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슈 단상

Philippine-stock-market-board.jpg
By Katrina.Tuliao – Flickr, CC BY 2.0, Link

현대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적인 특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입니다. 즉 개별 주주는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주주와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이사들이 회사의 주요 경영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 현실에서는 지배주주가 이사 선임은 물론, 회사 운영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빈번해 보입니다. [중략]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평가가 저하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1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배경하에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이 정치권에서 활발히 논의되었고 [상법 개정안의 주요쟁점 및 제언]

권 비대위원장은 “소위 ‘서학개미’라고 미국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주주 보호가 잘 되기 때문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혁신 기업이고 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기업이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소위 ‘밸류업(기업가치제고)’도 가능하고, 우리 주식시장도 점점 좋아질 텐데, 상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회사에 있는 임원들이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게 없어지게 된다면 기업 발전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고, 우리나라 경제가 더 어렵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고 부연했다.[권영세, ‘상법 개정안’·’명태균 특검법’ 법사위 통과에 “거부권 반드시 행사”]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중략] “외국인 투자가의 경영권 공격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상법 개정은 이들에게 국내 기업들을 먹잇감으로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문제의식과 처방이 잘못됐다”며 “국내에서 미국 주식 시장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주주 충실 의무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이어 “상법이 개정되면 적용을 받는 법인이 100만 개가 넘고, 실력 있는 알짜 중소기업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상법 개정으로 인한 소송에 대응하다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경제8단체 “상법 개정되면 국내기업이 해외 먹잇감 될 것”]

상법을 개정하면(개정안 보기) 소송 남발, 기업의 경영권 위협,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 M&A 위축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여당과 경제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또한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취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다. 개정안은 상장법인 이사회가 합병 등을 의결할 때 주주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하고, 기업이 물적 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 공모 주식의 최대 20%를 모회사 주주에게 배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적인 악행인 교묘한 인적2/물적3 분할을 통한 “오너”의 이익 독점의 폐해를 일부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반대자는 이런 “핀셋”식 처방이 또 다른 우회로를 찾게 해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상법 개정론자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도 ‘회사 또는 회사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이사의 책임을 감면해주지 않는다(제102조(b)항(7)호)’라며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장한다. 영국의 경우 2019년 ‘이사의 지위 자체만으로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라는 고등법원 판례가 있지만, 영국 회사법 제172조 1항에는 ‘이사가 전체로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성공을 촉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출처)돼 있다고 한다. 일본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넣지 않았지만, 최근 해석론이나 일본 경제산업성이 공표한 ‘공정한 M&A 지침’ 등을 통해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참고)

또 하나의 문제는 소송에 갔을 경우 각국의 법정이 누구의 이익에 손을 들어주는가 하는 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월30일 델라웨어주 법원은 테슬라 소액주주가 회사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줬다. 테슬라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에게 560억달러 규모의 스톡옵션 보상 지급안을 승인하자 회사 주식 9주를 보유한 소액주주가 과도한 보상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이다. 법원은 해당 주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머스크의 보상안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2021년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 분할한 이후 상장시켜 LG화학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보호받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참고) 법원의 노골적인 “오너” 보호를 목격하고4 국내 주식을 매입할 이유가 있을까?

상법 개정을 통해 고쳐야할 것은 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기업구조다. 소수의 지분을 순환출자 등의 편법을 통해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분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며 “오너5/총수”라 불리는 패밀리들이 행정부, 사법부, 매스미디어, 경제단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관련법에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만큼 강력한 재벌 카르텔이 아닌 기업환경이기 때문이라 봄이 타당하다. 독점자본은 존재하지만, 우리와 달리 그들은 몇 십 년을 주기로 생태계가 바뀌는 역동적인 환경이다. 지분만큼 권력을 행사한다는 자본주의적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코리아디스카운트”는 고질병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이 2024년 1월~11월사이 12.57%로 집계됐다. 국내주식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전체 수익률을 끌어내렸지만, 해외주식에서 30% 가까운 수익이 나서 양호한 수익률을 향유했다. 인상적인 것은 국민연금의 자산 비중이다. 2024년 11월 현재 전체 자산 중 해외주식은 35.5%, 국내주식은 11.9%였다. 국내 증시가 아닌 해외 증시에 3배 가까운 자산을 배분한 덕에 수익률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주식은 심지어 16%인 대체투자 자산보다도 비중이 낮다. 대체투자 자산 역시 9.32%의 수익률을 시현하며 –4.94%에 불과한 국내 주식의 수익률을 압도하였다. 이른바 불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한 리스크 방어를 국민의 돈주머니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1. 회귀분석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됨.(출처)
  2.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대부분의 기업이 결국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로 이어졌던 만큼 빙그레 역시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출처)
  3.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을 떼어내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그 법인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갖는 기업분할 방식이다. 특히 분할 신설회사를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빈번해지면서 소액주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출처)
  4. 잘못했는데 죄는 아니다? 이상한 이재용 재판
  5. “오너라고 하지 좀 마십시오. 상장회사에 오너가 어딨습니까. 주주들은 오너가 아닙니까?” 최근 참석한 한 학술 세미나에서 연사로 나선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출처)

7 Comments on “상법 개정 이슈 단상

  1. 반론도 일리가 있는 말인것 같습니다.
    주주 권리가 잘 보호되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가 잘 올라서 투자하는 거죠.

    전자 주주 총회 정도만 도입하면 되지 않을까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