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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경제시스템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회?

신용평가업계도 위기감이 감돈다. 알파고, 아니 ‘알파크레딧’이라는 이름의 AI가 신용평가 영역을 침범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AI의 재무 분석 결과 00사 부도율 7.25%, 고로 신용등급은 BB+”와 같은 계량적 판단은 당장이라도 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빠르게. 사실 신용평가가 1200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할 정도의 계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분명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AI가 신용평가업계에 도입될 경우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고 했다.[알파고가 신용등급을 매긴다면]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 그 인간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한국인이겠지만 – 충격을 안겨준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알파고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지에서는 이미 주기적으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바둑이 꼭 경제와 관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바둑이라는 작은 세계에서의 알파고의 가치판단과 정책결정이 경제 시스템이라는 더 큰 바둑판에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에 따른 보도내용이 많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켄쇼라는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소프트웨어 이야기도 있고 인용한 기사와 같은 호사가적 가십성 기사도 있다.

인용기사처럼 인공지능이 신용평가에 도입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용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했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에 관한 부조리는 크게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이나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하는 엄격한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은 고객유치를 위한 등급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선제적으로 등급조정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투자자는 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처럼 냉정한 신용평가로 등급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SF영화나 스릴러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케인 주연의 Billion Dollar Brain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한 미국 자본가가 소련을 침공한다는, 비틀린 냉소적 정치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소련 침공 계획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정한 판단으로 명령을 내리기에 때로 브레인은 아군인줄 알았던 이까지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중 한 배신자가 컴퓨터에 잘못된 명령을 몰래 입력하여 의사결정을 바꾸는데, 결국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잘 말해주는 장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순환론이기는 하다. 인간의 결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계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계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도”나 “국가”라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인공물로 때로 매몰차 보일 정도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프트웨어랄 수 있다. 신용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계적이고 냉정해야 할 신용평가 분석가가 실적에 시달리고 친분에 판단이 좌우된다면, 기계가 의사결정과정의 상당부분을 대체한다고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신용 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면 우리 경제 시스템의 큰 부분 하나가 인공지능에 맡겨지는 셈이다. 이런 고급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의 효율성이 검증된다면 장래에 보다 고차원적으로 전반적인 사회의 경제기획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개인의 한계효용을 빅데이터 형태로 수집하여 이를 분석하고 파레토 효율이 도달하는 시점에서의 상품생산량을 결정해주는 과정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SF적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미래는 바로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이 적용된 계획경제 시스템이란 점이다.

시장경제 이론과 계획경제 이론의 조화로운 만남일지도?

신용평가 후진국 중국을 보며 생각나는 또 다른 후진국

S&P나 무디스와 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주택 거품 당시 위험한 모기지 담보부 채권의 등급을 높게 매기고 금융위기의 와중에서야 사후적으로 정크로 강등해서 비난을 초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거의 12.7조 달러에 달하는 채무 중 겨우 1.4%만이 AA 등급 이상의 등급을 받았을 뿐이고 가장 높은 등급의 채권은 주로 정부가 보증하는 패니매나 프레디맥 같은 회사, 그리고 최상위 채무자가 발행하는 것들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최상위나 많은 보증을 받는 국유은행들에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지방정부나 민간 부동산 회사에 이르는 기관들이 똑 같이 높은 등급을 얻어내고 있다. [중략] 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다른 이들에 따르면 현지 신평사들은 특정 회사의 정부와의 관계가 그 비즈니스나 부채 상환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고려한다. 그들은 중국에서의 대부분의 차주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들이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높은 등급의 회사가 많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신평사들은 또한 해외에서 자금을 일으키는 국유기업들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와 연계된 회사들은 중앙정부와 연계된 회사들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Can All Chinese Debt Be Rated Top Quality?]

중국의 후진적인 신용등급 시장의 상황에 대한 WSJ의 글 중 일부다. 시장에서 채권가격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신용등급의 중요성은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례로 가깝게는 금융위기에서의 모기지 채권에 대한 엉터리 신용등급은 시장참여자들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고 금융위기를 심화시키는데 한 몫 단단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며 지금 그와 유사한 상황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신평사들이 못미더워서 자체적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겠다고 했던 중국 신평사들이 WSJ 보도에 따르면 정작 중국 본토에서 발행된 위안화 채권의 97%에 AA또는 AAA 등의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들 평가가 사실이라면 지금 중국은 세계 최고의 신용을 가진 국가인 셈이다.

