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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노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흔히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가치에 비중을 두느냐가 정치적, 경제적 포지션에서 이른바 ‘우파’냐 ‘좌파’냐를 나누는 기준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전후 현대 정치의 역사는 이러한 성장 위주의 정책과 분배 위주의 정책이 그 집권주체에 따라 번갈아가면서 시행된 것인 양 – 실제로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볼 일이지만 – 보이는 측면이 많다.

일단 ‘선(先)성장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논리의 주창자들은 우선 파이를 키워야만 나눠먹을 떡이 생기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선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은 나중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문제는 나중에 골고루 나눠주는 것에 대한 확신 일게다.

솔직히 이러한 논리가 적어도 이 땅에서는 상당히 먹혀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해방 이후 자원빈국에 자본빈국이었던 나라가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하게 된 계기는 노동자들의 임금수탈에 가까운 저임금 고착화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였다. 그 성장이 비록 노동집약적이고 종속적인 발전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 오늘날 세계 11위의 무역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고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은 남한경제의 국제경쟁력 확보의 결정적 요소는 바로 저임금이었기에 – 즉 파이가 커져도 금새 나눌 수 없는 구조였기에 – 상당히 오랜 기간 임금상승은 억압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82년 각국의 임금차이를 보면 한국에 비해 각각 미국 7.3배, 일본 5.3배였고, 심지어 비슷한 경제수준의 국가인 대만 1.2배, 싱가포르 2.4배였다. 아직도 파이는 가진 자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가진 자들이 파이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을까? 대표적인 시기는 바로 1987년 정치적 자유화가 전개되고 이에 따라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다. 1989년을 예로 들면 노동생산성은 7.2% 상승하였고 명목임금은 25%이상 상승하였다. 파이 나누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일종의 계급투쟁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은 흘러 이제 세기가 바뀐 2008년. 선거의 화두는 ‘경제’였다고들 이야기하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제대통령이라고 자처하던 분이 당선자가 되었다. 승리의 원인도 많은 이들이 – 물론 주로 우익 언론들이 – 경제를 살려달라는 유권자의 주문이라고들 한다. 작년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4.8%임에도 경제가 죽었다고 외치는 것이 어폐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경제성장률과 괴리감이 큰 유권자들의 체감지수 탓일 것이다.

요컨대 실제로는 여전히 파이가 커지고 있는데 실감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은 다양한데서 찾을 수 있겠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대형소매업체의 시장지배에 따른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붕괴,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90년대 이후 증가한 노동유연화에 따른 고용불안과 실질임금하락 등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인 것이다.

일본은행(BOJ) 부총재가 최근 “기업 수익 증가가 임금 인상과 소비를 촉진하는 선순환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일본경제에 비관적인 발언을 했다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월 7일 보도에서 그 원인을 시간제 근로자나 임시직 등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한 내수부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중은 3분의 1 이상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노동력의 절반을 진작 넘어섰다.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명박 당선자는 그 어느 역대 대통령보다도 성장론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7%라는 가공할 수치로 상정하였다. 현대판 바벨탑이 될지도 모르는 대운하를 파헤쳐서라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유권자들은 어쩌면 – 아마도 – 이러한 도전정신(?)에서 박정희의 환영이 보였는지 그에게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파이가 커지면 자신에게도 돌아올 파이 조각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여태 팔 아프게 여기 썼지만 문제는 그 기대감의 달성가능성은 무척 낮다는 것이다.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나눠줄 때 나눠주는 주체는 먼저 성장의 열매를 향유한 이들이고 그 열매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은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함을 이미 앞서 예로 든 민주노조 운동 등 계급투쟁의 역사가 증명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일들이야 다 알지만 그래도 당선가능성이 높은 이명박 당선자에게 선처를 호소한 것인가?

어제 보도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신년인사회에서 태안반도의 자원봉사자들처럼 노동자들이 자원봉사 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기업이 성장하는 데 뭐가 어렵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한다. 도저히 파이를 나눠먹자고 선처를 호소할 분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뭐로 보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기업의 성장을 위한 자원봉사용이 되었단 말인가. 이는 일종의 듣도 보도 못한 역(逆)분배론이다.(주1)

이어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원가가 절감되고 기업이 얻는 이익도 확대되고, 세금도 많이 내려가고, 이런 선순환의 기틀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만의 선순환론을 주창하였는데 재밌는 것이 위의 일본은행 부총재의 선순환론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원칙적인 임금인상과 그에 따른 소비촉진은 빠져 있고 기업이익 확대와 세금감소가 언급되어 있다.(주2) 즉 이 당선자는 이 발언을 통해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는 자원봉사자로 경제의 선순환 고리에서 아예 삭제시켜버린 셈이다.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시장친화적인 정치지도자 정도의 정상적인 스탠스를 취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대운하 등에서 보이는 ‘묻지마 개발’ 방식이 그렇거니와 어제의 ‘자원봉사형 노동자’상은 그의 통치방식이 시장경제와 별로 상관없는 그저 친재벌적인 방식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모습들이다.

 

(주1) 이와는 너무나도 대비되게 최근 프랑스의 우익 대통령 사르코지는 자본가들을 경악케 할 만한 제안을 했다 한다. 바로 기업이 번 이윤을 ‘주주 : 노동자 : 재투자 = 1:1:1’ 식으로 나누자는 것이라 한다. 같은 우익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주2) 근데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기업이익이 확대되면 왜 세금이 내려가는지 잘 모르겠다. 기업이익이 확대되면 세금감면 조치가 자동적으로 취해진다는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