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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에 대하여

항상 밀도 있는 글들로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시는 periskop 님이 내가 올린 글에 대해 좋은 지적을 해주셨다.(해당 글 보기) 지난번 ‘북한의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글에서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이 OECD 평균의 10배에 달한다는 기사를 인용한 바 있는데, periskop님이 이 기사의 사실관계와 판단방식이 옳지 않음을 지적해주신 것이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새삼 나는 또 다시 자문해본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내용전달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물론 코흘리개 시절에야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는 절대적이었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다가도 ‘신문에 나왔다’고 우기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불신으로 변했다.

‘땡전늬우스’, ‘조중동’, ‘사이비 기자’ 등은 매스미디어에 대한 권위의 내부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권위는 외부적인 환경변화에도 위협을 받았다. ‘블로그’, ‘시민사회’, ‘인터넷 포럼’, ‘내부고발’ 등 대안매체 또는 독립적인 목소리의 등장 등이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하튼 매스미디어의 안팎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는 상호조응하면서 발달해왔고, 이제 매스미디어는 그 스스로 새로운 역할과 위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요컨대 현 시점은 결국 매스미디어가 흔히 ‘언론(言論)’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미디어였지만, 그것이 언론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periskop님의 집요한 사실추적과 그것의 공표행위는 매스미디어가 더 이상 ‘정보의 성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기사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반박하는 데에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을 것이고 효과가 미미하였을 것이다.

다시 애초 발단이 된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일단 periskop님의 지적에 따르면 기자는 크게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그는 기획재정부 배포자료에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액’이 0.8%임에도 0.3%라고 잘못 받아 적었다. 둘째, 그는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을 ‘사교육비’라고 간주하는 판단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사는 “한국 사교육비 OECD 10배”라는 엄청난 제목으로 탄생했고,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기사를 읽었다.

periskop님은 글 속에서 은연중에 앞서 내가 회고하였던 매스미디어의 권위약화를 암시하면서 “오히려 독자로서 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을 더 연마”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대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토를 달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 periskop님이 지적하신 기자의 두 가지 실수 중 첫 번째 실수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비판적’인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가이다. 아직도 여전히 상대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에 대해 그 정도까지 확인절차를 밟아야 하는 가이다.

숫자틀린 행위와 숫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끔 주류 경제연구소의 논조에는 반대하지만 그들의 기초 자료에 대해선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자의 저런 어처구니없는 실수에까지 사실 확인절차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차라리 신문구독이나 뉴스 시청대신 통계청 자료에 전적으로 사실관계를 의존하여야 할 것이다.(사실 통계청 자료도 때로는….) 이것은 나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당연한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신문 산업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기자들도 거의 기사를 ‘찍어내는’ 수준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린다고 한다. 질(質)보다는 양(量)으로 승부하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날밤을 새서 피곤해서 숫자를 잘못 봤어도 직업인으로서 그런 기초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다. 그런 기초적인 실수가 ‘독자의 비판적 기사 읽기’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