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펑크

Punk 略史

Proto-Punk라는 장르는 사후적으로 정의된 장르라 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중반 Punk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형성한 이후, 그 주된 아티스트들이 이전의 어떤 아티스트들의 음악과 태도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무리 지워진 60년대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이들은 어떠한 공통점도 일치된 정신도 없었다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들 Proto-Punk의 대표는 역시 이전의 인습을 깡그리 무시한 정체불명의 음악을 시도한 David Bowie 다. 그의 중성적인 패션과 모호한 음악 들은 수많은 다른 장르에도 그렇지만 특히 Punk 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 당시 Proto-Punk로 분류되는 이들로는 MC5, Modern Lovers, The Velvet Underground, T-Rex, Television, 심지어는 점잖게 양복을 빼입고 노래했던 Roxy Music까지도 거론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밴드는 단연 Roxy Music.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들의 히트곡 Same Old Scene 을 들으면 대체 이 밴드와 Punk 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은 당연하다. 아무래도 Modern Lovers가 보다 Punk 에 다가섰다 할 수 있겠다. 그들의 담백하지만 반항기어린 곡 Roadrunner 를 들으면 확실히 Punk 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더 나아가 Television 의 Marquee Moon 은 Punk 는 연주가 딸리는 음악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까부시는 명곡이다.

본격적인 Punk 의 시대에 접어들면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태도로 무장한 일군의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어느새 거대화된 록의 상업화와 쇼비즈니스에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낸 이들은 소규모 공연장에서의 팬들과의 교류를 한층 중요시 여겼다.

The Sex Pistols의 등장이 역시 Punk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일 것이다. 그들의 명곡 Anarchy in The UK 는 Punk의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는 곡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한편 이 밴드의 멤버 Sid Vicious 는 Punk 버전의My Way 를 통해 우상파괴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Sex Pistols 가 좌충우돌 형의 Punk Band 라면 The Clash, The Jam, Gang of Four 등은 보다 확고한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음악활동을 하였다. 좌익사상에 대한 신념이 담긴 이들의 곡은 신자유주의가 막 동이 막 뜨던 영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냉정하게 묘사하였다. 영국 음악의 주요한 조류 중 하나인 Mod Revival 의 원조이기도 한 The Jam 의 Going Ground 는 메시지와 음악성의 화학적 결합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한편 전설적인 Punk Club 인 뉴욕의 CBGB에서는 영국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Punk Artist 들이 등장한다. The Ramones, Talking Heads(한국어 팬페이지), Blondie, Patti Smith 등이 이들인데 영국의 그것과는 달리 좀 더 지적인 면, 시적인 면, 아방가르드한 면이 강조되었다는 특징이다. Patti Smith 의 읊조리는 보컬이 돋보이는 명곡 Horses 나 Talking Heads의 보컬 David Byrne 의 뻔뻔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Psycho Killer 를 들어보면 확실히 영국의 Punk 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음악 장르든 그렇듯이 Punk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인기가 사그라진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새로이 등장하는 음악들은 ‘후기 펑크’ 즉, Post-Punk 라는 이름을 달고 Punk의 태도를 답습한다. 대표적인 밴드가 리더 Ian Curtis의 자살로 더더욱 전설이 된 Joy Division 이다. 댄서블한 리듬에 어울리지 않는 암울함과 부조리함으로 가득 찬 그들의 명곡 Love Will Tear Us Apart 는 그들의 명성이 헛것임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Echo & the Bunnymen, Siouxsie and the Banshees, The Cure 등이 이 시대를 함께 한 뮤지션들이다.

Punk 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여기는 아티스트가 이 와중에 등장하는데 바로 Devo라는 밴드다. De-evolution, 즉 퇴보를 뜻한다는 밴드명에서부터 수상한 냄새가 나는 이들은 50년대 싸구려 공상과학 영화의 상상력, Punk에 충실한 곡진행, 전면적인 전자음악의 도입 등이 뒤섞인,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창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명곡 Whip it 을 들어보라. 어이가 없어진다.

