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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가야 하는 나라

그 동안 20명이 넘는 동지들이 구속되었고 16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해고되었습니다. 1,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다시 한 번 더 힘을 내어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다시 파업투쟁을 전개했습니다. 8월 20일에는 1공장 물류를 끊는 투쟁도 하였습니다. 정규직인 현대차지부 임단협이 마무리되고, 추석이 지나면서 많은 동지들이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중략] 저희들은 다시 투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 방법을 고민하던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다시 현장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철탑 고공농성에 돌입하였습니다.[애절한 마음으로 동지들을 기다립니다]

두 명의 노동자가 지극히 위험한 철탑에 자신의 몸을 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해방? 자본가타도? 그게 아니라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2010년 7월과 2011년 2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차 사내하도급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2년 이상 현대차에 근무한 이들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철탑에 올라간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11.4%)이 BMW(11.6%)에 이어 주요 업체 중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부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15일 ‘2012 자동차 주요 업체 실적 특징’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BMW는 마진이 높은 프리미엄 자동차만 팔기 때문에, 대중차를 파는 현대차의 11%대 영업이익률은 눈에 띄는 실적이다. 기아자동차 이익률도 9.6%를 기록했다. 대중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폴크스바겐(6.7%), GM(5.2%),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4.4%), 도요타(4.2%)를 크게 앞섰다.[현대車 상반기 영업이익률 11.4%… 글로벌 2위]

현대차의 이익은 놀라울 정도다. 인용기사의 말마따나 전 세계적으로 마진이 높은 프리미엄 자동차만 파는 BMW 다음으로 높은 이익률을 시현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류, 3류 로만 취급받던 브랜드가 이제 당당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는 기업분석보고서에서 현대차의 강점을 “확고한 내수시장 지배력”, “글로벌 사업지위 향상”, “우수한 수익구조 및 현금창출력” 등을 들고 있다. 성장요인 또한 매우 안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회사면 사내파견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총 6800여명이다. 현대차는 2011년 기준 매출이 77조원, 영업이익이 8조원이 넘는다. 위 인원을 정규직화시켜 극단적으로 연봉을 3천만 원씩 올려준다고 가정해도 추가비용은 2천억 원이다. 그런데 사측이 정규직 노조와 내놓은 해법은 2016년까지 이들 중에서 3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판결을 반절만 이행하는데 4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대법원이 지난해 7월 “현대차 사내하도급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한 데 이어, 지난 2월10일 서울고등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게 발단이 됐다. 판결이 나오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사내하청노조)는 “모든 비정규직의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등 재계는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판결을 이용해 노동계가 노사관계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현대차는 대법원에 즉시 재상고했다.[‘사내하도급은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후폭풍]

결국 이 인용기사에서 짐작할 수 있는바, 현대차는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판결”을 거부하기 위해 전체 자본을 대변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앞서 말한 기만적인 3천명 정규직 전환에도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놀라워하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떠드는 언론이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나라에서 큰 형님 현대차가 일종의 성전(聖戰)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철탑위로 올라갔다. 나 좀 봐달라고.

대체 언제까지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의 현실”을 감안하여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다행히 여야 대선후보 모두 이제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는 듯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밀고 있다.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보듯이 후보 간에 명확한 차이는 있고, 문재인 씨가 그 중 가장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 공약이 꼭 이행되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황당한 점은 그런 한편으로 바로 그 현대차 비정규직 농성의 해제를 강요한 이경훈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캠프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최병승 씨, 천의봉 씨 부디 무사히 내려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