해외 신평사가 국내기업에 대해 박한 이유로 공통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컨트리 리스크다. 남북분단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기본적으로 점수를 깎고 들어간다. 하지만 이 변수는 점차 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더 중요한 매크로 환경은 이른바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에서의 소유-경영의 불투명성에 따른 리스크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국내 신평사는 오히려 이런 특수성이 높은 신용등급의 근거가 된다. 즉, 순환출자로 엮인 “재벌”社에 속해있는 계열사는 회사 자체의 능력보다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신용 리스크 등이 불거질 경우 모기업에서 자금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믿음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부실한 공사(公社)의 프리미엄도 상당하다.[신평사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하지만 중국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신용평가 체계도 후진적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등급보다 상향 조정되곤 하는 평가등급은 “국내적 상황”이라 치부할 수는 있지만, 중국 신평사들의 고려사항인 정치적 고려요소가 국내 신평사들에게도 중요한 평가요소라는 점은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회사 자체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정부의 지원가능성”, “모기업의 지원가능성”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구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1 2013년 동양사태 이후 독자등급의 도입을 서두르던 당국은 최근 “시장충격을 고려한 신중론”으로 급선회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엉터리 대기업 계열사나 부실 공기업은 또 다시 생명을 연장하며 자금시장에서 갑질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신용평가사’라는 도끼

지난번 글에서 살펴보았던 KT ENS “대출사기“건에 대한 더벨의 분석기사다.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대출과정에서의 신용평가사의 부실한 자산실사에 대해 지적한 기사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KT ENS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자산 유동화의 기초자산에 대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또 기초자산이 지나치게 과다 계상됐는데도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가치의 적정성에 대해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자산유동화를 위한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기초자산의 가치도 적절치 않지만 신용평가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략] 증권사 구조화금융 담당자는 “규제의 유무와 상관없이 유동화를 하면서 실사와 가치 평가를 빼먹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절차가 법이나 규제로 강제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가능성도 항상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구조화 신용평가, ‘위험고지·여과’ 기능 부실, 2014년 2월 17일, 머니투데이 더벨]

자산실사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주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회사 혹은 취득, 합병, 기타 유사한 금융 계약 이전에 잠재적 인수자가 그 목적회사나 자산의 가치와 위험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KT ENS 매출채권 유동화 건에 있어서의 자산실사 시에는 유동화의 기초자산인 KT ENS와 협력사의 재무상황 및 회계의견이랄지 계약서에 대한 법률의견, 나아가 기초자산의 과다계상 여부 등이 면밀히 검토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용기사를 보면 해당 신용평가사가 꼭 그렇게 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뉘앙스다.

자산실사를 영어로는 Due Diligence라고 한다. 왠지 “자산실사”란 우리말과 딱 들어맞지 않아 어색한데, 이러한 과정은 영미권의 금융시장에서 처음 시작하며 그들이 쓰기 시작한 것인 만큼 그들의 표현이 오리지널이고, 이 과정을 들여온 우리가 그 본래의미에 맞게 고쳐 쓰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1933년에 제정된 미국의 증권법 제11조의 조항 제목으로 처음 등장하였는데, 브로커 또는 딜러가 그들이 파는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를 조사/분석하도록 강제한 조항이다. 이러한 어원을 살펴보면 대충 그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다시 해당 사건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기사는 과연 신용평가사가 그러한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기울였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여신승인의 절차로 제3의 전문기관의 의견을 그들의 승인근거로 삼으려 신용평가사에 기대고, 신용평가사는 제한적 정보로만 자산을 판단하였다는 것을 핑계로 – 심지어는 스스로 언론기관이라는 핑계로 – 책임지지 않는 평가 등급을 매기고, 금융기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책임 없는 평가 등급을 근거로 여신을 승인한다. “신용”이란 표현이 굉장한 불신용의 관계 속에 엮인 셈이다.

중요한 혁신사항은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도끼잡이 axemen 에 대한 승리로 귀결되는 도끼 axes 의 독립 전쟁이다. 이제 목적을 고르는 것은, 다시 말해 어느 머리를 잘라야 할지 정하는 것은 도끼라는 말이다. 도끼잡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설의 마술사의 도제와 같은 방식으로 도끼를 멈추는 것이다. 도끼에는 없는 생각을 바꾸도록 하거나 혹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박성훈 옮김, 자음과 모음, 2013년, pp244~245]

괴테의 ‘마술사의 도제’라는 이야기를 바우만이 인용하며 현대사회에서 “수단과 목적의 지위 차이가 제거”된 상황의 설명에 사용했다. 현대 사회에서 도끼는 도끼 잡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움직인다. 도끼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 때로는 자체의 생존의지로 – 작동한다. 현대 전쟁의 학살자는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컴퓨터 조작자처럼 ‘실행 버튼’을 누를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신용평가사도 어쩌면 도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존재. 그렇다면 그 도끼의 도끼 잡이는 누구일까?

