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베이징

[뒷북]베이징 올림픽 단상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스포츠만큼 인종, 정치적 이념, 문화적 가치가 다른 이들을 한데 뭉칠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한편으로 세련되어 보이고, 무사 공평하게 보이는 와중에 드라마까지 연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현대 인민의 세 가지 놀 거리라 불리는 3S, 즉 Sports, Sex, Screen 중에서도 스포츠는 가장 탈이념 적이면서도 도덕적 거부감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놀 거리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사실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티베트 지역에서의 저항으로 일부 국가들의 – 허울 좋은 – 보이콧 움직임 등이 있었고, 개막식이랄지 행사 진행 와중에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인한 잡음이 있긴 했지만 베이징 올림픽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러진 올림픽으로 평가 내려졌다. 우리나라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메달수확을 통해 국내 정치위기가 해소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순간적인 마취제 역할은 해주었다. 펠프스, 우사인 볼트 등의 스포츠 영웅은 평범한 인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을 맛보기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그 행사의 최대의 수혜자는 중국정부일 것이다. 등소평 시대에 이르러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기 시작하여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을 자처한 이후 WTO에 가입하여 자유무역의 일원이 되었고, 마침내 올림픽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전 세계에 자국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는 순간 그들의 감정은 한껏 복받쳐 올랐을 것이다. 중국인민들 역시 신세기 들어 더욱 고양된 민족주의적 자긍심으로 이 올림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빛이 찬란하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법. 이번 올림픽 전의 일련의 사태와 잡음, 진행과정에서의 미숙함, 그리고 그 뒷이야기들은 올림픽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방송진행자들이 올림픽을 아무리 ‘지구촌이 하나 되는 자리’라고 칭송을 하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존재하였다. 바로 가장 먼저 초대받아야 할 이들인 티베트 독립 세력이나 기타 반정부 세력, 그리고 베이징에 살던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아래 인용한 글은 이번 올림픽의 준비를 위해 중국 노동자의 노동권이 얼마나 쉽게 침해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베이징은 공항은 놀랍게도 4년도 안되어 완공되었다. 주계약자 중 하나인 지멘스의 프로젝트매니저 차석인 제프 마틴은 이 신속한 완공의 원인이 매우 단순하다고 말하고 있다. “가용 노동력이 많았어요. 만약 우리가 내일 5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들을 쓸 수 있습니다. 미국이라면 노조를 거쳐야 하고 훨씬 오래 걸리겠죠.”
Beijing airport was completed, amazingly, in less than four years. Jeff Martin, deputy project manager for Siemens, one of the main contractors, said the reason for the prompt completion was simple: “There is so much available labour. If I say we need 500 extra workers tomorrow, then I will get them. In the US, you would have to go through unions and it would take much, much longer.”[Winners And Losers At the Beijing Olympics]

주민들 역시 마음놓고 올림픽을 즐길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주민들에 대한 강제적인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매니저들은 이 빌딩 하나만을 위해 1만명의 주민들이 “재정착”되었다고 말했다. 제네바에 위치한 ‘주거권과 퇴거에 관한 센터’는 베이징에서 1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올림픽의 건축계획 때문에 퇴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그들의 의지에 반해 퇴거되었다.
Forced relocation of residents also contributed. Managers say 10,000 people have been “resettled” for this building alone. The Geneva-based Centre on Housing Rights and Evictions claims that up to one million residents of Beijing have been displaced by the Olympic building programmes, many of them evicted against their will.[같은 글]

마치 우리의 1988년 올림픽을 위한 가혹하고도 부당한 도시빈민 퇴출조치와 노점상 단속 등의 재판을 보는 듯 하다.

정치적 저항에 대한 가혹한 탄압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올림픽 기간 중 당국이 시위를 허용하였다는 공원에서는 단 한건의 시위도 없었다. 그만큼 중국인민이 일치단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까? 중국당국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올림픽 기간 중 실종된 반정부 운동가들이 꽤 된다고 한다.

올림픽은 분명히 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을 재고하는데 하나의 변곡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그 의도와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못 사는 변방의 아시아 국가라는 이미지가 올림픽을 계기로 매우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베이징 올림픽도 분명히 베이징과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국의 소외계층을 한층 소외시키고 인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특히 그 영롱한 색채에 반한 나머지 위정자들이 이제는 흥청거리고 살아도 되겠다는 그릇된 길로 접어든다면, 올림픽은 선진국으로서의 자축행사가 아닌 멸하는 순간 가장 빛을 발하는 신기루 일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한다. 꼭 올림픽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후 섣부른 각종 자유화 조치와 개방조치로 인해 외환위기라는 큰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쉽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향후에라도 올림픽은 주최국의 소외계층이 더욱 조명을 받는 그런 행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