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의 자기부정에 대한 단상

역시 블로깅은 재밌다. 아래 글들은 이른바 Punk Spirit 에 관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 링크들이다. ‘웅크린 감자’님이 펑크적이지도 않은 빅뱅은 펑크 흉내 내지 말라고 화두를 꺼내셨고, ‘민노씨’가 ‘웅크린 감자’님의 훈계가 모순되게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고 비판하셨고, ‘히치하이커’님이 “다만 실제로 국내 음악신에서 아이돌이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진 궁금하긴” 하다며 민노씨의 글을 첨언하셨다.(비판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이에 대해 민노씨가 또 “펑크는 궁극적으론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하고, 역먹이려는 정신이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첨언하셨다.

펑크 음악을 즐겨듣는 나에게는 참 흥겨운 주제다. “펑크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정신”이라는 민노씨의 멘트도 왠지 공감이 간다. 그것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때문 일 것이다.(너무 냉소적일지 몰라도…)

시장 지배를 위한 음악 산업의 전략은 정밀하게 발전되어 왔다. 시장은 그들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주기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레코드 회사들은 인디펜던트들의 활동으로 드러난 시장 수요에 가끔 부응하기도 하지만 보통 그들은 시장을 교묘히 조작하고 가능한 선택을 제한한다.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대중적 취향이다. 한편으로 대중은 항상 혁신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 취향은 항상 장사꾼들에 의해 현혹되기도 한다. 불만스러운 요구들이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올 때까지 기업은 대중적 취향 위에 군림하다가 인디펜던트들에 의해 이 욕구는 상업화하고 다시 이는 기업의 의해 매수된다. 그러나 의문점은 어디에서 그러한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나는 것인가? 왜 시장 통제는 대부분 효율적이지만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가?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가? 항상? 가끔씩? 이 장에서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록이 제작되는 상업적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이다.[록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 사이먼 프리스, 권영성/김공수 옮김, 한나래(1995), pp 128~129]

어쨌든 모든 예술행위는, 급기야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행위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전달되지 않는 한에는 지가 무슨 랭보였든, 피카소였든, 커트 코베인이었든, 트로츠키였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체제순화적인 행위에서야 갈등을 빚을 일이 없겠으나 체제모순적인 행위에서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 ‘이거 시발 체제는 좆같은데 그걸 알리려면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되다니’라는 독백을 바로 윗 글에서 사이먼 프리스가 시장과 인디펜던트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어렵게 설명해주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suede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 광팬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 왈 제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자신을 메인스트림에 쩔어있는 국내 팝팬들과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 팬은 suede 가 영국 음악씬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다면 그들의 이름을 알기나 했겠는가. 그것이 음악‘시장’에서의 팬(특히 오덕후스러운)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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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s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아마도 이러한 ‘상호모순’이 가장 비극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Joy Division의 이언 커티스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The Clash 를 비롯한 상당수의 펑크 밴드들도 자신의 이데올로기, 상업주의, 팬들의 모순된 요구 속에서 긴장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괴로워했고 말이다.(이러한 자기부정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로 편입한 좌파정당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다) 결국 민노씨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하는 펑크 정신’이 온존하여 음악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펑크관련 블로그 하나 소개

추.

예전에 NHK에서 밴드 경연대회를 본적이 있는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웃통을 벗은 엄청난 녀석이 보컬을 맡은 펑크밴드의 공연도 있었다. 이 보컬, 사회자의 단상까지 들고 나와서는 무대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인데 단상을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들고 가 정중히 내려놓고 ‘스미마센’하며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일본 애들 중엔 펑크밴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17 thoughts on “펑크의 자기부정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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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eagle2

    “이거 시발 체제는 좆같은데 그걸 알리려면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 <- 아시겠지만 RATM은 비슷한 비난에 숱하게 시달렸는데 촘스키를 예로들며 돌파하더군요. "그 양반이 반즈 앤 노블즈 배불려주려고 책파는 게 아니잖아!!"

    언니네 이발관이 처음 등장할 때가 생각나네요. 90년대 중후반의 모든 걸 해체해 버리는 분위기의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석원은 기존 락팬들의 관성에 엄청나게 독설을 뿜어대며 "락스피릿 따위는 없다"고 했거든요. 저도 한 때는 (펑크 보다는 펑크에 영향을 받은) 모던락 오덕후를 해볼려다 그것도 내공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일찌감치 접었는데요. 락스피릿이나 펑크스피릿이 무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런 '스피릿'이 없거나 흉내에 그쳐서 꼴보기 싫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날 때부터 인디팬이나 뮤지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거품이 꺼진 후엔 그래도 남는 게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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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락스피릿 따위는 없다”는 발언도 다른 의미에서의 락스피릿이 아닌가 하는? ^^; 뫼비우스의 띠인가요?