신평사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해외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받는 건설사가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GS건설이 해외 신평사의 신용등급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해외 신평사의 신용등급을 가진 국내 건설사는 포스코건설 단 1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포스코건설의 신용등급도 국내보다 크게 낮은 탓에 해외 채권 발행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해외 신평사의 신용등급 무용론이 불거지고 있다.[해외 신평사 신용등급 무용론 대두]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국내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고평가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 신평사보다 평균 여섯 등급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평가기업이 내는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인 신평사 입장에서는 경쟁사보다 낮은 신용등급을 부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국내 3대 신평사, 신용등급 ‘뻥튀기’ 심각]

같은 신문에서 같은 날짜에 보도된 두 기사다. 한쪽은 해외 신평사의 지나치게 박한 신용등급을, 한쪽은 국내 신평사의 지나치게 후한 신용등급을 비판하고 있다. 쓴 웃음이 지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이 초국적화되고 기업의 신용도를 바라보는 기준이 균일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신평사와 해외 신평사의 눈높이는 사뭇 다르니 말이다.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두 번째 기사에서 원인으로 들고 있는 평가받는 기업이 내는 수수료가 수익원이어서 신평사의 점수가 후할 것이라는 분석은, 물론 중요한 모순이긴 하지만 절반만 사실이다. 그게 주요원인이라면 역시 평가받는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해외 신평사의 국내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이 박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 신평사가 국내기업에 대해 박한 이유로 공통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컨트리 리스크다. 남북분단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기본적으로 점수를 깎고 들어간다. 하지만 이 변수는 점차 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더 중요한 매크로 환경은 이른바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에서의 소유-경영의 불투명성에 따른 리스크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국내 신평사는 오히려 이런 특수성이 높은 신용등급의 근거가 된다. 즉, 순환출자로 엮인 “재벌”社에 속해있는 계열사는 회사 자체의 능력보다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신용 리스크 등이 불거질 경우 모기업에서 자금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믿음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부실한 공사(公社)의 프리미엄도 상당하다.

국내 신평사가 외국 신평사보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지만, ‘뒷북’ 신용등급 조정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중략] 투자적격으로 분류됐던 LIG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에야 신용등급이 강등됐다.[국내 3대 신평사, 신용등급 ‘뻥튀기’ 심각]

이런 뒷북 신용등급은 주되게 국내 신용등급이 피평가기업이 갑인 상황에서 양산되는 “주례사식” 신용평가가 원인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관계기업이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 평가의 근거가 된다. LIG건설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인데, 이 회사는 그룹이 지켜줄 것이란 시장의 믿음을 근거로 법정관리 바로 직전까지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이니 그룹 계열사나 개발공사 등의 신용평가 레포트를 읽어보면 한심할 때가 많다. “현금흐름도 원활하지 않고, 부실사업도 많고, 우발채무도 만만치 않은데, 결론적으로는 모기업 혹은 국가의 –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 보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A등급을 부여한다”는 식이다. 반(反)시장적 요소가 가장 시장적인 평가의 근거가 되는 장면이다.

알다시피 신용평가는 대공황 등 경제적 격변기를 거치며 그 평가의 객관성이 시장참여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되며 발달해 왔다. 이제 “신용”이라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어느 단어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지난 2008년의 위기를 “신용위기(credit crunch)”라 부른 사실에서도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물의 윤활유인 돈을 은행에서 제공한다면, 그 돈의 흐름에 대한 믿음은 신평사가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신용평가의 신뢰도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만일 은행이 제공하는 화폐가치가 신평사가 제공하는 신용처럼 들쑥날쑥하면 어떻게 될까? 아노미 상태가 될 것이다. 신평사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번역]정직한 평가기관이 진실을 말한 죄로 벌을 받았다.

* 배리리트홀츠(Barry L. Ritholtz)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번역하여 올린다.

반면에 헛소리로 행상하는 기관들은 보상을 받았다.

정부가 지원하는 3개의 거대 평가기관들은(기술적으로는 정부가 공인한 통계적인 평가 기관이라 알려진) – S&P, 무디스, 그리고 피치 – 모두 엄청난 사기를 저질렀는데, 이는 2008년의 경제 추락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그들은 더 높은 등급의 대가로 뇌물을 받았고, “그들의 영혼을 팔았고”, “부적절한 등급을 은폐하는 문화”에 관여했고, 그들을 믿는 이들은 멍청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걸 보라.

그들은 또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지 않으려는 게임을 벌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정부의 등을 긁어줬고, 그래서 정부는 그들의 등을 긁어줬다.

한편, 정부의 지원을 받는 평가기관 이건존스(Egan-Jones)는 국가들과 기업들의 평가에 일관되게 더 정직하고 솔직담백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등급을 강등시키는데 있어 무디스나 S&P에 비해 더 공격적이었다.(그리고 이걸 보라.)

