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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논 값이 5만 원이었는데 25만 원이 됐어.”

“우리 논 값이 5만 원이었는데 25만 원이 됐어. 나 이제껏 그렇게 농사지어도 이번만한 돈, 못 벌어 봤어. 나 환경이니 동네 피해니 그딴 거는 모르고 일단 내 땅값이 오르니까 찬성이여 찬성!” 이포보를 찾아오신 한 주민의 이야기다. 이분께 멸종위기종의 문제를 얘기하며 4대강사업을 하지 말자 할 수는 없다. 그동안 애써 지켜온 농민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농민들이 개발붐을 타고 땅값이 오르는 것을 보며 4대강사업을 찬성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탓이기도 하다.[여주 사람들은 4대강사업에 왜 찬성하나요?, 정나래 환경운동연합 전국사무처 간사, 함께 사는 길 2010.9]

예전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지키려는 서구의 과학자들이 겪는 고초에 관한 에피소드를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코끼리가 자못 거칠어서 농부들의 밭을 망치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는 당연히 없애야할 동물이다. 하지만 과학자는 종의 보호를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된다고 강변한다. 이 다큐에서 대립구도는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서구 과학자와 이기적 사고를 하는 마을주민으로 형성된다.

내 땅의 가격이 올랐으니 4대강 찬성이라는 저 분의 에피소드도 얼핏 그런 구도로 형성될 소지가 있다. 글쓴이가 재빨리 이 구도를 희석시키며 “우리 모두의 탓”으로 돌리셨기에 4대강을 찬성하는 농민이 코끼리를 싫어하는 농민 신세가 되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쓴이가 저 증언을 끄집어낸 것은 결국 공동체의 보호가 개별인자의 이기심 때문에 균열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4대강 뿐만 아니라 허다한 개발 사업에서 공동체의 목표와 개인적 이해 간의 괴리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것 때문에 중앙과 지방, 현지인과 외부인, 그리고 현지인들끼리도 의견이 갈리고 반목한다. 대부분은 힘센 자의 논리에 따르게 된다. 힘없는 자들은 대개 그 사업의 지분이 작게 파편화되어 있어 합의가 쉽지 않다. 또한 그들의 가치는 역시 파편화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합의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있다.

힘센 자는 자신의 논리에 수긍하는 자들에게 반대급부를 안겨준다. 지금 세상은 땅이라는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화폐라는 대응물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그 많고 적음이 기준이지 그 방식에 대해선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이른바 지배 이데올로기다. 저항하는 자가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반대급부를 찾아줘야 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가치이기에 설득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저항하는 자는 박노자 씨의 주장처럼 “자본주의는 동시에 피착취자 들의 순치과정이기도 하는 것”이기에 피착취자 역시 착취자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있다는 – 또는 적극적으로 옹호 – 사실을 유념하여야 한다. 아니 자본주의를 넘어서 아직 전(前)자본주의 형태일 아프리카의 농민에서 보듯이 여태 세상은 늘 그래왔으니 그걸 뛰어넘을 기획을 선보여야 한다. 서구 과학자처럼 오만한 도덕주의자로 비쳐지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