국이었던 중국의 경제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이 책은 그 빈틈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왜 중국이 다른 나라와 같은 형태의 제국주의 정책을 취하지 않았는지, 왜 스페인이 남미에 진출했는지, 왜 중국은 은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 화폐전쟁 유의 음모론 책보다는 조금 더 차원 높은 매력을 지닌 중국인에 의한 중국과 그 주변의 경제사.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1984년’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이 한국어였다고 한다. 당연히 대표적인 반공(反共)서적으로 유용하게 쓰였었는데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조지 오웰 스스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였다. 이런 그의 포지션을 잘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이 르포르타주다. 노동자의 삶에 직접 스며들어가서 느낀 불편함, 건강함, 역동성 등을 솔직한 필치로 적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기성 운동권들의 나태함, 위선, 한계 등도 적고 있다. 1984년은 아마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의 작품이었으리라.

점과 선 / 모래그릇

올 한해 의미 있는 발견은 일본 최고의 추리작가로 칭송받는 마쓰모토 세이초다. 배우 김혜수 씨가 읽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고 무심코 빌려본 작품인데 패전 후 일본사회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시대를 뛰어넘는 그 암울함과 긴장감이 가슴에 느껴진다. ‘점과 선’은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의 일화를, 모래그릇은 실력을 인정받은 작곡가의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이 맘에 들어 DVD까지 직접 구해서 봤는데 영화의 작품성도 뛰어나다. 특히 ‘모래그릇’(1974년)은 걸작.

골목 사장 분투기 : 자영업으로 본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

이정우 교수에 따르면 1963~1979년 동안 국내총생산은 131조 원 발생했는데, 지가는 326조 원 상승했다고 한다. 결국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위해 불로소득을 용인 내지는 독려한 것인데, 이제 그 모순이 지금의 자영업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고 있다. 아무리 벌어도 높은 임대료 때문에 버틸 수가 없는 구조적 모순 속에 뛰어든 저자가 생각하는 자영업 생태계를 담담한 필치로 풀어나간다. 그 와중에 프랜차이즈 방식 또한 자영업자를 옭아매는데 그 올가미에서 빠져 나온 한 자영업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는 한니발 렉터처럼 식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연쇄살인마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잔인한 캐릭터일까? 저자는 사회의 곳곳에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데 경영인, 외과의사, 특수부대 요원과 같은 이들에게서 이런 특성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인간을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별개로 하고라도 매우 흥미 있는 주장이다. 무엇이 그들을 사이코패스로 태어나게 또는 자라나게 했는가에 대한 이런저런 사례와 임상실험 내용등이 소개된다.

기나긴 이별 / 깊은 잠

올해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견은 레이먼드 챈들러. 한때 흠뻑 반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매력적인 유머코드와 문체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아무리 매력적인 스릴러라 하더라도 스토리의 파악을 위해 대충대충 읽어나가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들만큼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 두 작품 역시 모두 영화화되었는데 ‘깊은 잠’의 경우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둘 다 소설이 더 재밌다.

지상의 위험한 천국 : 미국을 좀먹는 기독교 파시즘의 실체

저자는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도다. 일종의 인사이더인 셈인데 그런 그가 미국의 개신교 중 일부세력이 어떻게 파시즘적인 성향을 강화시켜가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집단 자살극이나 벌이는 “소수의 광신도”면 “사회의 다양성” 차원에서 내버려 둘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미국 사회 전반을 극단주의로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티파티 등의 극단주의 세력이 미국 정치를 뒤흔드는 꼴을 보면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위에 소개한 책과 함께 읽으면 미국 사회의 극우 세력의 실체가 좀 더 명확히 다듬어진다. 원제는 The Wrecking Crew로 ‘자신이 탄 배를 스스로 파괴시키는 선원들’을 일컫는 표현인데, 저자가 고발하고 있는 우파들의 행태를 보면 이 표현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즉, 정치권에 진입한 우파들이 스스로를 반정부 세력으로 자처하며 정부의 긍정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파괴시키는데 주력한 결과, 현재의 미국사회는 비효율적이고 사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조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박정희의 맨얼굴 : 8인의 학자 박정희 경제 신화 화장을 지우다

“독재는 했어도 경제는 살렸다”는 주장이 당연시되는, 또는 더 노골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 이러한 시도는 분명 유의미하다. 민주당 의원을 지낸 경제학자 유종일 씨가 주축이 되어 이정우 씨 등 진보적인 연구진이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다. 충분히 좋은 내용이 담겨 있으나 다만 기획의 제약조건 때문인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을 조명하지 못하는 미흡함이 아쉽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시도들을 아예 기획 시리즈로 해서 내면 어떨까 싶다. 레이디 가카가 분노하시겠지만.

