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1], Fair use, Link 종전 10주년을 맞는 1928년, 국가사회주의당의 당원은 10만 8천이었다. 비록 그 숫자는 적었으나 점점 증가하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1924년 말 형무소를 나온 지 2주일만에 히틀러는 당시 바이에른 수상이며 바이에른 카톨릭인민당의 당수인 하인리히 헬트 박사를 만나러 갔다. 헬트는 히틀러로부터 행동을 삼가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받은 후 (그는 아직 보석 중이었으므로) 나치스당과 그 기관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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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네오파시즘
By Pierre-Selim Huard – Self-photographed, CC BY 4.0, Link 트럼프가 꿈꾸는 새로운 가자 지구의 해안선 20세기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심각한 경제위기의 맥락에서 성장하여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정점에 도달한 반면, 네오파시즘은 특히 2007-08년 금융위기로 인한 “대불황(Great Recession)” 이후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맥락에서 성장했다. 지난 세기의 파시즘은 식민지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던 극악무도한 인종차별적 관행을 배경으로 유럽 대륙 […]
파시스트는 “사회주의의 구원자”였을까?
나치의 반자본주의적 수사에는 중요한 특징이 둘 있다. 첫째, 비생산적 자본 또는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은 동시에 유태인 자본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나치는 또한 공산주의와 맑스주의, 노동자의 자율성 요구와 계급투쟁의 고양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했다. 유태인-볼셰비즘 음모론이 존재하며, 이 음모는 동시에 금융자본의 지배 메커니즘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통해, 이 두 특징이 나치 이데올로기 속에 결합된다. 나치는 유태인-볼셰비키의 통치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