그 당시 뮤지션들이 날카롭던 비판정신은 무뎌지고 배에 살이 찐 90년대 후반과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Punk 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New Wave/Post-Punk Revival 이 바로 그런 조류인데 그 선두주자는 Elastica, The Rapture, Yeah Yeah Yeahs, Arctic Monkeys 등이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The Rapture 의 The House Of Jealous Lovers 를 추천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펑크의 자기부정에 대한 단상

역시 블로깅은 재밌다. 아래 글들은 이른바 Punk Spirit 에 관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 링크들이다. ‘웅크린 감자’님이 펑크적이지도 않은 빅뱅은 펑크 흉내 내지 말라고 화두를 꺼내셨고, ‘민노씨’가 ‘웅크린 감자’님의 훈계가 모순되게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고 비판하셨고, ‘히치하이커’님이 “다만 실제로 국내 음악신에서 아이돌이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진 궁금하긴” 하다며 민노씨의 글을 첨언하셨다.(비판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이에 대해 민노씨가 또 “펑크는 궁극적으론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하고, 역먹이려는 정신이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첨언하셨다.

펑크 음악을 즐겨듣는 나에게는 참 흥겨운 주제다. “펑크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정신”이라는 민노씨의 멘트도 왠지 공감이 간다. 그것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때문 일 것이다.(너무 냉소적일지 몰라도…)

시장 지배를 위한 음악 산업의 전략은 정밀하게 발전되어 왔다. 시장은 그들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주기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레코드 회사들은 인디펜던트들의 활동으로 드러난 시장 수요에 가끔 부응하기도 하지만 보통 그들은 시장을 교묘히 조작하고 가능한 선택을 제한한다.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대중적 취향이다. 한편으로 대중은 항상 혁신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 취향은 항상 장사꾼들에 의해 현혹되기도 한다. 불만스러운 요구들이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올 때까지 기업은 대중적 취향 위에 군림하다가 인디펜던트들에 의해 이 욕구는 상업화하고 다시 이는 기업의 의해 매수된다. 그러나 의문점은 어디에서 그러한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나는 것인가? 왜 시장 통제는 대부분 효율적이지만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가?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가? 항상? 가끔씩? 이 장에서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록이 제작되는 상업적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이다.[록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 사이먼 프리스, 권영성/김공수 옮김, 한나래(1995), pp 128~129]

어쨌든 모든 예술행위는, 급기야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행위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전달되지 않는 한에는 지가 무슨 랭보였든, 피카소였든, 커트 코베인이었든, 트로츠키였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체제순화적인 행위에서야 갈등을 빚을 일이 없겠으나 체제모순적인 행위에서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 ‘이거 시발 체제는 좆같은데 그걸 알리려면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되다니’라는 독백을 바로 윗 글에서 사이먼 프리스가 시장과 인디펜던트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어렵게 설명해주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suede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 광팬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 왈 제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자신을 메인스트림에 쩔어있는 국내 팝팬들과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 팬은 suede 가 영국 음악씬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다면 그들의 이름을 알기나 했겠는가. 그것이 음악‘시장’에서의 팬(특히 오덕후스러운)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Crass3.jpg
Crass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마도 이러한 ‘상호모순’이 가장 비극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Joy Division의 이언 커티스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The Clash 를 비롯한 상당수의 펑크 밴드들도 자신의 이데올로기, 상업주의, 팬들의 모순된 요구 속에서 긴장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괴로워했고 말이다.(이러한 자기부정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로 편입한 좌파정당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다) 결국 민노씨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하는 펑크 정신’이 온존하여 음악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펑크관련 블로그 하나 소개

추.

예전에 NHK에서 밴드 경연대회를 본적이 있는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웃통을 벗은 엄청난 녀석이 보컬을 맡은 펑크밴드의 공연도 있었다. 이 보컬, 사회자의 단상까지 들고 나와서는 무대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인데 단상을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들고 가 정중히 내려놓고 ‘스미마센’하며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일본 애들 중엔 펑크밴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