투자대상으로서의 남한교회에 대한 단상

그 후 1990년대 말이 지나면서 교회가 정체되고 성도 수의 성장이 둔화를 넘어 하향세로 돌아서자 교회성장론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그것은 마케팅과 자본주의 논리의 도입입니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도입하고 성공한 사례가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의 윌로우 크릭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입니다. 자신의 교회가 속한 곳의 지역주민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여 거기에 알맞은 홍보 전략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한국 같은 경우는 자신들의 교회에 한 명의 성도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소위 말하는 총동원 주일 등의 행사를 통해 경품과 많은 실적(?)을 올린 성도들에게 시상을 하는 해괴한 짓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 멀쩡히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 교회로 데리고 오는 짓들을 하기 시작합니다.[진정 회개할 곳은 교회다, 권영진 지음, 리북, 2011년, pp171~172]

스스로가 목사이신 권영진 씨의 한국교회에 대한 쓴 소리를 담은 책의 일부다. 대형화, 자본주의화, 세속화, 정치화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황을 내부자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비판하고 있다. 여러 주제들이 마음에 와 닿지만 어디까지나 국외자인 내 입장에서는 – 특히 최근의 나 – 이 인용문에 공감이 간다. 바로 연휴 3일 동안 “총동원 주일”에 동원된 듯한 전도사들로부터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간 수명의 전도사들이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처음 얼마간은 “누구세요?”라고 응답하며 일없으니 가보라고 조용히 이야기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귀찮아 아내와 나는 인터폰의 비디오를 슬며시 본다. 택배 노동자 차림이 아닌 낯모르는 이들이 있으면 십중팔구 이들 전도사다. 연휴기간 역시 아내와 나는 조용히 비디오를 지켜봤다. 그들은 역시 예상대로 연휴 기간 동안 전도에 동원된 신도들이었다.

하필 석가탄신일에 그토록 유난스럽게 더 자주 전도를 다니는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다. 다만 중학생이 되었을까 할 정도의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된 그 행동이, 조금만이라도 응답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을 언제라도 침범하겠다는 스팸 메일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는 요즘 와서 그 폐해가 드러나 세력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다단계 판매와 뭐가 다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러한 전도활동은 자본주의化된 교회 주식회사의 활동일 따름이다. 그들이 나라는 특정 개인의 종교적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한 것이라면 문 앞에서 좀 더 기다리거나 다른 날 다시 와서라도 전도를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 정확히는 그들을 보낸 교회는 – 나의 구원이 아닌 신도수의 양적증가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에 내가 응답이 없자 미련 없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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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원 전도주일”로 구글링하여 발견한 이미지
 

트위터에서 이런 경험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자 어떤 이는 자기 남편이, 집사 친구 때문에 “총동원 전도주일” 기간 동안만 그 교회에 가고 올해엔 경품으로 중국제 스테인리스 주방기구를 받아왔다고 한다. 앞서 말한 다단계 판매도 생각나고 어릴 적 친구를 학원에 데려오면 참고서를 공짜로 준다던 주산학원의 마케팅 전략도 생각난다. 중국제 스테인리스 주방기구에 그 분의 영혼을 얼마나 더 많이 구원받았을지 궁금하다.

물론 교회도 성장이 정체되어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신도들이 편안하게 머물러야 할 적절한 공간도 마련하고 구휼활동도 할 돈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남한의 개신교계의 성장욕구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권영진 목사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 성장욕구는 자본주의 기업의 그것과 내용상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거기에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보다 더한 특혜를 받고 성장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남한교회야말로 사모펀드와 같은 투자자들이 노릴만한 투자대상으로 가장 적당한 자산이다. 소비자들은 콘텐츠에 대한 확신이 있고 스스로 새로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휴일노동도 불사한다. 경영자들은 정치권과 긴밀하게 연결돼있어 정치적으로 시달릴 가능성도 적다. 세금도 내지 않는다. 현재 투자의 장애요인은 자신이 자본주의 기업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서적 거부감 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몇 개


명동의 볼거리가 된지 꽤 되었죠. 다른 나라에선 구경하기 힘든 풍경일 듯.

