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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휴지조각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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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2 obverse“.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세계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늘 그렇듯이 제각각 엇갈리고 있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심상치 않다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다. 월요일 월가의 주식시장은 상승하긴 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이 ‘우울한 날(moody day)’이라고 표현할 만큼 소폭의 상승의 그쳤다.

폭락의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원인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주택경기의 침체, 치솟는 유가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블름버그에 따르면 한 월스트리트 전문가는 주택경기 침체가 2009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는 바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약한 달러’에 있다.

지난 주 워싱턴에서는 G7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주요 경제 관료들이 분열되어 있고 세계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뚜렷한 방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 프랑스와 독일은 공동 코뮈니케에 달러 약세로 인해 위험에 처한 유럽의 입장을 담으려 했다. 하지만 미 재무장관 Henry Paulson의 반대로 이러한 시도는 무산되었고 위안화의 대달러 환율조정에 대한 경고만 들어갔다.

현재 1유로는 1.43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유럽의 수출기업들은 이로 인해 큰 곤란을 겪고 있다. 반면에 미국의 수출기업은 약한 달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미행정부는 이를 위해 약한 달러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신뢰가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이다.

미국경제는 사실상 하루 20억 달러씩 유입되는 해외투자(2006년 한 해에 8,800억 달러 유입)로 인해 GDP의 6%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 내 해외투자자나 미재무부 채권의 소유자들이 달러와 채권 보유로 인한 손실을 언제까지 참고 견딜 것이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유동화 시킬 경우 그것은 ‘악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Alan Greenspan은 최근 “분명히 외국인이 견딜 수 있는 이러한 책임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Obviously there is a limit to the extent that these obligations to foreigners can reach)”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1970년대 초 변동환율 제도를 도입한 이래 가장 낮은 환율을 유지하고 있는 달러는 분명 이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미국 내 해외투자자산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다.

1944년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바탕으로 달러화가 전 세계의 유일한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된 이후 실질적으로 세계경제는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으로 표현될 만큼 달러에 대한 전폭적인 의존과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되어 왔다. 달러는 곧 금과 동일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 절대 권력이 붕괴하고 있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한 경고음은 아시아 지역과 산유국에 경상수지 흑자가 집중되면서 이른바 아시아머니와 오일머니의 투자자산 축적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일머니는 전통적으로 유럽 지역 자산 운용을 선호하고 있으며, 아시아머니는 달러 자산에 집중 운용되어 있으나 현재 아시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꾀하고 있어 달러화 약세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달러화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돌파구가 있었다. 70년대에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포기, 80년대에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였다. 이 시기 이러한 시도가 통했던 것은 미국의 패권을 이용한 강제적인 압력도 있었지만 달러를 대체할만한 기축통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유로화가 존재한다. 유로의 경제권은 미국의 경제권과 비슷한 경제규모와 교역규모를 지니고 있어 세계 결제통화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외에도 엔화나 위안화가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권 통화로서의 역할이 부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만만찮은 문화적 저항이 예상되긴 하지만 말이다. 요컨대 ‘오직 하나의 결제 통화’의 시대는 점점 저물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유로가 되었든 엔이 되었든, 또는 위안이 되었든 미국이 예전처럼 강제적인 환율조정 조치를 취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