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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과 철도

39년 동안 선임 파트너로 회사를 운영한 시드니 와인버그는 헨리 골드만이 골드만 삭스의 사업을 혁신시킨 창의적인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바로 이 골드만이 새로운 사업 형태, 즉 간사(underwriting)업무에 뛰어들어서 회사를 투자은행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 그러니까 1890년대부터 1차대전 때까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투자 은행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당시 미국은 자본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종류의 투자 은행가들이 그것을 돕기 위해 나타났다. 미국 금융 기관들의 자산은 1900년과 1910년 사이에 90억 불에서 210억 불로 배 이상 늘었다. (중략) 그리고 이들은 가정용품과 철도 산업의 엄청난 사업 확장에 돈을 댔었다. 거의 12억 불에 달하는 새로운 철도 증권들이 1900년과 1902년 사이에 발행되었다. 그러자 헨리 골드만은 철도 주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도 회사들의 눈에 띄어 당시 가장 유망했던 간사 업무에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세계를 움직이는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 리사 엔들리크 지음, 형선호 옮김, 세종서적, 1999년, pp65~66]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국가가 나서서 대규모의 자원동원을 하지 않았던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 – 국가가 실질적인 대규모 자원동원에 나선 것은 대공황 시절 –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국가가 공급하여야 한다고 알고 있는 ‘공공재’의 상당부분을 민간이 공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 이상의 자금조달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던 – 아직은 런던 다음이지만 –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민간에 의한 철도공급이 두드러졌는데 철도가 사회간접자본이자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공공재라기보다는 경제재, 즉 상품성이 있는 아이템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공공재는 사실 그것의 공익성에 의해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그 이용을 배제할 수 없고 같이 이용한다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 공공재로 간주되는 것이다.(주1) 이 기준으로 보면 철도는 경제재에 가깝다. 즉 수지타산 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기업들이 오로지 운영수입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들은 철도주식의 상장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단기차익을 노릴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골드만 삭스는 위에서 보듯이 그러한 주식상장 등을 돕는, 오늘날로 치면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같은 업무를 시작하면서 투자 은행으로서의 기틀을 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읽기에는 이치에 맞는 모습이지만 그 속은 엄청난 야합과 투기가 판을 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니엘 드루, 제이 굴드, 코넬리우스 반더빌트 등 당대의 철도거물 들이 이리 철도회사를 둘러싸고 벌인 주식전쟁은 거의 국가변란 수준의 개싸움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통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세계 최고수준의 자본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치 삼성의 이재용 때문에 한국의 상속법 제도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주1)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 소프트웨어나 mp3는 가장 완벽한 공공재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의 복사를 배제하기 어렵고 그것을 복사해서 쓴다고 소프트웨어가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잘 알다시피 그러한 재화를 경제재로 만들기 위해 기업은 무수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