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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과 전태일, 희망의 차이

정주영 씨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와 전태일 열사의 전기 ‘전태일 평전’을 연달아 읽었다.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이 두 인물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고 또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공통점에 대해 살펴보자면 둘 다 가난한 부모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가출을 했고, 초인 같은 의지로 현실에 맞섰다. 하지만 그 끝은 달랐다는 것이 결정적 차이점이다. 정주영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남았지만 전태일 씨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스러진 미천한 노동자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나는 이 두 초인이 어디서 길이 갈라져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다시 틈만 나면 거리를 쏘다니면서 좀더 나은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다가 쌀가게 ‘복흥상회’ 배달원으로 취직이 된 것은 당시의 내 처지로는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었다. 우선 안정된 직장인데다 점심과 저녁을 먹여주고 월급이 쌀 한 가마니였다. [중략] 쌀가게 2년 만에 나는 주인아저씨로부터 복흥상회를 인수할 의향이 없느냐는, 전혀 생각 못했던 제의를 받았다.[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 정주영, 솔출판사, 1998년, pp32~36]

하루는 그가 구두를 닦으러 돌아다니다가 평화시장 근처에까지 와서 어떤 학생복 맞춤집(삼일사) 앞에 ‘시다구함’이라고 써 붙인 광고를 보았다. 그 다음날 그는 찬물에 깨끗이 목욕을 하고 헌 누더기 옷을 떨어진 곳을 깁고 깨끗이 빨아서 다려 입은 후,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주인은 몇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취직을 시켰다. 이렇게 하여 태일은 오랫동안의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임금노동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중략] 이것이 전태일이 처음 시다생활을 시작할 때에 대한 기록이다.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되는 일당 50원, 기막힌 저임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도서출판 돌베개, 1991년, pp95~97]

둘의 삶이 엇갈린 한 지점이다. 정주영 씨는 후덕한 쌀가게 주인 밑에서 쌀 한가마니의 월급을 받으며 급기야 그 가게를 인수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본인 스스로도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전태일 씨 역시 떠돌이 생활에서 임금노동자로 언뜻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간 듯 했다. 하지만 그가 찾아간 곳은 실은 일당 50원에 고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노동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지옥 같은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전태일 씨의 삶마저 앗아간 무덤이 되어버렸다.

알다시피 전후 한반도는 남북한 할 것 없이 처절한 가난에 찌들어있었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가난했고 나라도 가난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남한은 미국의 원조를 구걸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입장이었기에 산업화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바로 그 경로에 정주영 씨와 전태일 씨가 같이 동참한다. 한명은 자본가로서 다른 한명은 노동자로 말이다. 입장이 달랐던 만큼 둘의 노동에 대한 시각도 달랐다. 정주영 씨는 노동자의 희생은 일정정도 불가피한 것으로 전태일 씨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나라 전체가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마치 독립 운동하는 투사들처럼 밤도 낮도 없이 일했던 그 시절 사람들이 몹시도 그리웠다. 훨씬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훨씬 부족한 대우를 받으며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거의 몸으로 때우는 노동을 하면서도, 그때는 다 같이 국가 경제 발전에 한 역할을 하는 산업 역군이라는 사명감과 긍지가 있었다.[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 정주영, 솔출판사, 1998년, p310]

이것이 정주영 씨의 기억이다.

끝날이 인생의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육체적 고통이 나에게 죽음을 생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중략] 언제나 이 괴로움이 없어지나.[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도서출판 돌베개, 1991년, p125]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 내지를 못합니다. 또한 3만여 명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7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5시간의 작업을 합니다.[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도서출판 돌베개, 1991년, p209]

이것이 전태일 씨의 기억이다.

