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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의 금산분리 철폐 주장 앞뒤가 안 맞는다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금산 분리에 대한 입장은”이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의 답변을 살펴보고자 한다.

“금융만 전문화되면 주택 개발과 토지 개발도 정부 예산 쓸 필요 없다.”

이는 아마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부동산PF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부동산 공급해법에 대한 다른 질문에서는 대안을 재개발에서 찾겠다고 했는데 이와 모순되는 발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관주도형의 재개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가 민주도형의 부동산PF가 활성화되면 정부예산 쓸 필요 없다는 발언은 약간 엇박자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선진금융기법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펀드화돼서 투기를 한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지적하였듯이 금산분리 철폐론자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외국자본이 우리나라를 투기장으로 만들었으니 그들에 대한 대항마로 국내자본에게 은행을 포함한 금융을 넘겨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우리 상태에서 금산분리를 딱 막아놓으면 정부가 갖고 있든지 외국에 주든지,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좋은 대안이다. 정부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안 될까? 아니면 국민주로 넘기던지 사회화된 펀드에 – 이를테면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하고 금융전문성과 청렴성을 겸비한 위원회에서 감시 감독하는 –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 굳이 산업자본에 넘기겠다는 생각을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사실은 알겠지만).

“재벌이 (금융을) 갖고 있으면 마음대로 운영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데 지금은 은행법에 의해서 갖고 있어도 마음대로 못한다.”

물론 재벌이 당장 전횡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서히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제국을 구축해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재벌회사가 갖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금산분리 철폐의 수혜자는 재벌일 수밖에 없다. 당장 매물로 나온 우리금융그룹의 자산은 10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국책 연금기금이 지금 수백조원이 되는데 운영 기법이 없으니, 전부 채권만 산다. 이런 것들이 자유롭게 좀 금융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면 국내의 은행도 우리가 유치할 수 있지 않겠나.”

운영 기법이 없어서 채권만 사는 것이 아니다. 안정성을 위해서다. 미국의 캘퍼스와 같은 연금이 주식투자비중이 높지만 이러한 투기적 방식은 앞서 이 후보가 비판한 바로 그 “펀드 화된 투기” 방식이었다. 이들은 주로 사모펀드나 헷지펀드에 돈을 투입하여 시세차익을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이 진정 이명박 후보가 연금을 통한 은행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현행 금산분리 원칙을 깨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은 기업이 아니지 않는가? 은행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은행소유로 해석해야 옳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소기업 협회가 돈을 모아서, 수백개 회사들이 모여서 하면 된다. 재벌회사가 들어온다고 하면, 4대 재벌은 좀 불이익을 줘서 하면 된다.”

이 부분이 가장 재밌는 답변이다. 이명박 후보의 뜻이 정히 이렇다면 금산분리 철폐를 허하여도 상관이 없을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산업자본의 은행보유를 금하고 있는 은행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굳이 금산분리 원칙을 철폐하고 자시고도 없이 이 후보가 원하는 방식의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즉 법에는 각 개별기업의 의결권을 주식총수의 4%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 100개가 모여서 은행을 공동소유 한다면 1%의 의결권밖에 안 되기 때문에 금산분리 원칙 철폐하지 않고도 중소기업이 소유하는 건전한 은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인가? 4대 재벌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는데… 어떤 식으로 불이익을 줄지 궁금하다. 그들한테는 주식을 더 비싸게 팔 셈인가?

“외국은행에 (우리 금융이) 다 넘어가 버리면 앞으로 산업은행, 우리은행 민영화해야되고 중소기업(은행) 민영화해야 된다. 산업자본이 아니고 금융자본만 들어오라고 한다면 불 보듯이 이것은 외국으로 다 넘어간다.”

이것은 곧 도둑 들어오라고 곳간 문을 열어 놓을 텐데 도둑을 국적에 따라 차별하면 곤란하다는 논리다. 곳간 문을 잘 닫아놓으면 되지 않을까? 원래 그 곳간은 국민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재벌이 반드시 갖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수많은 중소기업과 국민들이 참여하는 이런 국민의 은행으로 만들 수가 있다. 포항종합제철이 재벌 회사가 가진 게 아니고 외국은행들이 갖고 있는데, 포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외국에 넘어가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도 기간산업은 보호한다. 그냥 개방한다고 하니까 어설프게 다 내놓고 다 넘겨준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좋은 이야기다. 기간산업에 대한 보호책은 철저히 강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왜 그것이 기간산업의 민영화를 당연시하고 그것을 산업자본에게 넘기겠다는 논리로 귀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지금 남미의 좌파 정권들은 기간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속속 국유화 내지는 사회화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왜 그 방법을 쓰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공기업의 비효율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이번 삼성 사태를 보면 사기업도 공기업 못지않게 얼마나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는 존재임을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국영기업 또는 공기업의 소유형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인 없는 기업을 어떻게 이 사회가 잘 감시하고 감독할 수 있는가 하는 사회적 통제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본다. 만약 기간산업이 사기업에 의해 사유화된다면 이러한 통제체제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은 명약관화다.

요컨대 이명박 후보의 관훈클럽에서의 답변을 보면 도대체 왜 그가 금산분리를 철폐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궁금해진다. 중소기업 수백개 모여서 은행을 소유하게끔 하려는 것이 그의 복안이라면 현재 금산분리 원칙 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하여튼 생각이 깊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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