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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소회 – 민주통합당의 패착에 관하여

어제 트위터를 보면 진보개혁 성향의 많은 트위터러 들이 소위 말하는 집단 “멘붕” 상황에 시달린 것 같다. 그간 청와대와 여권의 뻘짓을 보았을 때 많은 야권성향의 유권자들이 여소야대 상황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 내리라고 여겼던 상황이었을 텐데, 결과는 예상 밖으로 여당의 – 사실상의 박근혜의 –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여야 간 균형추가 어떻게 될 것이라 예측하지 않았기에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편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통합당이 선거기간 동안 저지른 몇몇 패착이 떠오르며 화가 나기는 했었다.

사후약방문이지만 민주통합당의 패배의 배경을 몇 개 들어보자면, 결과적으로 1) 한미FTA 등을 둘러싼 이념적인 혼선, 2) 박영선 의원이 지적한 “보이지 않는 손”이나 김용민 씨의 처리에 대한 우유부단한 지도부의 대처, 3) 불법사찰 등 총선 이슈의 의제선점 실패 등의 원인이 거론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배경은 당의 정체성과 지지층 일부의 괴리감에서 온 혼선일 것이다. 민주통합당에게는 현재의 한미FTA 이외의 대안이 없었고 다만 반MB의 관성만 있었을 뿐인데 이 부분이 보수 성향 지지층의 이탈을 불렀을 것이다.

두 번째 배경은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1인 지도체제가 아닌 상황이 불러온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 체제는 분명 정도를 벗어난 지도력 부재를 만방에 보여주었다. 김용민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명숙 씨의 코멘트는 “걱정이 많이 된다.”였다. 이후 사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된 후 한 말은 “사퇴를 권고했으나 본인이 표로 심판받겠다 하더라.”였다. 이건 지도력도 아니다. 이 역시 당의 정체성과는 다른 일부 지지층의 인기영합주의에 따른 “전략공천”의 – 실은 전략은 없었던 – 패착이 되었다.

세 번째 배경이 어쩌면 앞으로 민주통합당이 대선까지 짊어지고 나가야할 가장 근본적인 숙제일 것이다. 이제 불법사찰은 대선까지 끌고나갈 성격의 이슈가 아니다. 물론 진상은 파헤쳐야 하겠지만 박근혜 씨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MB의 책임이다.”라 할 것이고 지지자들도 수긍할 것이다. 남은 것은 복지다. 가처분소득의 감소와 내수부진으로 인해 저성장 사회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복지는 박근혜 씨도 전면적으로 내세울 이슈인데 이마저 빼앗기면 자칭 타칭 “진보개혁” 정당의 정체성마저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다시 세 가지 배경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을 형성한다.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의 선거분석 글을 보면 한미FTA에 대한 입장변화가 민통당의 악수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공감하고, 어떤 식으로든 지금과 같은 기회주의적 태도를 버리고서 색깔을 선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존의 FTA를 긍정한다면 각종 복지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조치와 배치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지도력과 결단력일 것이다. 한명숙 씨에게는 결여된.

p.s.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이다. 근소하게 승리했으면 여태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논공행상에 바빠 대선에서 동일한 뻘짓을 반복했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p.s. 2 오늘 자정 이후로 진보신당은 정당등록이 취소되어 더 이상 당명을 그대로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타율적으로 “신”자를 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