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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원대 ‘짝퉁’을 만들었다는 어느 제조업자의 검거 소식을 보고

짝퉁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 110억 원 어치의 ‘특급 짝퉁’ 을 만들어 수익을 올려오던 세 남매가 잡혔다 한다. 주요 명품회사들이 블랙리스트 1순위에 올려놓은 한국최고의 짝퉁 기술자인 오모(47)씨는 자신의 친형과 여동생을 끌어들여 올해 5월부터 최근까지 명품과 똑같이 생긴 가방 9천여 개를 만든 뒤 해당 상표를 붙여 동대문과 남대문 상가의 도소매상들에게 판매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위조된 제품은 명품 제조회사 관계자도 “진품과 전혀 구분이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 “기술이 워낙 좋아 명품 유통업자들이 오 씨의 제품이 아니면 가짜라는 사실이 금방 들통 나 오 씨의 제품만을 찾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솜씨는 타고난 능력에다 직접 수천만 원을 주고 명품을 산 뒤 해체작업 등을 통해 제품을 분석했을 정도로 치밀성이 결합된 결과였다. 한마디로 ‘짝퉁’ 계의 명인인 셈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그저 ‘허 이런 일이 있었군’하며 흘려버릴만한 스토리다. 짝퉁의 천국 한국에서 110억 원 어치 짝퉁을 만들어 판 제작자 및 유통업자의 이야기. ‘돈 많이 벌었겠네’하며 이내 잊힐 사건이다.

일단 110억 원은 오 씨가 만든 상품들의 진품 시중 가격을 매긴 금액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오 씨가 벌어들인 돈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래도 꽤 많은 돈이리라. 어쨌든 ‘110억 원’이라는 표현은 언론들이 흔히 이런 유의 사건을 흥미 위주의 기사로 포장하기 위해 부풀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필자의 주의를 끄는 사실은 오 씨의 전력이다.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오 씨는 7년 동안 국내 브랜드로 가방공장을 운영하면서 최고 기술자가 됐으나 브랜드 인지도가 없어 가짜업자로 전향했다” 한다. 또 쿠키뉴스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 20여 년간 국내 브랜드로 가방을 제조해온 기술자”라 한다. 두 뉴스 간에 13년 차이가 나는데 추측컨대 오 씨는 13년 간 쭉 가방제작 일을 해오다 7년 전에 자신의 브랜드가 붙은 가방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7년 이건 20년 이건 오랜 세월이다. 명품 제조회사 관계자도 구분 못하는 짝퉁을 만들어낼 정도였으면 대단한 기능인일 것이다. 기능올림픽에서 밥 먹듯이 우승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이니 솜씨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인이 짝퉁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그의 브랜드는 성공을 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기능은 있으되 경영능력이 떨어졌던지 디자인이 좋지 않았던지 뭐 그런 이유들 말이다. 뉴스에 따르면 주된 이유는 ‘브랜드 인지도’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것도 경영능력이라면 능력일터이다. 하지만 왠지 낮은 브랜드 인지도에 좌절했을 오 씨를 마냥 탓하기에는 찝찝하다.

핸드백은 생활용품이라기보다는 패션 아이템이다. 여자의 하이힐이 그렇고 속옷도 그렇다. 이러한 기호품은 특히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마련이다. 섹스 앤더 시티에서 캐리가 밥 굶어가며 명품 하이힐에 돈을 써대는 모습을 보라. 한때 중고등학생들까지 프라다 가방을 매려고 안달이 났던 적이 있다.(요즘도 그런가?) 결국 오 씨가 ‘국내 브랜드’로 승부를 내려고 7년간이나 버텼던 것이 무모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예전에 미술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여러 미술대전에도 입상하는 등 앞날이 유망했던 화가가 당대 거장의 작품을 모사했다가 들통이 난 적이 있다. 위작을 만든 이유는 결국 생계 때문이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라 해도 인지도가 낮았던 그는 결국 자존심대신 빵을 선택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렇듯 현대 문명사회는 ‘브랜드’와 ‘간판’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그 ‘브랜드’와 ‘간판’은 그것을 소유한 이들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삼성 직원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있는 것이고 루이비통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루이비통’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제품에 붙은 가격표는 그들의 그동안의 땀방울이 포함된 가격이다.

한편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라는 책을 낸 반(反)브랜드 운동가 닐 부어맨은 최근 동아일보의 인터뷰에서 “서구 브랜드의 수작에 놀아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구두나 핸드백의 99%를 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유럽의 브랜드들은 그것에 상표만 붙여 엄청난 가격에 팔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결국 오 씨는 차라리 럭셔리 브랜드의 하청공장이나 했으면 속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입장이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브랜드는 한 개인 또는 기업이 오랜 동안 땀 맺힌 노력을 통해 가꾸어온 결실인데 이제 반(反)브랜드 주의자들은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인가? 닐 부어맨의 주장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모든 브랜드를 부정하란 게 아니라 브랜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브랜드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이야기로 약간은 동양철학적인 냄새도 난다.

요컨대 브랜드, 저작권, 지적재산권 등은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생산수단’과 함께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생산수단’이다. 똑 같은 생산단계를 거쳐 생산된 상품이라도 ‘루이비통’을 붙이느냐 ‘오 씨의 브랜드’를 붙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다. 그것이 지난 세월 한 브랜드가 쌓아온 땀의 결실을 적절히 반영한 금액이냐 하는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할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것들이 이제 하나의 기득권이 되었고 WTO나 FTA를 통해 점점 더 강화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p.s. 요즘 연예인들이 갑자기 속옷을 직접 디자인했네 하면서 하루 수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는데 대표적인 ‘브랜드 효과’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브랜드 효과’는 다른 데서 땀 흘리고 속옷 업계에서 수확하는 스타일이니 영 마뜩찮다. 내가 속옷 제작 업자였으면 정말 열 받았을 뉴스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