둘 다 비슷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시각은 천지차이다. 정주영 씨는 노사가, 아니 나라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일했다고 묘사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전태일 씨는 “견뎌 내지를 못” 하는 노동환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똑같이 가난한 이의 아들로 태어난 둘의 시각이 이렇게 다를까? 그 차이는 희망의 있고 없음이 아닐까 싶다. 정주영 씨는 일찌감치 쌀 한가마니의 월급을 받으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전태일 씨는 희망이 꺾였다. 아무리 일을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주영 씨가 복흥상회를 인수하여 자본가의 길로 접어들면서 희망을 꽃피운 반면, 전태일 씨는 근로기준법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져 있는 근로기준법을 발견한 그는 밤마다 꼼꼼히 법을 읽고 친구들에게 그것을 읽어주며 노동자의 조직화를 시도한다.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고 다니던 때가 이 때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대학생 친구는 없었고 자신을 종처럼 부리는 사장, 현실을 외면하는 근로감독관, 저항을 억압하는 정보과 형사가 있을 뿐이었다.

나라에 의해 살해당한지 40년이 되는 올해 청계6가 버들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사이 노동자의 삶은 어느 정도 개선되어 휴대전화도 들고 다니고 승용차도 몰고 다닌다. 정주영 씨의 희망과 전태일 씨의 희망이 드디어 만난 것일까? 아직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한 노동자가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전태일 씨처럼 분신자살하였다.(주1) 다리 이름이 어떻게 되건 평화시장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그런 상황이 과거형이 될 때는 아마 노동부 건물 앞에 전태일 동상이 세워질 즈음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주1) 바로 정주영 씨가 세운 그 현대건설을 위해 일하던 레미콘 기사였다.

보금자리 주택 단상

반값아파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로망이다. 정주영의 말 그대로 “반값아파트”가 그랬고, 홍준표의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주1)이 그랬고, 현 정부의 “지분형 아파트”가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구상들은 제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실현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생산될 아파트들이 결국 불완전 상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즉 소유할 자산이 온전히 구입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적당치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재산권 행사를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에 대해 사회 상당수가 사용가치 지향적으로보다는 교환가치 지향적으로 사고하는, 그리고 주류사회가 그것을 당연시하는 현실 속에서 그 재산권의 행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반값아파트’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보금자리 주택”이 나오기 전까지는.

존재 불가능한 ‘반값아파트’를 갑자기 정부에서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까닭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다. 바로 싼 땅에 짓겠다는 것이다. 여태의 정권이 건드리길 꺼려했던 바로 그린벨트를 해체하여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여태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안한 – 미래세대를 위해?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 것을 현 정부는 거리낌 없이 해내버렸다. 수십 년간 짓눌려온 지주들의 보상심리로 인해 땅값이 정부의 의도만큼 낮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예측이지만 현 정부라면 또 억지로 싸게 사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도시 연담화의 촉매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인정되던 그린벨트가 사실상 이번 조치로 인해 해체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녹색시대를 외치는 정부에서 말이다. 결국 자생적으로 팽창하는 서울과 인근도시들의 희미한 경계선 역할을 해오던 그린벨트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실질적으로 수도권은 한국 인구의 1/4 이상을 수용하는 초거대 도시권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어느 칼럼도 주장하였듯이 보금자리 주택의 전량을 임대하지 않고 상당 부분을 분양하는 것은 현 정부가 이것을 기회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보금자리 주택의 흥행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것의 분양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무주거기간과 환매제한 기간의 도입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제도가 판교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었는지는 시장(市場)이 더 잘 알고 있다.

진정 현 정부가 반값아파트를 그들이 수요층으로 생각하고 있는 월 300만 원 이하의 서민층에게 공급하고 싶다면 서울시의 시프트처럼 장기임대로 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분양분에 대해 투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환매제한 따위의 꼼수부리지 말고, 분양분을  정부가 다시 물가상승분만을 반영하여 되사는 방식을 채택함이 옳다. 그러면 지금처럼 청약통장이 갑자기 금값이 되는 등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장의 냉철함은 정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긴 하다.

결국 보금자리 주택은 △ 주장하는바 정말 땅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가 △ 반대로 지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인정해줄 수 있는가 △ 그린벨트의 고유목적을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 △ 실수요 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가 △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등 허다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4대강 몰아붙이기가 그러한 것처럼 이 정책도 반대자들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할 정도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랄 수 있을까?

(주1) 아파트 분양시 건설회사는 건물만 분양하고, 대지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원가 수준으로 사실상 영구 임대함으로써 아파트 분양가를 낮춘다는 주택공급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