“마약김밥”이란 특이한 별명이 이색적인 히트상품. 와~~ 할 만큼 기막힌 맛은 아니지만 일종의 별미로 적당한 간식이 될 만한 상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 수 있는 한 사례로 꼽을만한….

금발에 푸른 눈의 외모를 가지신 예수님.

“성경으로 본 공산주의”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동아일보에 전면광고로 실은 글. “엥겔스는 “정신은 물질의 생화학적 부산물”이라고 하며, 신의 존재도 부정하고 영혼의 존재도 부인하는 유물론 사상이기 때문에 사람 죽이는 것을 개, 돼지처럼 거침없이 살인을 감행한다. ” 이런 글도 적혀 있다.

Occupy 운동에 관한 책에 ” 김어준 추천”이란 마케팅이라니. 이런 책을 기획할 정도면 김어준 씨의 생각하는 바와 오큐파이 운동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집 귀염둥이 어쩜이.

한편 이런 무서운 모습도 있다.

지루한 회의시간에 그린 낙서

어느새 슬며시 봄이 왔다.

발톱을 갈자~ 발톱을~

치적이었던 UAE원전,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오늘자 매일경제 종이신문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긴 하지만 금융권인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소식은 한편에 제쳐놓은 채 ‘이슬람채권 무산위기 꼬이는 원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어 신문은 머리기사를 포함, 네 꼭지의 기사들을 통해 이슬람채권, 이른바 수쿠크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의 잡음을 전하고 있다. 신문의 논조는 대체로 수쿠크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법률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의 맹렬한 반대로 인해 벽에 부닥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수쿠크인가?

수쿠크, 즉 이슬람채권은 이슬람국가들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개발되었다. 이자를 받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이자 대신 배당금으로 수익을 배분받게 된다. 일종의 꼼수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금융권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쿠크가 왜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일까? 이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가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UAE원전 수주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언론 지상에서도 그렇고, UAE원전 사업이 단순발주 사업이 아닌 프로젝트파이낸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밝혀진바 있다. 문제는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부담분이 너무 막대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유력한 자금조달창구인 수출입은행도 이 정도면 벅찬 규모다. 따라서 조달방식 다변화를 위해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방식이 수쿠크를 통한 오일머니 조달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3일 기재위 조세소위 회의록을 보면, 임종룡 기재부 1차관은 “유에이와의 계약 내용 자체가 저희가 반 정도 파이낸싱을 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본래 지난해 12월 원전사업에 이슬람국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이슬람채권에 과세특례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기재위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 임 차관은 파이낸싱이 안 되면 계약 자체가 파기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파이낸싱을 하도록 했으니까 저희는 해야 되겠다”며“계약서 내용 자체는 잘 모르지만 파이낸싱을 해야 한다는 부분은 틀림없이 들어가 있다. 186억달러 중 100억달러 이상을 파이낸싱해야 한다”고 말했다.[“UAE원전 수주 조건, 한국에 유리” 한전, 작년 국회에 ‘거짓보고’ 의혹]

이 정부 들어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사업들은 UAE원전, 터키원전, 브라질고속철도 등이 있다. 이러한 사업들의 특징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단순발주 사업이 아닌 일종의 수출금융 성격의 프로젝트파이낸스 성격의 자금조달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내금융기관은 국책은행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 규모의 해외사업, 특히 발전소와 같이 현금흐름이 안정적이지만 장기간 운영되는 방식의 사업의 요구조건을 맞추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에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자금수요자가 이슬람채권을 발행하여 이슬람의 국부펀드 등에게 팔아 자금조달에 쓰는 것이었다. 로컬뱅크에게 돈을 끌어다 쓰려는 심산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 수익을 이자로 볼 수 없는 이슬람채권의 특성에 맞게 사실상의 이자라 할 수 있는 투자자 수익에 대한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배당소득세, 양도세, 취등록세, 부가가치세 등을 면제해주려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는 수쿠크

