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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파이낸스를 활용한 근린황폐화 정책

근래에 도로, 항만, 발전소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이나 심지어는 상업시설에 이르기까지  대규모의 시설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에는 예외 없이 프로젝트파이낸스라는 금융조달 기법이 적용된다. 이는 프로젝트파이낸스가 시설수요자의 소요자금 부족, 자금공급자의 장기수익사업의 추구, 건설업체의 수주전략, 사업성에 대한 다양한 주체의 사전검증 등의 이해관계가 일반적인 기업금융(corporate finance)보다 상대적으로 더 조화롭게 융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거의 예외 없이 국책은행인 각 나라의 수출입은행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프로젝트파이낸스를 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각국의 수출을 통한 국부창출이라는 목적이 정책금융과 결합되었을 경우 더 손쉽게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A업체가 B국에 발전소 프로젝트를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선정되었을 경우, A업체는 시설의 건설이외에도 자금조달을 책임지고 있기에 먼저 한국수출입은행을 찾아간다. 해당 은행은 국책은행이어서 신용도가 높기에 그곳의 금융조건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음푸말랑가라라는 지역에 최근 이러한 금융기법을 도입한 발전소 사업이 계획 중이다. 이 발전소는 석탄을 연료로 하여 4,800메가와트를 생산할 “쿠사일(Kusile) 석탄 화력발전소”인데, 환경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기에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강한 반대에 직면해있다. 문제는 이 발전소의 자금을 미국의 수출입은행이 대줄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진영은 이에 해당 발전소가 온실가스 오염을 촉발할 것이라며 수출입은행이 자금을 공급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업은 남아프리카의 국영발전회사인 에스콤(Eskom)의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자금 대출과 보증에도 불과하고 2008년 착공한 이 사업에서 현재까지 확보된 자금은 전체 소요자금 190억 달러 중에서 11% 에 불과하다. 해당 시기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도래한 시기였고, 국제적인 금융시장임에도 이 정도의 자금이 단기간 내에 쉽게 소화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에스콤의 입장에서는 미국 수출입 은행의 자금 대출 결정이 사업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문제는 사업내용에서 이미 “해당 국가는 저탄소 성장계획을 수립하여야 하고 해당 사업은 해당 계획의 결과와 목적에 부합하여야 한다.”라는 수출입 은행의 <고도 탄소 인센티브 프로젝트파이낸싱 정책>을 침해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예상키로 이 사업이 완결되면 남아프리카의 온실가스 배출을 거의 10% 증가시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플랜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해당 사업은 남아프리카의 통합자원계획에서 허용할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린다.

이미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미국 청정에너지와 보호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있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온실가스를 증가시킬 사업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모순된 일이 될 것이다. 또한 해당 사업은 이른바 적도원칙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적도원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이 환경파괴를 일으키거나 지역주민 또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행동협약”인데 비록 현재 그러한 취지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여도 역시 존재의의가 있는 원칙이다.

미국 수출입은행이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금 대출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국의 수출증대 때문이다. 미국 수출입은행이 직접 대출 또는 보증을 해줄 경우 말할 것도 없이 해당 시설을 미국의 건설업체가 수주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수출입은행의 설립목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과연 이런 목표가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혀가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여태의 역사는 ‘경제저격수의 고백’에 드러난바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하에서의 모든 금융 –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스 – 자체가 본질적으로 강대국 이기주의와 계급차별적인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건설설비가 가치중립적인 것처럼 금융 역시 가치중립적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조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이 미약하나마 미국 수출입은행의 저탄소 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적도원칙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목적 원칙을 침해하는 것은 역시 본질적으로 중상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구제금융이 만족스럽지 않기나 한 것처럼 이제 미국정부는 외국기관의 실패와 관리미숙을 구제금융하려 하고 있군요.” ‘평화로운 환경(Pacific Environment)’의 정책감독인 Doug Norlen의 말이다. 이미 막대한 적자를 쌓고 있는 에스콤에겐 이 사업의 성사여부가 중요하긴 하지만 역시 수출입은행의 본뜻은 해당기관의 구제금융이 아닌,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되고 있는 수출 드라이브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국가수출구상(National Export Initiative)은 그 가장 최근 버전이다.

향후 5년간 수출 2배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정책은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리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정책이다. 이미 ‘양적완화’라는 이름을 붙인 통화증발을 위해 수억 달러에 이르는 통화를 찍어냈다. 이 돈은 전 세계 신흥시장에 파고들어 해당통화의 절상, 궁극적으로 달러의 평가절하를 초래하리라는 것이 미국정부의 심산이다. 그리고 이런 역전된 환율은 수출경쟁력의 강화를 의미한다. 미국 수출입은행은 그 값싼 통화를 외국 발전소 시설에 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탐욕스러운 정책목표로 인해 미국 수출입 은행에서는 이 사업 이전에 이미 한번 대출이 거절되었던 4천 메가와트 규모의 인도의 사산 석탄 화력발전소가 최근 다시 승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해당 시설은 연간 2600만 내지는 2700만 톤의 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Doug Norlen은 이에 대해 “은행의 이사회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공공 자금을 화석연료 폭식에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과연 남아프리카에서 이같은 상황이 재연될까? 요즘 G20이 만병통치약 같은데 이런 문제도 해결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