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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뒤에 노동자 있어요

혁신은 상층부에서의 고숙련의 소수 일자리들이 상대적으로 저숙련인 일자리들을 감시하는 전통적인 노동의 피라미드 구조를 교체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이 바꾸는 것은 자동화를 통해 대부분의 반복적인 작업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보다 복잡한 작업을 계속하여 채워 넣음으로써 피라미드의 구성이다. [중략] 이러한 경향은 특별히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실존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구체적인 서비스를 팔기 위한 (양방향 시장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에서 명백하다. 우버의 차량호출과 배달 앱이 아무리 세련됐을지라도 이 회사는 차량 운전자와 배달 노동자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The Revenge of the Precariat]

어쨌든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말미암아 집밖에 섣불리 나가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이동의 제약을 우리는 배민과 같은 첨단 배달앱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편리해지고 있는 세계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편리성의 뒤편에는 바로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저숙련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곤 한다. 앱 이용 과정에서 그들을 마주치는 순간은 배달음식을 전해 받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 국한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라는 유명한 유머 게시물도 있었지만, 이 경우를 그 표현에 빗대어 보자면 “앱 뒤에 노동자 있어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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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FUKA from Yokohama, Japan – Cleaner [Suzhou Station / Suzhou], CC BY-SA 2.0, 링크

우버와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모델이 등장할 때만 해도 혁신이 노동의 피라미드 구성을 바꿀 것이라는 꽤 낭만적인 전망도 있었다. 노동과 자본을 공유하면서 세상은 좀 더 친환경적이 되고 계급의 피라미드 구성도 완화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예전에 JP모건 체이스가 분석한바 에어비앤비와 같은 자본 플랫폼의 참여자는 플랫폼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소득증가로 이어진 반면, 우버와 같은 노동 플랫폼의 참여자에게는 플랫폼 참여는 소득증가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대체소득의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즉, 노동 플랫폼에서 노동의 전통적인 피라미드 구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직노동이 비조직노동,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하는 상황만 초래했다.

긱이코노미의 비조직노동은 점차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며 지위를 개선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노동자는 전통적 노조나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화려한 조명을 받는 “혁신” 주도자들의 천문학적 부의 창출에 푼돈을 받아가며 기여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통적인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산업예비군들이 또 긱이코노미에 참여하게 되면 기존 노동자들의 지위는 더 열악해질지도 모른다.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배달 노동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냈는데, 실제로는 경쟁 증가로 인해 소득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노동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노동의 피라미드는 상층부에 세련된 소프트웨어, 하층부에 불안정 비조직노동이 자리잡는 형태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스탄불 紀行文 – 다시 이스탄불로!

2014년 12월 22일 다시 이스탄불로!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 그대로 괴레메에는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차피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 하더라도 타지 못한 열기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 “김수현” 투어가이드, “빨리빨리” 운전사, 리얼터키 직원 등등 – 도착 당일 열기구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들 모두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지만 그런 이들의 도움 없이 어떻게 멀리 동양에서 온 까막눈 부부가 열기구에 탈 수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에피소드였다.

설경이 펼쳐지는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마치고 – 식당에서 마주친 전날 도착한 중년 한국인 부부 중 미모의 부인은 무척 신이 나 있으셨으나 지상 투어나 가능할지 걱정이셨다고 – 급히 서둘러 공항까지 우리를 태워다 줄 셔틀에 올라탔다. 오히려 열기구 타기보다 위험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셔틀이 눈이 질척해진 경사로를 올라가려다 계속 미끄러졌던 것이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운전사의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고 한다.(헐) 결국 다른 길로 돌아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 실질적인 이스탄불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찾아간 이스탄불에서의 첫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였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기존에 원주민이 살던 집을 같이 공유한다는 개념의, 이른바 “공유경제” 주거와는 다소 다른 주인은 다른 곳에 기거하며 3층짜리 빌딩 전체를 하숙집 개념으로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집주인 울루타스는 친절하게 우리를 대했지만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친절함이었다. 이사탄불 시내의 소위 “구시가지”에 위치한 숙소의 주변은 다소 남루해보였다(나중에 보니 구시가지라서 아무래도 시가지가 낡았던 것이다).