그런데 별 문제없으리라 여겼던 – 원전을 우리 돈 빌려줘 가면서 지어주어야 하느냐는 좌파들의 비난은 개무시한다 하더라도 – 원전 자금 조달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바로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개신교계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목사님이 절 앞에 가서 “예수 믿지 않으면 공산당”이라는 극언을 늘어놓는 이 나라에서 “이슬람”이 연관된 투자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법의 통과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단체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다. 이들의 대표적인 반대논리는 △투자수익의 테러단체로의 지원가능성 △수쿠크 자금이 이슬람율법의 적용을 받게 되므로 금융주권의 침해 우려 △다른 나라와 달리 지나치게 많은 세제혜택 등을 꼽고 있다. 이들은 “법 개정 반대가 자칫 종교적 갈등으로 비치는 걸 경계하고 있다”지만 어쨌든 개신교 단체가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한장총과 한기총의 공식입장은 저렇듯 점잖은 표현이지만 기재위 국회의원 등에 대한 일반교회의 공세는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다. 한기총은 이미 안상수 씨를 찾아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고, 한 의원은 “윤증현과 함께 기독교2적으로 규정하고 행동으로 빈말이 아니란 걸 보여주겠다”는 협박 문자도 받았다. 요컨대 고의든 아니든 교회일반에게 수쿠크의 허용은 국내 이슬람교의 세력 확장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치적(?)과 종교와의 갈등

경제는 무당파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정부는 스스로를 실용주의적 정부라 부르고 MB는 자신이 정치와는 무관한 경제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원전 수주도 어떻게 보면 – 적어도 처음에는 – 무당파 적이고 종교와 무관한 경제행위로 보였다. 하지만 이 사업방식이 수출금융 성격이라는 사실에 진보진영이 분노하고, 다시 그 조달방식이 이슬람채권이라는 사실에 교회가 분노하면서 사업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고 있는 일차적 책임은 현 정부의 제멋대로 “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생략된 사회적 합의,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정보의 공개, 올바른 사업타당성의 평가가 뒤늦게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비판이 거세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달 수도 있는 과잉반응까지 낳게 된 것이다. 다원화 사회에서의 일방통행이 소신과 실용주의로 포장되는 상황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한편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반응은 종교적 갈등으로 비치는 걸 경계한다는 그들의 발언과 무관하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한 예로 이슬람율법 샤리아에 의해 운영되며, 이에 저촉되면 자금을 회수해서 혼란을 야기하기에 수쿠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보자. 샤리아에서는 비도덕적인 사업에의 투자를 금하는데 술, 도박, 매춘, 무기 등의 사업이다. 이러한 투자 가이드라인은 영국 개신교 단체 등도 운용하는 사회책임펀드에서도 동일하다.

이외에도 유례없는 특혜와 테러단체로의 지원 여부 등의 각론의 문제제기 등은 어떤 면에서는 총론의 반대를 위한 방패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혜가 있다면 각론에서 그 부분을 조정하면 될 일이다. 테러단체로의 지원은 논리가 궁색해서 달리 반박할 대항논리가 없다. 아예 중동과 –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가 주요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역 – 경제행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유사한 느낌인데, 사실 최고의 거물 테러리스트는 국내 개신교 단체가 부흥회에 초청했던 “조지 War 부시”다.

MB 정부 최대의 레임덕?

한편 이번 사태는 향후 정치지형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짐작된다. 스스로가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기간 이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불교계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그 와중에 개신교계와는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개신교계가 MB정부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실용주의가 종교적 근본주의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국내정치에선 볼 수 없던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황급히 발을 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고도 국회에서 처리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결국 개신교계의 입김이 먹혀들어 국회통과가 어렵게 되면 레임덕은 당연하고, 최악의 경우 정부 스스로의 치적으로 포장했던 UAE원전의 계약무효 가능성까지 점칠 수도 있다. 구제역 등으로 사나운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다시 원전수주와 수쿠크로 돌아가면 애초에 이러한 일의 진행이 실용주의적으로 되었으려면 수주의 공은 한전 컨소시엄에게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였고, 수쿠크는 원전PF라는 특수상황에 의해서가 아닌 외화표시 채권의 역차별 방지라는 본래의 목적 하에서 진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UAE원전에서 시작된 업적 주의적 행태와 임기응변식 처방 모색은 결국 자신의 최대 지지 세력까지 적으로 돌려버리는 자충수를 두는 상황으로까지 몰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