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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의 책을 읽다가 드는 상념 – 두번째

“용기가 있는 사람은 만일 자기보다 상류에 있는 사람이 운좋게 도박으로 재화를 획득했다고 믿는다면, 자신이 가난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가가 모리배로 변신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불평등한 보수의 연속성을 허용하는 심리적인 균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막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정상이윤에 관한 경제이론은 자본주의의 정당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기업가는, 그의 이득이 대체로 또 일정한 의미에서 그의 활동이 사회에 기여한 것과 일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한, 관용될 수 있는 것이다.”[貨幣改革論 26p, J.M.케인즈, 이석륜譯, 1993년, 비봉출판사]

소위 이 ‘정상이윤’은 경제학에서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화두라 할 것이다. 자본가들이나 주류경제학자들은 이윤이란 각고의 기업경영, 고도의 기술개발 등을 실천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원가(原價)를 뛰어넘는 대가라고 주장한다. 한편 Karl Marx는 원가+이윤 이라는 모습은 사실 허상 일뿐이며 노동가치에 대한 착취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화해할 수 없는 입장은 단순한 학술적인 논쟁을 넘어 정부의 가격규제 혹은 조세, 소비자 운동, 계급투쟁 등의 양상으로 사회에 투영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케인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상식선을 – 즉 정상이윤 – 뛰어넘는 상품의 가격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서서히 자본주의의 유용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 시공원가, 의료서비스의 민영화, 유가폭등에 따른 차량유지비 증가, 곡물가격의 상승 등등.

어릴 적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콩트 한편이 생각난다. 어느 제조업 회사의 사장이 왜 원재료값이 자꾸 오르는지 궁금하여 그 원인을 찾고자 거슬러 올라가보니 결국 자기 회사의 제품가격의 인상 때문이었다는 내용이다. 뱀이 자기꼬리를 먹고 들어가는 꼴이다. 진실에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인플레이션, 또는 정상이윤에 관한 진실의 한 토막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들의 실체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것.

시장의 자유방임이 우리를 그 실체의 진실로 인도하리라는 환상은 UFO와 함께 일종의 현대인의 미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케인즈의 책을 읽다가 드는 상념

“화폐는 그것이 구매하는 물건에 대해서만 중요할 뿐이다. 따라서 그 작용이 한결같고 또 모든 거래에 동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화폐단위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만일 이미 확립되어 있는 가치표준의 변화에 의해서 어떤 사람이 모든 권리와 모든 노력에 대하여 종래의 2배의 화폐지불을 받고 소유하는 한편, 또 모든 구입과 모든 만족에 대하여 종래의 2배의 화폐를 지불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폐가치의 변화, 즉 물가수준의 변화는 그의 영향이 불평등할 경우에 한해서만 사회에 대하여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지극히 광범한 사회적 결과를 야기시켰고 또 현재에도 야기시키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화폐가치의 변화가 모든 사람 또는 모든 목적에 대하여 똑같이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폐로 측정되는 물가와 보수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상이한 계급들에 대하여 불평등한 영향을 미치는데,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부를 이전시키고, 한편에는 풍요를 가져다 주고 다른 한편에는 빈곤을 가져다주며, 계획을 좌절시키고, 기대를 실망시키는 방법으로 운영의 여신의 은총을 재분배한다.”[貨幣改革論 3~4pp, J.M.케인즈, 이석륜譯, 1993년, 비봉출판사]

케인즈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인플레이션이 – 또는 디플레이션 –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이 富의 재분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소유자의 부를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며, 유가의 인플레이션은 산유국과 원유 투자자들의 부를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의 자산이 가치절하되는, 즉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분배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좌절감과 열패감을 맛보게 되거니와 특히 그로 인해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증가할 경우 이중으로 고통 받게 된다. 즉 예로 든 집값 상승과 유가상승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재생산 비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현재 임금 또는 소득이 그 화폐가치가 변함없다고 가정할 경우 실질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임금상승의 압박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총자본, 특히 산업자본의 경우 부동산이나 유가와 같이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들의 인플레이션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실질임금의 상승, 국가의 공공서비스 제공,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강압적인 독재를 통해 해소(또는 억압)된다.

그런데 개별자본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즉 사실 이전에도 많은 국내기업이 소위 비업무용 부동산을 확보하여 부동산 인플레이션에 부채질을 했거니와, 지금과 같이 다양한 자본이 증권화(securitization)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이 시스템에서 개별자본 – 심지어 노동자들 스스로조차 직간접적으로 – 은 기회만 있으면 차별화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발생할 부의 증대에 베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교묘해진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다. 단순한 노자(勞資)계급 구도로는 설명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