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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를 보면서 들었던 잡념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를 봤다. 선동렬이라는 실존인물의 스카우트 일화를 다룬 코미디물일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전혀 – 전혀? 거의 –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처럼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이 뒤섞여 광주라는 시대와 장소가 가지는 맥락에서 선동렬이라는 인물과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이 기묘하게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애초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영화를 봤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의 내가 불성실하거나 기획사의 마케팅이 잘못 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어쨌든 그렇다고 많이 당혹스럽지는 않았고 그런 대로 재밌게 본 편이다. 그런데 하여튼 80년 광주에 임창정이 우연치 않게 찾아가게 된 계기를 선동렬이 마련해 준 것까지는 이해가 갔으나 그 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린 옛 애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어쨌거나 앞에 말했던 것처럼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임창정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며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는 제법 감동도 먹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일섭을 보면서 나머지는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백일섭은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가? 이덕화와 함께 연예계에서 알려진 이명박 빠이면서 얼마 전에 이회창에 대한 위협적 언사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인데 과연 그는 이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알고 있었을까?

백일섭이 정치적 의도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선동렬의 아버지로 분한 그가 등장하는 부분은 정치와 관련 없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 이런 의문은 영화의 정치적 의도와 배우의 정치적 입장은 꼭 일치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결국 그 의문은 팀 로빈스나 워렌 비티(주1)처럼 정치적 소신이 제법 뚜렷한 이들은 직접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꼭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그것에 매치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론 맺었다. 어차피 배우는 껍데기다. 위장이다. 살인자로 출연하는 배우가 살인자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주1) 워렌 비티는 의 엑스트라들에게 자본주의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존 리드의 이론을 강의했다. 그들은 강의를 들은 후에 파업에 들어갔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