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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금융위기와 왕자의 도발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인구 3만5천의 초미니 입헌공국이다. 면적이 서울의 약 4분의 1 정도 된다니 조금이라도 과속을 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버릴지도 모를 그런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아담하고 조용한 나라다. 그런데 최근 이 나라가 유럽에서 벌어진 한 스캔들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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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Liechtenstein
http://pro.gjue.ac.kr/~kang/nation/liech/liechten.htm

최근 독일정부는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이 나라의 주요은행에 대해 자국 부유층들의 조세포탈 방조혐의 수사에 착수하였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외교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되게 된 것이다. 특히 독일 연방정보국이 지난 2006년 리히텐슈타인의 최대은행인 LGT Bank의 전직 직원에게 420만 유로를 제공하고 은행고객 자료를 입수하면서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컨대 갈등의 근본원인은 독일의 이번 조치가 리히텐슈타인의 국내 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금융업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리히텐슈타인은 유럽 각국의 부호들의 자금을 예치하면서 고객정보 비밀유지를 철저히 보장해왔는데 이것이 한 밀고자의 배신행위(?!)로 신뢰에 금이 갔고 향후 자국 은행이 불가피하게 독일의 수사에 협조할 경우 리히텐슈타인 금융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다.

한편 이러한 양국 간의 갈등양상에서 흥미롭게도 최대의 수혜자는 리히텐슈타인의 왕자 알로이즈(Alois)라고 한다. 1968년 생으로 우리나이로 마흔 하나인 이 왕자는 그동안 좋게 말해서 온화한 품성이고 나쁘게 말해서 약해빠진 이미지로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는 왕자였다.

Hereditary Prince of Liechtenstein.jpg
Hereditary Prince of Liechtenstein” by Presse- und Informationsamt, Vaduz – http://www.llv.li/customthumbnail?imageId=134785&thumbnailWidth=480. Via Wikimedia Commons.

알로이즈 왕자 정보 보기
http://en.wikipedia.org/wiki/Prince_Alois_of_Liechtenstein

그랬던 그가 최근 독일이 밀고자에게 거액을 제공한 것은 실정법 위반이며 심지어는 주권침해행위라고까지 비난하면서 그럴 돈이 있으면 세금체계를 고치는 것이 낫겠다고 비꼬았다. 이에 국민들은 왕자의 화끈한 모습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비로소 왕자가 다혈질이어서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의 아버지 한스 아담(Hans Adam)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연전에 타블로이드 신문의 씹어대기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스위스 신문의 한 질문에 대해 ‘지루하게 살면 된다’라고 이야기했던 이 왕자는 이제 그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알로이즈 왕자의 도발은 도발이고 리히텐슈타인 정부의 입장은 보다 외교적으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호주 등 바다건너 국가도 독일과 같은 문제로 리히텐슈타인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히텐슈타인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인 압력 증대와 고립화 우려 때문에 자국은행들에 대한 관리 및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여하튼 이번 스캔들로 인해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의 은행들이 그동안 철칙처럼 지켜오던 고객정보에 대한 비밀유지 원칙과 이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이들이 그간 그러한 원칙을 미덕으로 알아왔으나 실은 각국의 부호들의 조세피난이라는 범죄의 공범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인식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알로이즈 왕자의 행동이 이 소국(小國)의 국민에게는 영웅적 행위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것은 사적자본의 이윤추구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 LGT bank 의 소유주는 바로 리히텐슈타인 왕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