그래서 어떤 평가기관이 일 년 반 동안의 정부지원 평가기관의 지위를 박탈당했을지 추측해보라.

옙… 이건존스.

금융위기를 다루는 정부의 전체적인 전략이 사기를 은폐하는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금융개혁” 법안이 평가기관의 허튼소리를 개혁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없다.) 정직이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

후기 : 이건존스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S&P, 무디스, 피치의 주요 비즈니스모델이 사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 그리고 이건존스는 전체적으로 보다 객관적이고 정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 이건존스가 미국과 그가 편애하는 아들들, 예를 들어 대형은행들의 신용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배제당하고 벌 받았음은 명확하다.

구조화 금융, 그 자체가 악(惡)인가?

어찌 보면 구조화 금융도 사실 말이 어려워보여서 그렇지 기존의 자금조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다. 자금조달은 금융시장 혹은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또는 기관)과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또는 기관)이 시장에서 존재할 때에 발생한다. 즉 수요와 공급이 상호 맞교환되는 상황이다. 구조화 금융은 이러한 기존의 자금조달에서 몇 가지 특수한 기법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구조화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맞춤식 금융’이라고 이야기하겠다(어쩐지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A 회사가 1백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경우 회사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증자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고 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였다. 구조화 금융은 금융자문사가 그 자금조달의 목적 및 성격을 분석하고 그것의 자금조달 방안을 쪼갠다.

만약 이 자금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쓰일 돈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회사의 운용자금과는 달리 일정수익의 창출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미래의 현금흐름의 분석이 중요하다. 큰 수익창출이 기대되면 이것을 바탕으로 자금공급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조달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자문사는 이 사업타당성을 검증해줄 객관적인 신용평가기관을 선정하여 자산실사(Due Diligence)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의 좋은 평가는 상품(즉 1백억 원의 자금조달)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 다음으로 자금조달 주체를 결정하는데 이 말은 A회사가 차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주체가 차주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소위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 기법인데 보통 A회사가 주주가 되는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인 B회사를 설립하여 B가 차주가 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통제받지 않고 대출을 증대시킨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SPC설립의 목적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자금의 사용을 A회사와 절연시켜 부동산 개발이라는 사업목적에만 쓰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B회사의 설립 여부가 결정되었으면 이제 1백억 원의 자금조달 구성방법이다. 일단 금융자문사는 A회사가 일정비율의 자본금(예를 들어 1백억 원의 20%)을 태워 책임감을 부여시키려 한다. 더불어 A회사 입장에서도 출자를 해야 그 배당을 얻게 된다. A사가 가장 많은 위험을 부담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갈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금융자문사 – 이제 주선의 기능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 는 80억원을 부담할 은행을 찾아 나선다. 은행은 A회사의 신용등급, 자산실사의 결과 등을 감안하여 B회사에 자금을 대출해준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신생회사인 B는 A회사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된다. 위험은 A회사보다 적고 수익(대출이자)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1백억 원을 투입하여 부동산 개발을 하고 분양을 하여 1백 5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하자. 먼저 B회사는 대출이자를 10억원 내고 세금을 15억원 낸다. 나머지 25억 원은 A회사의 배당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B회사는 청산된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그런데 분양에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실패한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은행으로서는 부실대출이 된 셈이고 국가는 세금을 못 걷고 A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악순환이다.

이 과정이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거시적인 차원이나 미시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 경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구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2) 해당 사업의 사업성이 우수하여야 할 것이고, 3) 이러한 과정을 신용평가기관이 자산실사에 충실히 담아야 할 것이고, 4) A회사의 사업수행능력이 뛰어나야 할 것이고, 5) 금융자문사가 구조를 잘 짜야 할 것이고, 6) 은행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부실대출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대출업체의 막가파식 대출 – 즉 6번 과정의 실패 – 이 한몫했지만 이는 또한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집값이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는 1번 과정에 대한 과신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금융기관들이 그렇게 광적으로 그 시장에 몰려들게 한 것은 3번 과정에서의 심각한 실패가 한몫하였다. 이 과정은 어쩌면 금화를 만듦에 있어 실질적으로 담겨야 할 금의 양보다 적게 만드는 악화(惡貨)의 주조과정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그런 짓을 탐욕스러운 군주가 저질렀지만 이번에는 탐욕스러운 신용평가기관이 저질렀다.

예전에는 화폐 자체를 악으로 보기도 하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하기도 하고, 금융기관 자체를 금권주의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불태환 지폐를 사기라고 여기기도 하고, 지급준비율이 엉터리라고 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열거한 기능을 시장에 필요한 요소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찌 보면 보다 큰 시스템적인 문제일 것 같다. 같은 이치로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구조화 금융 그 자체를 지목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화폐가 나빠서 신용위기가 왔다기보다는 그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했는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