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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유예 단상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이런 사태에 대비해 문서수발 등 단순업무는 별도 회사를 세워 분사했다”며 “주로 비서직을 파견사원이 맡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2년마다 새 직원을 파견받는 것이 완전히 정착됐다”고 말했다. [중략] 철강업체 D사 사장은 “우리 같은 영세 업체는 인건비가 10%만 올라도 살아남기 힘들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면 학자금 지원 등 복리후생비 부담이 늘어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직원수 300인 이하의 중소기업에 몰려 있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대량 해고가 현실로 닥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중략]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대기업의 정규직 ‘귀족노동자’가 주력인 노동계에 휘둘려 힘없고 약한 중소기업, 비정규직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강자에겐 ‘미풍’, 약자에겐 ‘태풍’, 조선일보, 2009.07.01]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둘러싼 논란의 많은 부분을 읽을 수 있는 기사다.

첫째, 삼성과 같은 기업이 비정규직 대란에 무사할 수 있는 묘책은 그들이 실질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파견형식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법은 현대자동차 공장 등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사는 마치 그러한 시도가 굉장한 노하우인양 전하고 있다.

둘째, 중소기업들은 한계상황에 몰린 경영환경을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통한 인건비 절감으로 헤쳐나아가고 있다. 이는 주되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청계열화에 있어서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연쇄작용일 개연성이 크다. 즉,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가로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고 이는 다시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이러한 산업구조에 메스를 대지 않는다.

셋째, 오히려 그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략한다. 물론 그들은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특혜”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 특혜라는 것은 사실 이 사회의 평균적인 노동자가 공통적으로 누려야 할 특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 삶의 질을 떨어뜨린 후 기존 노동조건의 노동자들에게 ‘귀족’이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넷째, 위 기사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언론이 마찬가지인데 법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여야 하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이 한계상황에 내몰린 영세기업의 예를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선량한 기업주의 처지만을 전파할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그러한지는 좀더 알아볼 일이다.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유예시도는 입법주체인 그들 스스로의 지난 행동에 대한 조금의 반성도 없이 법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한마디로 ‘법치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흔드는 미친 짓이다. 이에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은 진보세력과 노동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과거 비정규직법의 개악을 주도했던 이들이다. 오늘의 결과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다. 그 당시 그 행정부의 수반은 ‘노동귀족’이란 표현으로 노동계를 조롱했다. 이제라도 석고대죄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그 알량한 법이라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