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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도시

필자가 지난번에 “경제위기가 도시의 모습을 바꿀 것인가?”라는 글에서 고유가가 공공의 도시계획이나 민간의 도시개발에 영향을 미쳐 도시경관이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내비친 바 있다. 실제로 도시발전의 역사는 그 당시의 기술발전이나 자원가격에 의해 영향 받은 바 크다. 철도 등 대중교통망, 엘리베이터와 같은 발명품,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석유문명과 발전시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광역권 도시나 도심의 마천루 등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하튼 그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예언컨대 광범위한 대중교통 시설의 정비와 직주근접(職住近接)식 도시계획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것 같다.”

솔직히 이 말은 예언도 아니고 당연한 소리다.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이 일정수준까지 올라가서 변곡점을 넘어버리면 당연히 물적(物的)계획은 그에 상응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각설하고 내가 저 말을 쓸 때에 염두에 둔 도시계획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아래 그림이다.


Nikolai Miliutin 이라는 과거 소비에트 도시계획가가 주창한 ‘선형도시(linear city)’(주1)형의 스탈린그라드 계획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도시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도심을 중심으로 한 원형이 아니라 철도, 공업지구, 녹지대, 주거지구 등이 샌드위치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형태다. 그리고 도시는 이렇게 좌우로 계속 같은 패턴으로 뻗어가면서 커간다. Miliutin은 이러한 도시건설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의 경제격차와 계층간 경제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쨌든 애초 이 도시계획안이 떠올랐던 이유로 돌아가 보자. 자 이보다 더 환상적인 직주근접이 있을 수 있을까? 녹지대만 지나면 바로 내가 근무하는 공장이다. 살벌한 고층 아파트밖에 안 보이는 베드타운에서 막히는 도로에서 매연 마셔가며 도심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현대의 도시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실제로도 아직도 이러한 선형도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름 근사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무릇 모든 것이 그렇지만 이 도시는 하나의 약점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은 직장이나 주거 중 어느 하나의 자유를 포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도시의 오른 쪽 끝의 직장과, 또 그곳에 인접한 주거지에서 살고 있었는데 도시 왼쪽 끝의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의 편리함에 비할 바 없이 불편한 직주분리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도시는 어쩌면 사회주의 조국이 직장과 주거를 정해주고 일정정도 제약을 가했던 소비에트에서나 제대로 구현되었을 법한 도시다.

만약 새로운 선형도시를 계획하고 입안할 요량이라면 주거와 직장선택의 자유라는, 현대인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천부인권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주2)

(주1) 선형도시의 첫 주창자는 19세기 스페인의 Arturo Soria Y Mata라는 도시계획가다.

(주2) 사실 생각해보면 현대 자본주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라고 뭐 주거와 직장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시장과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억압이 존재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