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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때문에 “패닉”상태라는 동네 이야기

“목동 사는 이유가 학군 하나 때문인데, 이제 집값 떨어질 일만 남았죠.”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목동 유수지(홍수량의 일부를 저수하는 곳)가 정해지면서 목동주민들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목동지구가 다른 지역보다 행복주택에 대한 반발이 심한 이유는 학군 때문이다. 행복주택이 목동에 들어설 경우 이들 원주민과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행복주택 입주민들의 자녀가 함께 학교에 배치돼 학군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결국 학군 때문에 목동을 선택하려는 수요자들이 줄어들어 목동 특유의 학군 프리미엄도 그만큼 희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행복주택 이웃될 13억원 하이페리온 주민들 패닉]

“행복주택”은 박근혜 정부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새로이 시작하는 임대주택 사업이다. 정부의 목표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철도부지와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해 5년간 총 20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으로, 이번에 인용한 기사의 사업부지를 비롯하여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7곳 선정하였다. 목동 유수지는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목표에 잘 부합하는 사업부지로 여겨진다.

문제는 해당 입지가 자연스럽게도 기사의 인터뷰 내용처럼 기존 주거지역과의 소위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입지라는 점이다. 기사제목의 천박함은 별도로 하더라도 저 정도의 정서가 기존 주민들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는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부터 임대주택의 “소셜믹스”가 의무화된 단지도 아니고 나름 고급 아파트의 거주민으로서 기득권이 있다고 여겨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셜믹스 단지에서 임대주택 거주민을 격리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개탄한 바 있고 이 기사를 트윗하면서도 좀 거칠게 비난했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좀 더 냉정히 들여다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목동은 기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집값에 “학군 프리미엄”이 상당한 동네다. 소셜믹스 단지처럼 임대주택의 입지가 애초에 주어진 조건도 아니었다. 이 둘이 결합하면 원주민으로서는 억울하기도 할 노릇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임대주택이 들어서면서 일종의 “부(負)의 외부효과”가 예상되는 상황인 것이다. “하이페리온의 경우 전용면적 158㎡의 시세는 13억원 수준”인 고급 아파트 지역에 저렴한 임대주택이 들어서고 이들 거주민의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면 “귀족 학군”의 이미지가 흐려져 집값의 하락이 예상되고, 교통상황도 악화되는 등 외부불경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유의 외부불경제가 집값에 악영향을 끼친 것에 대해 손해배상의 정당성을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가 조망권 침해 사례일 것이다. 일조권 등 정서상 기본적인 권리라 여겨지는 권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조망권이라는 약간은 “여유로운 소리”로 여겨질 수도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은 셈인데, 그런 판결이 나온 것은 법원이 조망권 덕분에 소송인들의 집값에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세워진 아파트 때문에 한강이 바라보이는 조망권이 침해됐다면 아파트 건설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중략] 재판부는 한강 주변 아파트의 경우 조망이 가능한지 여부나 정도에 따라 수억원까지 프리미엄이 붙는 등 조망권이 아파트의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크게 좌우한다고 봤습니다. [중략] 이번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조망의 이익은 항상 법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강처럼 특정한 장소가 조망에 있어 특별한 가치를 갖고, 사회관념상 독자적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법적으로도 보호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한강 조망권 침해 첫 배상판결]

그렇다면 “조망권 프리미엄”처럼 “학군 프리미엄”도 법원에서 유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정서적 이유와 실용적 이유에서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학군 피해자는 조망권 피해자와 달리 저소득층과 섞이기 싫다는 이기주의자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 정서적 이유다. 학군 프리미엄의 경제적 영향은 조망권 프리미엄에 비해 원인결과가 모호하고 장기적이어서 가치의 측정이 어렵다는 점이 실용적 이유다.

아파트란 주거양식이 한국에 뿌리내린 이래 비슷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이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사회계층 분리효과는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바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집의 경제적 가치를 더 높였다는 주장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한 정(正)의 외부효과를 조망권처럼 “특정한 장소의 특별한 가치”로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정말 행복주택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입을 것이라 여겨진다면 장기전세주택을 주민반대로 좌절시킨 양재동 주민들처럼 반대운동에 나서든지, 국토부로부터 반대급부를 받든지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안일지라도 “그들”과 섞이기 싫다는 정서를 무마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파트란 주거형태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무려 “13억 원짜리 하이페리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