짐을 풀고 현지 주재원으로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지인이 초대한 저녁식사를 위해 서둘러 시내로 향해야 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트램역까지 도보, 트램을 타고 종착역인 카바타쉬에서 하차, 거기서 버스를 타고 베벡에서 하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고 국내에 알려진 스타벅스에서 지인과 조우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레스토랑 맞은 편 바다에 하차,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도착…이라는 멀고 험한 여정을 통해 도착한 곳은 보스포러스해협2교1 아래의 라시버트 레스토랑이었다.

보트를 건너기 전에 보트 정거장을 찾지 못한 지인이 헤매는 동안 일행이 해변에 개와 함께 있던 어느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사실 그 노인은 홈리스였다. 술도 한잔 하셨는지 약간 불콰한 얼굴을 하고서는 우리를 이끌고 몸소 정거장을 찾아 알려주셨다. 낯선 동양인과의 어울림이 재밌으셨는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보트에 올라탈 때까지 우리를 지켜보셨다. 그 모습이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화려하고 세련된 터키 사람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던 것이 아직도 잔상에 남는다.

그렇게 숨가빴던 이스탄불에서의 첫날은 막을 내렸다.

공유경제 단상

요즘 “공유경제”라는 조금은 거창한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 개념은 “사람들이 남는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하거나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집주인이 집을 전월세 놓는 행위는 바로 그러한 공유경제의 고전적인 모델일 것이다. 이 모델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인터넷과 결합하고서부터다.

인터넷과 공유경제의 결합을 사업모델로 하여 성장하고 있는 업체는 대표적으로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있다. 에어비앤비는 개인소유 주택의 임대 서비스를, 우버는 도시 내 차량이용 서비스를 중개하면서 중개수수료를 수입원으로 하며 공유경제 모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이들의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서비스는 현재 각국 정부 및 기존 사업자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된 이유는 “안전과 관리・감독, 세금 징수 어려움” 등의 이유에서다. 공유경제는 행정단위의 과세기반을 흔든다는 점에서 과세당국의 골칫거리다. 또한 안전관리, 면허유지 등으로 세금 이외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기존사업자로서는 얍삽한 경쟁자다.

이런 갈등은 빌딩에 입점한 음식점과 그에 인접한 노점상 간의 갈등을 연상시킨다. 빌딩 내 음식점은 월세, 세금 등을 내지만 노점상은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노점상은 이런 면에서 합법적 서비스가 부담하는 물적/사회적 인프라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다. 현재의 문제는 공유경제 업체가 이런 부(-)의 외부효과를 지구적 규모로 초래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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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bnb Logo Bélo” by DesignStudio – Airbnb’s Design Departmen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즉, 호텔업계에게 있어 에어비앤비와 택시 회사에게 있어 우버는 분식점에게 있어 노점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규모의 위협이 되는 존재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면허권을 얻어 영업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어떤 이는 이런 규제가 부조리하며 공유경제라는 혁신적 서비스에 맞지 않다고 하지만, 그런 규제가 또한 안전, 보건과 같은 최소 서비스를 보장해왔다.

기존업체에게 있어 또 하나의 난제는 공유경제 업체가 고정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채 자신들은 단순한 중개 서비스 일뿐이라고 주장하며 논란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아마존, 페이스북이 그렇듯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을 형성했을 뿐으로 그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업종의 애매함은 기존업체나 규제당국 모두 그 업종과의 협상에서 고려할 사항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믿음의 진화’라는 논평에서 공유경제 성공의 원인으로 중산층의 빈곤화가 “남는 자원”을 빌려줘 소득을 얻으려는 동기를 유발한 사실을 꼽았다. 이러한 그럴듯한 분석에서 또한 공유경제 모델과 노점상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개별 서비스 공급자는 무임승차를 통해 적정 수익을 창출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공유경제 업체의 갈 길도 만만치 않다. 이미 많은 유사 공유경제 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는 이 서비스가 의외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을 간과한 대가일 것이다. 에어비앤비나 우버도 생계형의 아마추어 공급자를 그럴듯한 공급자로 개선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렇게 기성업체와 닮아간다면 그들의 본질적인 장점이 퇴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