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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 사나이

2005년 5월 19일 – 계약조건이 최종 마무리되기 한 달 전에 –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것들은 “리퍼런스증권(The reference securities : 어느 한 신용주체가 발행한 채권)”이라 불렸다. 당신은 전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시장에 대한 보험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채권에 대한 보험을 매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버리(Burry)는 정확히 어떠한 것에 반대로 돈을 걸 것인지를 찾는데 몰두하였다.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나중에는 절대적인 확신으로)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또한 주택대출에서 그것들이 인출되기 전에 실행되었어야 하는 구식의 은행 신용분석을 수행하는 유일한 투자자 같은 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식의 은행가들과는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좋은 대출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쁜 대출을 뒤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대해 반대로 돈을 걸 수 있었던 것이다.[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The Big Short의 일부를 번역하였다. 이 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그러한 금융 붕괴를 예측하였던 이들이 누구누구며, 이러한 예측을 어떻게 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인용문에 언급된 인물은 이들 중 하나로 마이크 버리라는 펀드매니저다.

마이크 버리는 의사였지만 뛰어난 금융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을 활용해 블로그를 운영하였다.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그가 직장을 그만두자 그의 블로그를 눈여겨보던 일련의 투자자들이 그에게 돈을 맡겼고 그는 주식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올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런 그가 노린 다음 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었다.

주식에 있어서만큼은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소위 가치투자를 지향하였지만 부동산 시장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장의 비이성적인 열기를 바라보며 얼마 가지 못해 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숏포지션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는데 우선 어떠한 대상에 대해 반대로 돈을 걸어야 할지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무리한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을 공매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장기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투자은행을 수소문하여 당시만 해도 극히 드물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CDS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와 첫 거래를 튼 곳은 도이치뱅크였다. 이 거대 투자은행은 당시만 해도 마이크 버리라는 멍청이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AAA등급이 매겨진 안전한 채권에 반대편으로 돈을 걸겠다는 것에, 그리고 그럼으로써 공돈이 들어오는 것에 신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거래자 골드만삭스도 역시 상황을 몹시 즐겼다.

그들은 같은 등급이 매겨진 채권이라도 가장 악성 채권을 찾아내려는 마이크 버리에게 온갖 쓰레기 같은 채권들의 리스트를 이메일로 보내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손쉽게 가장 악성채권들을 골라내 그것들의 CDS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열심히 그는 다른 투자은행들과도 이런 계약을 체결하였고,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매우 흥미로운데 그것은 시장이 상승기로 돌아설 때에는 우리가 의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는 헤저(hedger)와 리스크부담자(risk taker)의 황금비율이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음악이 흐를 때에 모든 그 훌륭한 투자은행들은 리스크를 부담해가며 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헤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 마이크 버리도 엄밀히 말해서 헤저가 아니다. 그는 큰 흐름의 반대방향으로 돈을 건 리스크 부담자였다. 서로 반대편으로 돈을 건 리스크부담자들이었으므로 그들 간에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진정한 헤저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돈을 대주는 한편으로 마이크 버리가 개발한 CDS와 같은 상품으로 헤지를 해놓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무한대의 시장이라 여겨지던 주택시장의 바다에서 모두가 함께 리스크 부담자가 되었고 그것에 대한 반대의 경우는 마이크 버리와 같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민하거나 또는 돈벌이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만약 마이크 버리의 예상이 빗나가 주택시장이 몇 년 더 호황기였다면 역시 한쪽으로만 돈을 건 그도 무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시장의 변동성에 대해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시장은 자연스레 자정작용을 한다는 대전제는 마치 교과서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이런 상황이다. 시장은 대개 이성적이다가 때로 비이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조차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되는가?

라이어스포커(Liar’s Poker)

먼저 퀴즈 하나

모기지 채권의 증권화를 이루어낸 주범은?
1) 자본주의 2) 월스트리트 3) 살로먼 브라더스 4) 루이스 라니에리

답은 모두 맞다. ‘모기지 채권의 증권화’는 1980년대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도 금융시장이 가장 발달한 월스트리트에서도 모기지 채권의 가능성을 간파한 살로먼 브라더스의 출중한 지략가 루이스 라니에리에 의해 주도되었다. 일종의 시장선도적 리더가 된 라니에리는 그 후 살로먼 브라더스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준 동시에, 모기지 채권 시장이 채권 시장의 주변부에서 핵심을 차지하게 만드는 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시스템 등 경제체제의 움직임을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큰 틀에서의 자본주의, 나아가 경제체제의 역사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자본주의 내의 개별인자에 – 예를 들면 부동산, 증권 등 – 대한 특성이나 기술적 분석 등을 공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어느 특정 사건의 정황을 공부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두 가지 방법은 뼈대를 다듬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마지막 방법은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될 것이다.

