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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사들도 신용등급을 매겨야 할 시절

“어느 날 집으로 텔레포트되었지
론과 시드, 그리고 멕과 함께
론은 메기의 심장을 훔쳤고
나는 시드니의 다리를 달았네.”

코믹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한 문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을 텔레포트 시켜주는 <물질 이동 광선>의 조악한 성능을 노래한, 소설 속의 세계에서의 인기곡 가사다. 여러 명이 함께 텔레포트 되었는데 장기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손발이 뒤바뀐 우스운, 실제로 당한다면 경악할만한 상황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센스가 맘에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고인이 된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를 위해서 잠시 묵념.

그런데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구조화 금융’이 떠올랐다. 구조화 금융을 “특정목적에 적합한 새로운 금융 또는 관리 구조를 조성(structuring)하는데 채권을 변형, 합성, 유동화하는 금융기법”이라 정의한다면, 론이 메기의 심장을 가져오고 내가 시드니의 다리를 다는 과정이 그 구조화 과정과 왠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 텔레포트 된 몸이 의도치 않은 과정으로 탄생한 괴물이라면, 구조화된 금융은 의도된 괴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시드니의 다리를 단 내가 이전의 내가 아니듯이 – 물론 시드니의 다리가 더 길고 예쁘다면 썩 나쁜 것은 아니지만 – 구조화된 금융상품도 전단계의 금융상품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살로먼브라더스의 루이스 라니에리가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모기지 증권은 30년 만기 모기지를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만기의 채권으로 변모시켜 이전과는 다른 채권이 되었다. 한 몸뚱이가 여러 개로 쪼개져 같은 듯 다른 채권이 된 것이다.

구조화 증권의 창시자들은 초기 이러한 금융기법을 동원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이후 이러한 기법이 전파되어 – 전파경로는 주로 보너스에 불만을 품고 이직한 베테랑 트레이더들이었다 ― 구조화 금융이 보편화되면서 시장참여자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인 면에서 이전과 다른 시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이 기여한 바는 유동성을 증폭시켜 금융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도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겠지만, 이후 세계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즉, 그들의 (메기의 심장을 훔치는) 구조화 금융이라는 광선 덕분에 대출능력 없는 이가 집을 사고, – 한 다큐에 소개된 어떤 이는 10만 달러짜리 집주인인데 은행잔고가 500달러였다 – 엄격한 규정 때문에 투자를 못하던 기관도 투자를 하고, – 오렌지카운티처럼 예쁜 이름의 동네 펀드도 참가하고 – 집값 상승 덕분에 GDP도 올랐지만, 결국 자그만 위험이 흘러넘치며 시장은 붕괴되었고 급기야 제2의 대공황 직전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이 위기가 과연 누구의 책임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여전히 말이 많다. 투자은행, 헤지펀드, 파생상품, 느슨한 규제, 무책임한 채무자.. 다양한 용의자가 지목되고 있다. 이 와중에 막중한 역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덕적 비난만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신용마피아”라 불리는 Moody’s, S&P, 피치 등 신용평가기관이 아닐까. 구조화 상품을 멋지게 포장해줘 채권자와 채무자사이로 돈이 용이하게 텔레포트 되게끔 도운 이들 말이다.

20세기 초 등장한 신용평가사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대공황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채의 상당수가 채무불이행에 빠졌으나 높은 등급의 채권일수록 부도확률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용평가의 효능을 확인한 것이다. 1970년대 미국 규제당국의 제도적 비호 속에서 소수의 신용평가사들이 시장을 과점한다. 오늘날 이들은 전체시장의 90%이상을 독점하며, 말 그대로 국제 자본시장의 민간 감독자(private sector regulator)로 군림하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이들의 위력은 막강하다. 즉, 표면상으로는 미국 국적의 민간회사에 불과한 이들이 일개기업이나 금융상품의 신용평가를 넘어서 국가의 신용등급까지 매기고 있어, 한 나라의 흥망이 이들의 신용평가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나 최근 남유럽에 대한 이들의 신용등급 강등이 미친 파급효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민간신용평가사는 ‘갑’이고 국민국가는 ‘을’이다.

한 가지 재밌는 게 이들의 평가업무는 본질적으로 언론보도와 같다는 주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용평가사 본인들의 주장인데, 1990년대 파생상품 거래로 파산한 오렌지카운티가 S&P를 고소했던 사건 때의 주장이다. 당시 카운티는 S&P가 고위험 채권에 잘못된 신용등급을 부여해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피고 측은 신용등급 평가 업무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의사표현의 자유(free speech)에 해당된다고 항변하였다.(주2)

놀랍게도 법정은 피고 측의 손을 들어주어 책임을 면제시켜주었다. 이후 엔론 사태 등 유사사례에서도 법정은 신용평가사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최근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 사태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편들기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즉, 재판정은 종래의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들의 의견이 공중이 아닌 선택된 투자자에게 “사적으로 배포된(distributed privately)” 것이기 때문이란 판단이다.

여하튼 신용평가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재확인이라도 하듯 그들이 “사적으로 배포하는” 평가등급 보고서에조차도 의례 “투자와 관련된 의사결정이나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써넣곤 한다. 하지만 시장참여자들은 그 문구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어쩌면 신용평가사들도 그 문장에 시장참여자들이 지나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이 가지는 ‘권위’는 그런 면피성 문구와 어울리지 않는다.(주1)

신용(credit)사회에서 그들의 ‘권위 있는’ 신용(credit)평가 덕분에 낯선 이들끼리도 채권을 주고받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장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채권자가 채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상식인 금융시장에서 채무자의 정체도 모른 채 – 심지어 이런저런 구조화를 통해 채무자들을 믹서로 갈아버린 – 떠다니는 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판단근거는 상당부분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투자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평가등급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구조화 금융 자체가 온전히 이번 신용위기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금융 자체가 주범이다. 모든 금융은 저마다 이런 저런 구조화를 하게 마련이다. 현대적 의미의 구조화 금융은 변동성이 커진 지금의 금융시장에 맞게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이 과대/과소평가 또는 시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않은 평가의 반복을 통해 위기의 진폭을 증가시킨 것이다. 2008년에 바로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투자은행들의 과욕이나 신용평가사들의 능력부족 등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과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극소수 민간 신용평가사들이 제도적 보호 속에 피평가자의 돈을 받아가며 평가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의사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가격체계를 왜곡하는 구조적 모순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권위와 그들이 활동하는 생태계가 비대칭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무엇보다 신용평가사들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책임 있는 당국이 그들의 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각국의 규제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새로운 신용평가사들이 진입하거나 평가감독위원회가 설치되어도 이해상충과 책임방기의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수입구조 – 이를테면 국제적으로 추렴하여 조성한 평가수수료 기금? – 와 보다 강한 책임부여 등 질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용평가사들도 신용등급을 매겨야 할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주1) Moody’s의 정식명칭은 Moody’s Investors Services다.

(주2) 실제로 S&P의 모기업인 맥그로힐 그룹은 언론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