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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성

‘시험이 내일모레’ 라는 표현이나 ‘주식이 반값’ 이라는 표현은 상황이 그만큼 절박할 때 쓰는 과장법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두 표현 중에 하나는 당장 현실이 되고 말았다. 주가 2000 시대를 부르짖은 지 1년 만에 반 토막이 되고 말았다. 높은 수익률에 마음이 풍족했던 간접투자펀드 가입자들의 가슴에는 지금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신흥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남한의 주가하락은 두드러진다. 이에 여러 가지 설명이 따라붙는다. 수출주도형 경제시스템이어서 세계 경기침체에 특히 허약해서 그렇다, 리만브라더스가 집권하고 있어서 그렇다, 서구 언론의 한국 때리기가 지나치다, 공포감이 지나쳐서 그렇다… 등등 분석이 난무하고 있다. 상당부분 일리 있는 말들이다.

또 하나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자본시장 개방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반강제적으로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가 확대되었고 1998년 8월 마침내 외국인의 유가증권 취득이 완전 자유화되었다. 이후 외국인의 주가비중은 코스피 시장을 예로 보자면 1997년 11.9%에서 2004년 42%까지 확대되었다.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 영향력은 커졌는데 한때 외국인이 매수 또는 매도했다는 주식에 대해서는 동조세력이 따라붙는 등 줏대 없는 거래행위가 성행하여왔다. 또한 서구의 주가추이와도 동조현상, 소위 커플링 현상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대부분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선진 자본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번 주식폭락의 – 그리고 환율급등의 – 배경은 외국인들의 투매현상이 한 몫하고 있다. 본국 기업의 디레버리징에 대한 절박한 요구로 말미암아 대외투자를 – 그 중에서도 상당히 신빙성 있게 남한에 대한 투자를 – 매우 빠르게 청산하였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외국인들의 연간 주식 순매도규모는 총 42조6천91억 원으로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최대치”다.

늘 있어왔던 주장은 개방과 자유화는 헤저(hedger)와 리스크 감수자(risk taker)의 풀(pool)을 늘려 시장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린스펀이 파생상품에 대해 그렇게 주장했고,(주1) 노무현이 FTA에 대해 그렇게 주장했고, 이명박이 공기업 민영화 – 아니 선진화 – 에 대해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자본시장 개방은 시장의 변동폭을 확대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제 쓴 맛을 봤으니 다시 자본시장을 닫을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우리의 경제 체질도 시장개방에 조율되어 왔다. 그리고 개방에 대한 일방적인 맞대응으로 폐쇄를 고려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개방반대자들 중에서 일부가 꾸준히 요구하였듯이 개방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범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단은 무한 개방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한미FTA는 재고되어야 하고(주2) 거래비용이 극히 적게 드는 무한자유의 국가간 자본이동은 토빈세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부합한 무엇인가의 장치를 통해 형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자본의 국적성’이다.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국경은 존재하고 있다.

(주1) 최근 그는 이러한 지나친 낙관이 ‘partially’ 잘못 되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다고 한다.

(주2) 노무현씨가 최근 어느 사이트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는 소리 듣고 난 뭐라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