다시 퀴즈로 돌아가서 모기지 채권의 증권화에 대한 상세한 에피소드는 바로 마이클 루이스의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제는 ‘증권화’라는 말이 일상화되었지만 극소수만이 그 단어를 공유하던 1980년대 중반 – 개인적으로는 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시장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이 단어를 2000년대 초반에 처음 접했다 –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던 마이클 루이스의 내부고발(?)(주1) 성격의 논픽션이다. 자본주의 뼈대에 살을 붙여주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한 현장을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 책은 저 에피소드 이외에도 투자은행의 암투, 정크본드(주2) 시장과 적대적 M&A의 플레이어들, 관료주의화의 해악, 투자은행업의 한계, 심지어는 인간성의 본연에 대한 편린 등 돈과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고 있다. 분명 내부고발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주변인들에게는 자못 흥미로운 내용인지라 – 무엇보다 돈이 흘러 넘치는 곳의 이야기인지라 – 실제로 독자들이 작가에게 묻는 주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투자은행에 입사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오늘 환율이 달러 당 1600원 선을 돌파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경제불안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가 – 특히 사회의 주류들은 – 경제에 관한 역사적 경험 중에 우리가 필요한 부분만을 취해왔었고, 그에 따라 성공의 현란한 불빛에 가린 그늘을 도외시하여, 맹목적으로 그들을 답습하여 왔던 관성도 한몫하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금융의 세계화’일 것이다. 1980년대에 쓰인 책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경험담이 될 틈이 없는 이유다.

(주1) 그럼에도 이 책이 “최고의 금융경영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팔리는 사실도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랄 수 있다

(주2)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코미디 ‘웨딩싱어’에서 여주인공 드류 배리모어의 약혼자는 정크본드 트레이더로 부를 쌓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드류 배리모어가 약혼자를 소개하며 정크본드 트레이더라고 하자 그는 재빨리 정크본드가 아니라 하이일드(High Yield) 본드라고 정정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80년대 美모기지 채권시장 확산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파생상품의 융성의 계기 이외에 또 하나의 계기가 있는데 무엇보다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의 축적 양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닉슨이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 지배를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오히려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이윤은 축소되고 주식시장은 침체에 빠졌고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자 고금리 프로그램을 내놓는다.[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4-1>]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올리면서 S&L은 ‘돈’맥경화에 걸렸고, 주택대출시장은 붕괴할 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S&L은 모조리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81년 9월 30일 의회는 아끼는 S&L업계를 위해 재치 있는 세금유예 법안을 통화시켰다.(S&L이 자신의 주택대출을 팔아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S&L의 값싼 대출을 매수하면 세금을 유예시켜 주는 것이다. S&L들은 서로의 대출을 교환하는 셈이다. 이런 매매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손실은 교묘하게 숨겨졌다. 즉, S&L은 1달러 당 100센트인 대출 채권을 1달러 당 65센트라는 헐값에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회계 규정은 S&L이 매매손실을 그 대출회수 기간만큼 순차적으로 상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만약 대출 채권의 만기가 35년이라면 1달러 당 35센트의 손실은 매년 1센트씩 손실이 난 것으로 회계 처리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손실도 과거 10년간 S&L이 낸 세금과 상계 처리할 수 있었다. 즉, 손실이 났다는 사실을 신고하면 국세청(IRS)은 과거에 낸 세금을 되돌려주었던 것이다. S&L은 가능하면 많은 손실을 내서 국세청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이건 아주 쉽다. 대출 채권을 헐값에 팔아버리면 된다. S&L이 대출 채권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L은 즉시 대출 채권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수천억 달러의 거래가 일어났다. 이런 조치가 취해졌을 때, 라니에리의 트레이더들은 세금유예 조치 자체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로먼의 모기지 부서는 시장을 독점했다. 이는 의회가 월가에 엄청난 보조금을 준 셈이고 그것이 라니에리 주식회사를 살려낸 것이다.[라이어스 포커(원제:Liar’s Poker), 마이클 루이스 지음, 정명수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6년, pp183~184]

새로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이 된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위기에 빠진 S&L(저축대부조합)의 모기지 대출채권이 월가로 넘어간 속사정에 관한 묘사다. “S&L 위기와 Opportunity Fund의 등장”과 비교하여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