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선분양

선분양과 전세

사실 우리나라는 그 경제발전 정도에 비해 부동산 금융이 상응하여 발전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왔던 모기지 제도도 뒤늦게 들어온 편이다. 그리고 건설업체들이 건설업을 영위하는데 있어 대규모 금융을 일으키는 관행도 비교적 늦은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금융조달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파트 선분양과 전세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선분양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조달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아니 오히려 금융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통상의 금융조달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선분양이 가능했던 것은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아파트라는 주택상품의 대표적인 특징인 ‘표준화’와 ‘동질화’가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선분양은 주택수요시장을 무시한 무리한 주택공급을 부추기고 업체부도시의 소비자의 피해가 크다는 등의 인식 하에 노무현 정부에서 후분양을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묘하게 그 시기가 부동산 시장 하락기와 맞물려 그 이전에 밀어내기로 공급된 많은 아파트들이 이제는 ‘미분양 사태’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전세 역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독특한 임대방식이다. 이 제도를 금융조달로 보는 데에는 바로 수요자의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즉 잘 알고 있다시피 이제 막 집을 구해야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전세를 이용하여 자기 돈을 절약해가며 집을 살 수 있다. 아파트 값이 2억 원이고 전세 시세가 1억5천만 원이라면 은행에서 5천만 원만 빌려서 집을 사고 전세를 놓으면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가는 멋진 구조가 나오는 것이다. DTI/LTV니 equity loan 이니 하는 표현들이 무색해진다. 많은 이들이 사실 이렇게 해서 투기를 하고 있다.

이제 이 독특한 제도가 우리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분양이 된 아파트들도 상투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입주예정자들이 중도금 지불을 거부하고 있고, 전세를 놓아 자기 돈을 아껴보려 했던 이들이 분양받은 아파트는 전세가 들어오지 않아 빈 집으로 버려져 있다. 부동산PF나 은행의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이 위험수준이라지만 사실 이는 알려진 리스크이기에 오히려 관리가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선분양과 전세로 손쉽게 돈을 벌어보려 했던 건설업체와 투기세력들이 지어놓고 분양받은 집들에서 밤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