      암튼 세상 넘 고민하며 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처세술이죠. 다만 너무 무개념을 살면 다른 이들에게 민폐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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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eagle2

      음…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건데 락스피릿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그의 발언이 고민을 회피한 처세의 발로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아직 모던락이 소개되지 않았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락매니아들 사이엔 결국 아무 것에도 저항하지 않는 저항의 이미지만 상업적으로 소비하면서 ‘락=저항’ 이라는 교조에 얽매이는 경향도 있었고, 아트락-프로그래시브 락 등의 연주 잘하는 락을 훈고학적으로 집착하며 내실있는 창작 대신 연주기교 연마와 카피에만 몰두하던 경향도 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다수였던 그런 경향들을 인정사정 없이 비판하며 새롭게 재조명하고 옹호했던 게 바로 그 섹스 피스톨즈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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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oog

      ‘혹시나 싶어서’ 다시 취지를 말씀하실 필요없습니다. 🙂 저도 나름 그때의 사정을 잘 알고 있거든요. 당시 하이텔 메틀동에도 가입했었고 홍대 드럭의 초기 입장객이기도 하고… 나름 클러버라고 까불고 다니기도 하고.. 암튼 그런 시절도 있었죠. 그래서 그냥 그 정서는 잘 압니다. 누구보다도 락에 대한 훈고학적 집착에 대해서도 개탄했었고요. 음악을 귀가 아니라 글로 듣는 이들이 많은 시절이었죠. 그러다 펑크의 맹탕이었던 나라에서 펑크네 인디네 도입되어서 좋아도 했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또 진보적입네 하는 어떤 평론가는 또 펑크의 저항(?)정신을 높이 사면서 그 전에 유행하던 뉴웨이브는 또 상업주의에 쩌든 장르로 취급하더만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안돼 이 놈의 세상이란.~~’

      ㅎㅎ 암튼 그런 때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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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히치하이커

    저 위에 트랙백으로 온 글에서 말하는 저항의 의미라면야 저도 펑크는 저항이다란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이 떡밥에 관한 얘긴 이미 제 블로그와 민노씨 글에 쭉 달아 놓았으니 궁금하신다면 참고를(퍽-).

    근디 펑크를 즐겨 들으신다니 으헝헝. 음악 수다도 종종 풀어주심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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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ingback: Delusion Laboratory™

  5. Ray

    펑크를 영 몰라요.저번에 바지내렸던 아해에게 펑크정신을 입각시킬 수 있으려나요?

    것보다 맨 마지막 일본 아해의 사과가 참..일본사람들은 그 국민성땜에 펑크는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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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바지내린 것도 지가 펑크정신이라고 주장하면 누가 말리겠습니까? ㅋㅋ 사실 펑크는 spirit보다는 attitude 라고 생각합니다만 설명하자면 복잡해서 그만 둘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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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요요

    어으으 몇년이 지난것 같은데 카우치 사건 얘기는 아직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게 되네요
    그 사건으로 인해서(직접적으로…-_) 몇년 간 덮어뒀던 실패한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다시 파헤쳐져서요-.-;;;
    또 몇달간 힘들었었는데 그 기간 내내 이건 날 음해하려는 카우치의 MBC의 음모다-_- 라고…아픔(?)을 잊기 위해 농담처럼 말하고 다닌 기억이 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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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헉~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그렇다면 이 포스팅은 요요님을 음해하려는 foog.com의 음모??!!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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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jongsun

    상호모순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섹스피스톨즈의 경우 상업적인 성공이 아닌 미디어와 체제,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이 주목적으로 결성된 밴드였지만, 결국 그들도 말콤 맥라렌이라는 똑똑하고 치밀한 장사꾼에 의해 결성된 아이돌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들이 목표로 두었던 ‘공격’은 기대이상으로 성공했고 그 목표가 초과됨에 따라 자신들을 따라하는 무리들, 펑크족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상업적인 성공을 불러오는 애매한 결과를 낳았죠. 그래서 펑크는 아무리 발악해도 본전도 못뽑는 자기부정이며, 유명해져도 비참한 시드 비셔스고, 락앤롤 뮤직의 막장을 보여주었고, 결국엔 재결성해 일본에서 노래한 죠니로튼이라고 생각해요.
    펑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읽어서 뜻깊었습니다. 어떤 밴드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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