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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k

어제 아내와 영화 ‘밀크’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보고 왔다. 한 낙농업자의 진정한 우유를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룬… 그런 영화는 아니고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동성애 인권운동을 펼쳤던, 그리고 스스로 게이였던 ‘하비 밀크(Harvey Bernard Milk)’의 삶을 다룬 – 역시 게이인 –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8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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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 Penn Cannes” by Georges Biard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밀크 역을 연기한 션펜. 아카데미 주연상 득템.

밀크는 동성애자였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40년을 살아온다. 애인과 함께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로 삶의 거처를 옮긴 밀크는 자연스레 같은 동성애자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핍박받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정치대변인으로 나설 것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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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ey Milk in 1978 at Mayor Moscone’s Desk crop” by Harvey Milk in 1978 at Mayor Moscone’s Desk.jpg: Daniel Nicoletta
derivative work: Hekerui (talk) – Harvey Milk in 1978 at Mayor Moscone’s Desk.jpg. Licensed under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하비 밀크의 실제 모습

몇 번의 도전 끝에 시의원을 진출하는데 성공한 밀크의 적은 이 사회의 거대한 편견. 마침 전국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차별을 당연시하는 보수적 기류가 일어나면서 밀크는 존 브릭스, 아니타 브라이언트 등 극우적인 의원이 추진한 법안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법안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지만 엉뚱한 이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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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 Bryant Billboard 1971” by Word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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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text : Billboard Magazine, January 16, 1971 p. 2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가수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니타 브라이언트. 하비 밀크의 정적.

실제 인물의 8년 동안의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다룬지라 어쩔 수 없이 편년체의 평면적인 서술을 깔고 갈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에도 영화는 지루하다거나 서두른다거나 하는 느낌이 적다. 공인(公人)으로서의 삶과 사인(私人)으로서의 삶에 대한 묘사가 적절히 안배되어 있고 다큐멘터리적 편집을 통해 현장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결국 밀크가 깨부수려했던 것은 자기와 다르다는 사실을 차별의 빌미로 삼는 이기주의였다. 과거 모든 역사에서 권력자들이 그러했고 아직까지 그러한 차별은 공공연히, 또는 은밀히 자행되고 있는 그런 이기주의 말이다. ‘동성애자’란 타이틀을 유지하여도, 그 자리에 다른 단어를 집어넣어도 차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철거민’, ‘장애인’, ‘이슬람’, ‘좌익’

사실 그 중에서도 우리사회에서 아직까지 가장 금기시되는 천민은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동성애자’다. 홍석천, 하리수 등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들이 살아남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밀크와 같은 시도를 한다면 과연 이 사회가 두 눈 뜨고 그것을 빤히 보고만 있을까? 아마 전국의 유림들이 난리를 피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눈에 보이는 권력보다 무서운 것은 – 역시 게이였던 – 미쉘 푸코가 묘사한 ‘미시적 권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푸코가 정확히 그러한 의미로 묘사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는바 미시적 권력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바뀌지 않는 이 사회의 편견과 이기주의와 물적 욕망의 그물망이다. 실질적으로 그것이 사회를 통제한다.

때로 개혁적인 지도자가 나서서 이 사회를 정화하려 시도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럴 때 그 미시적 권력은 격렬히 저항하거나 힘이 약할 때면 낮게 숨죽이며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대표자가 지도자로 나서는 순간 봇물처럼 사회 곳곳을 다시 그들의 입맛대로 재편한다.

미시적 권력이란 괴물은 우리 스스로 편견에 빠지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계속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