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사법

제헌절이 더 이상 휴일이 아닌 이유

오랜만에 한미FTA에 대해 글을 올리니 손이 근질근질하여 몇 자 더 적어야겠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한미FTA는 FTA 초유의 발명품 ‘투자자의 정부제소권’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자신의 투자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받았다고 여겨지는 투자자는 정부를 제소하여 제3국에서 중재에 참가하게끔 강제할 수 있다. 이는 위헌의 소지가 많은 조항임은 이미 설명하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이때 중재부는 어떠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그 건을 판정하는가이다.

“중재부는 이 협정과 적용가능한 국제법에 따라 분쟁을 판정한다.”[한미FTA 11.22조 1항]

언뜻 보면 별 문제없는 조항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조항은 그 판정기준에 국내법이 배제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국제중재 판정에서 피소된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국제조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은 공공의 복리를 위해 사유재산권에 일정정도 제한을 가하는 취지의 내용이 꽤 있다. 이러한 법취지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의 행정권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얼마 전 뉴라이트 이하 보수주의자들이 삭제하자고 주장한 헌법 제119조 2항이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행정행위가 남용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미명 하에 행정권이 봉쇄당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뉴라이트 주장은 꼴통들의 주장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한미FTA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비준 발효되는 순간 위와 같은 판단근거에 의해 이루어진 행정행위가 정체불명의 ‘국제법’에 의해 투자이익침해행위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의를 진행하다보면 혹자는 한미FTA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똑같이 적용되는 자유무역협정이므로 미국에게도 우리가 그렇게 하여 이득을 취하면 될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한미FTA는 어찌 보면 미국식의 재산권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가치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는 것이고, 둘째, 결국 이득을 얻는 것은 해당 조항을 유용할 수 있는 양 국의 거대자본인데 이들의 이윤동기 아래 양쪽의 국가, 나아가 그 국가의 보호 하에 있는 국민들의 공익향유권은 침해당해도 상관없다는 신자유주의 논리라는 점이 문제다.

둘째 이의제기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것이 없을 것 같고, 첫째 이의제기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겠다.

“정당한 보상 없이, 사유재산을 공용으로 취득당하지 아니한다.”[미국 헌법 수정 5조]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헌법에서 재산권 조항은 오로지 한 조항뿐이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재판정은 이 조항을 근거로 재산권에 있어서만큼은 공익의 침해 여부와 상관없이 그 권리를 절대적으로 – 적어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비율로 – 인정해주곤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미FTA는 미국의 법취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주1)

자 이제 여러분은 왜 제헌절이 휴일에서 제외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물론 농담이다. 과연 농담인가?) 그 이유는 한미FTA가 비준 발효되면 그간 우리나라 사법권과 헌법은 별로 효용성 없는 기관과 문서조각으로 전락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법기관이나 헌법은 가끔 ‘아주 순수하게’ 해외법인이나 외국인이 전혀 섞이지 않은 상투 튼 사람들끼리의 송사에나 관여할 것이다. 이명박이 달리 영어 몰입교육을 하자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어떠한 이유를 떠나서라도 이러한 개떡같은 FTA를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누무현을 꼴통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는 그것을 통해 물건을 더 파는 것보다는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주2) 각 분야의 세계의 제도와 뒤섞이지 않으면 수준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노무현 前대통령, 2007년 5월14일, 두바이 동포간담회)

“다음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안할 것 같았는데,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손해 가는 일을 하는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특단의 의지로 결정했다”(노무현 前대통령, 2007년 3월20일 농어업분야 업무보고)

(주1) 보다 복잡한 방식에 따라 한미FTA가 국내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국내 헌법상의 조항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고, 미국의 경우 한미FTA는 별도의 이행법으로 처리되어 여타 법이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이 글에서 전반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의 ‘한미FTA 핸드북’(녹색평론사)을 참고하기 바란다.

(주2) 수준을 끌어올린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앞에 간단히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