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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화

하지만 국유화라는 것은 별로 적절한 말이 아니며, 애매한 면이 남아 있다. 올바른 의미에서는…. 소비자 일반을 대표하는 소유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 공공 서비스를 하는 여러 가지 조직의 미묘한 차이까지 나타내는 용어는 어느 나라의 말에도 없다….
그 결과로 완전한 무색(無色)의 ‘국유화’라는 말이 매우 특수하고 또 자의적(恣意的)인 제안을 아무래도 받아들이게 되어 버린다. 그 말은 실제로는 특정한 경영 형태, 즉 정부가 임명한 관리가 현재의 담당자로 대체되어, 그 전권(全權)을 행사한다는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산업의 운영 목적이 대중을 위한 봉사에 있는 게 아니라, 주주(株主)의 이익을 꾀하는 데 있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면 필연적으로 효율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국유화를 비판하는 것이다.[작은 것이 아름답다, E.F.슈마허 지음, 김진욱 옮김, 범우사, 1999년, p290)

이 인용문은 저자 E.F. 슈마허(E. F. Schumacher)가 R.H. 토니(R.H. Tawney)의 ‘탐욕의 사회(The Acquisitive Society)’라는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서술이 ‘국유화’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한 위치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옮겨둔다. 토니의 말대로 그것은 어쩌면 “소비자 일반을 대표하는 소유”라는 의미가 가장 근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소비자의 폭과 특성은 개별 상품 또는 개별 기업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하기에 사실 ‘국유화’와 ‘공공성’을 추구하는 이들조차도 이것의 형태 및 그 지향이 어떠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인용문에서처럼 주주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관료주의’, ‘비효율’, ‘복지부동’으로 묘사할 수 있는 “정부가 임명한 관리에 의한 전권 행사”와 동일시된다. 요컨대 이 간극을 줄이는 것, 또한 그 소유형태 및 공공성을 어떻게 세밀하게 분류하고 정의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