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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울타리로써의 “무급인턴”

주요 직업들이 중산층의 전유물이 된 결정적인 배경에는 인턴직의 증대가 있다. 무급 인턴직은 특히 정치·법조·미디어·패션 분야에서 번성하고 있다. 1,500명의 대학생과 대졸자들을 상대로 벌인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3분의 2가 경기침체 때문에 무급으로라도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눈앞에 당근처럼 내걸린, 그러나 결코 주어지지 않을 유급직 전환을 바라보며, 인턴을 마친 뒤 또다시 인턴직에 취업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착취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에 빌붙어 사는 부유한 젊은이들만 유급 일자리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의회 연구원 조합인 ‘유나이트’에 따르면, 의회 인턴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는 100명에 하나 꼴도 안 된다.[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2014년, pp267~268]

요즘 우리사회에서 소위 “열정페이”라는 씁쓸한 표현이 유행어가 되었다. “애플페이”나 “삼성페이”처럼 스마트 기기에 의한 신기술 결제방식이 아니다. 바로 위 인용문의 설문조사에 나오는 것처럼 무급으로라도 일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는 청년층 구직자를 대상으로 유급직의 전환 혹은 경력에로의 활용 등을 미끼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너의 열정을 높이 사서 일을 시켜주는 것이다’고 적반하장 격으로 꼰대질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말이다.(보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로)

이러한 상황이 요즘의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 표현도 “재능기부” 등으로 매우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에서도 이와 관련한 일화가 가끔씩 소개되어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외교부 무급인턴 모집, 영사관 무급인턴 모집, 희망제작소 재능기부자 모집 등 여러 사례가 생각난다. 당시 대체적인 반응은 “일을 시키려면 돈을 줘라”라며 화를 내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 무급인턴의 문제는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즉, 이러한 고도의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무급이기에 그 자리에 응모할 수 있는 이는 “부모에 빌붙어 사는 부유한 젊은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부모덕에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이는 역시 부모덕에 ‘외교부 인턴’ 등 양질의 ”배움과 실습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무급인턴“의 착취성에 대한 여론이 일자 외교부는 “미 국무성과 일본 외무성 역시 무급인턴쉽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항변했던바 이러한 캥거루식 스펙 쌓기는 우리나 영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바로 그 미국의 무급인턴들이 임금 지급을 요구했다는 사실에는 아마도 눈을 감을 것이다. 세계정치의 중심인 백악관에서 무급으로 근무했던 이들이 2013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주중 9시간씩 일하면서 보수를 받지 못했다 한다. 고용주는 얼마 전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연설로 진보의 칭송을 받았던 오바마다. 이렇듯 “무급인턴쉽”은 없는 이에게는 일종의 희망고문이자 “그들만의 리그”에의 편입을 막는 또 하나의 울타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