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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곡물법

tomahawk님 왈. “지금 사람들은 원래 땅파는게 취미였다 치더라도… 전에 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미련을 못버렸을까요” 라는 댓글을 보고 또 문득 생각나는 글이 있다. 참여정부 초기 그들의 부동산 철학의 단편을 살펴보고 적은 단상이다. 참고하시길.

부동산과 관련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집이나 땅이 거주나 생산적인 경제활동과 거리가 먼 투기를 통한 자산증식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로 집값이 오르게 되면 당장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비가 오르게 되고, 이는 집 없는 사람들의 내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과 근로의욕 상실, 상대적 위화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또한 전세값이나 집값이 오르게 되면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져 경제의 경쟁력 저하요인이 되는 등 그 부작용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코자 하는 것입니다. [머니투데이, 2003.12.08, 盧 “성장잠재력 붕괴 없다” 중에서]

참여정부의 수반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다. 일단 그의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안정화에 대한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의 부동산 대책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통한 사회안정이나 약자보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집값 안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 내지는 임금상승 욕구 억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의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라보면서 엉뚱하게도 바다 건너 영국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곡물법’이 떠올랐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David Ricardo)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리카도는 이 법을 그토록 반대하였을까? 그의 주장은 무엇보다도 곡물법은 그의 자유무역 신념에 위배되는 악법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거니와 그와 맞물려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부동산에 관한 언급에서 리카도의 논리가 부활하고 있음을 본다.

‘집값이 오르게 되면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져 경제의 경쟁력 저하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집값이 안정(또는 하락)되어야 한다.

여기서 잠시 곡물법의 경우와 부동산의 경우의 중요한 차이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이해집단에서 차이가 난다. 곡물법 경우에는 여전히 막강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 안 있어 역사 속으로 퇴장할 지주계급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다른 계급과 열매를 향유할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이해집단이 좀더 복잡하다. 우선 비업무용 부동산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이 그 정점에 있다. 지난 세기 그들의 선배들이 반대했던 토지를 통한 불로소득은 오늘날의 자본가 계급에게는 알짜배기 수익원이다. 또한 병렬선상에 건설자본과 부동산 재벌이 있다. 이들은 부동산 생애주기의 흐름과 법과 제도의 맹점을 활용하여 단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다음으로 먹이사슬의 하층부에 자리한 쁘띠부르조아들이 있다. 이들은 부동산을 재산증식수단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림으로써 부도덕한 체제에 기꺼이 포섭되었다.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에서 확인한 바, 대다수의 부동산 관련 관료들이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들은 체제포섭된 쁘띠부르조아의 대표적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배계급의 부동산 안정화 논리는 더할 나위 없이 단순 명쾌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명쾌한 논리로도 풀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가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항은 그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고 다양한 계층의 성향을 띠는 것만큼이나 의회에서뿐만 아니라 행정부, 지방자치제, 언론 등 다방면에서 진행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수도권 개발부담금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명맥만 유지해오던 토지공개념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서울시가 각 구청의 반발이 심하다는 이유로 정부에게 부동산 보유 재산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의 지역범위도 대도시에 국한시키겠다고 한다. 경제신문들은 정부의 부동산 안정의지를 기사화 하는 한편으로 기획기사를 통해 은근히 부동산 경기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부추긴다. 한겨레21 최근호가 ‘부동산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한 현재의 국면에서 만만찮은 저항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토지의 공유화를 통한 사회정의를 추구했던 헨리조지의 추종자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차지하고 있다. 빈민운동을 했던 이는 청와대 비서관이다. 이들은 한겨레21이 부동산 전쟁의 ‘5인의 주역’으로 지목한 이들에 속해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잘한 일은 부동산 정책이라는 설문조사도 발표되었다. 현재까지는 그런 대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항은 만만치 않다.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곡물법을 폐지시키는 데에 30여 년이 걸렸다. 우리는 해방이후 지속되어온 이 부동산 투전판이 언제 끝날지 감도 잡을 수 없다. 자유주의 정권의 역사가 짧은 만큼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선배 자유주의자 만큼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동산 폭등은 곡물법이 그러했던 것처럼 경쟁력 저하의 요인이 된다는 꼭 그 논리만큼이라도 관철시키기를 바란다.

그 후에 진보세력은 그 철학과 집행수단에서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