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자유경제원

한 경제지의 과욕은 어떻게 왜곡을 촉발시키나

한국경제신문이 사고를 친 것 같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의 저서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를 번역 출간하는 과정에서 그의 저서를 고의 또는 부주의하게 오역하였다는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몇몇 누리꾼들의 문제제기로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몇몇 이들이 디턴 교수 본인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친절한 디턴 교수는 제보자에게 친히 답장을 보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책의 번역(?)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판매 전략을 ‘피케티 대 디턴’의 구도로 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 소개의 첫 줄은 “소득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21세기 자본》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로 시작한다. 책 겉표지의 띠지로 예측 되는 하단부에는 “피케티 VS 디턴”이라고 못을 박았다.1 그리고 책 제목은 아예 원저의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이란 부제를 없애고 “위대한 탈출” 위에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를 달았다.

디턴 교수의 책 내용이 책 표지에 확연하게 보이는 기획의도에 맞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했다. 설사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학자가 그 학자적 양심으로 서술한 내용이고 이 책을 포함한 그의 이론 전반이 노벨상 등으로 평가받은 것이니 그 자체로 존중해줄만하다. 다만 우선 교보문고의 책 소개는 “불평등은 발전을 자극할 수도, 발전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적고 있어 한경이 택한 부제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러한 의심을 더 짙게 만드는 정황을 김공회 씨가 블로그에서 지적했다. 김공회 씨의 분석에 따르면 번역서는 “부(part), 장(chapter), 절(section)의 제목이 대부분 바뀌었고, 절의 경우 원문의 절 구분을 빼는 동시에 없던 절 제목을 집어넣기도 했고, 원문의 내용 중 일부를 자기들 멋대로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리를 옮기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엔 원문에 없는 것을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경이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번안 또는 심지어 오역을 한 것이다.

한편, 자유경제원은 지난 10월 14일 아예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과 한국에 주는 메시지”라는 이름의 세미나까지 열었다. 세미나를 소개하는 글은 강원대 윤리교육과 신중섭 교수의 말을 빌려 “중진국 함정에 걸려 꼼짝 못하고 북한과 통일을 꿈꾸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피케티가 아니라 디턴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디턴은 아마도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킨다”고 주장하는 디턴을 암시하는 것이겠지만 세미나 발표 요약에도 디턴이 그러한 주장을 했다는 발표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세계를 관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나 영감보다도 사실(fact)에 대한 엄정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관점이라도 대등한 사실관계를 비트는 감정이 개입된다면 이는 곧 편파적인 – 또는 “당파적”이라고 미화되기도 하는 – 주장으로, 그리고 그 주장이 “진실(truth)”로 포장된다고 생각한다. 관점은 여럿이되 사실은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한경은 뭔가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한 경제학자의 저사가 담고 있는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범죄다.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한 경기활성화 대책에 대하여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3일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사내 유보금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발표할 경제정책 방향에 반영할 예정”이라[중략]고 밝혔다. 이는 특히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중략]는 지난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계 부채와 내수 부진 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지 않고는 어렵다”며 “기업이 투자와 배당, 임금 등을 늘려서 가계 쪽으로 자금이 흐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쌓아둔 현금에 과세 추진, 한국경제, 2014년 7월 14일]

일단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문제인식은 바람직해 보인다. 현재의 내수침체형 경제 상황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이지 않고서는 뚜렷한 탈출구를 찾을 수가 없는 상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해법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금이 가계 쪽으로 흐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사내 유보금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보금에 과세하면 투자, 배당, 임금 등으로 지출을 할 것이라는 심산이다.

이에 대해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의견그룹에서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사내유보금 과세에 관한 토론회에서 김영용 전남대 교수는 “사내유보금 과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택한 대한민국 정체성에 정면 배치된다”고 주장하였다고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이 토론회의 초대장에는 사내유보금 과세가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기업경쟁력 약화, 국부유출”의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쓰여 있다. 한국경제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한심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이 세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대만이다. 이들 나라에서 이 정책을 도입한 계기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는 약간 다르다. 미국은 ‘조세 회피의 목적’으로 여겨지는 적정 이상의 유보금에 대해 과세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 미일강화조약 체결 준비를 위한 ‘일본세제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신설된 세금이다. 따라서 미국의 과세의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은 미배당이익으로 증자나 생산설비에 투자할 경우 과세를 하지 않으므로 투자유도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지상배당소득세 과세, 유보이익잉여금 증가분에 대한 의제배당소득세 과세, 적정유보최고소득에 대한 법인세 과세 등 유사한 세금들이 계속 유지하였다. 특히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유지된 세금이 가장 직접적인 과다한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자유경제원의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이 시기가 끝나고 난 후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극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과세의 폐지 및 경기의 장기침체로 인한 보수적 기업운영이 원인일 것이다.

국내 전체기업의 사내유보율1 현황(1990~2010년)
20140717-112646-41206429.jpg
자료 :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과세로 인해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줄일 경우 용처는 크게 배당확대, 임금상승, 투자확대 등 세군데다. 그런데 국회예산정책처의 실증분석 결과2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투자확대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3 그렇다면 배당과 임금인데 어느 쪽의 비중이 높아지느냐에 따른 소득불평등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주 자본주의 성향이 강하고 노조조직률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배당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클 것으로 짐작된다.4 그렇다면 과세보다는 세액공제와 같은 정책유도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요컨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의 출발점은 투자 활성화라기보다는 조세 회피적 행위 방지다. 실용적으로 과세 목적을 정할 수는 있을 것이나 악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이나 복지 빈곤에 직접 메스를 대기 보다는 기업의 추렴으로만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시도는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 더불어 재무상태표 상 자본계정에 해당하는 이익잉여금에 과세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그 과세가 정말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에 배치”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기업의 조세회피는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행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