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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가 다 무슨 시가 10억급 아파트 사는 줄 알아?”

며칠 전에 “하우스푸어(house poor)”라는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트윗했고 적잖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당혹스러운 반응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 반응은 쌍욕이 난무한다는 점에서도 신선했지만, 그보다는 글쓴이의 “하우스푸어”라는 표현에 대한 무지가 더 내 흥미를 자극해서 여기에 소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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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매스미디어에서 부동산 시장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이 “하우스푸어”인데, 그 중 푸어(poor)라는 표현이 가지는 뉘앙스가 읽는 이로 하여금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 정책적인 관점에서나 여론 모두 – 것이 내 트윗의 요지였는데, 내 트윗에 거친 반응을 보인 이는 바로 그런 편견으로 나를 공격한 셈이니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우스푸어”라는 표현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던 표현이다. 과문하여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이런 표현을 본격적으로 쓰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영어이긴 하지만 외국의 논문이나 신문기사에서도 이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표현이 언젠가부터 우리 언론에 지속적으로 소개되며 경제를 바라보는 주요인자 중 하나가 되었다.

외국의 사전 사이트의 힘을 빌리면 하우스푸어는 “대부분의 돈이 집에 묶여 있어 현금이 모자란 사람”이랄 수 있다. 이 간단한 정의의 기준에서 보면 외국에 비해 훨씬 많은 비중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 주택소유자의 대부분이 하우스푸어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매스미디어는 이 정의에서 좀 더 구체화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도 가계부채 부실화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기준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43%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고 주택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택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하우스푸어’들이 늘어나고 있다.[가계부채 부실 이대론 안된다]

또 그는 “부동산경기 침체와 내수부진이 심화되면 빚을 내 구입한 집 때문에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나 신규 자영업자 등이 새로운 서민금융 수요층으로 편입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빚을 내서 집을 산 900만 가구 중 70만 가구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가 넘어 빚을 갚기 어려운 하우스 푸어다.[“국가재정 서민금융에 투입… 가계빚 연착륙 도와야”]

주택거래 실종은 이제 고점에서 집을 사서 고생하는 ‘하우스푸어’의 개인적인 하소연에 그치지 않고 밑바닥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건설사, 협력업체, 이삿짐센터 중개업 등 서민업종까지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깜깜한 부동산시장, 매의 눈으로 상품 골라라]

하우스푸어의 핵심적인 특징이 잘 요약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첫 번째 특징인 “주택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상황은 당초 정의와 부합한다. “DTI가 40%가 넘어 빚을 갚기 어려운” 두 번째 상황은 한국적 맥락의 하우스푸어를 더 구체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점에서 집을 사서 고생하는” 이들이 한국적 하우스푸어의 특징을 완성시켜주고 있다.

요컨대, 우리 매스미디어나 정책당국이 생각하고 있는 하우스푸어는 “부채비중을 높게 잡아 고점(즉, 2000년대 중후반)에서 집을 사서, 집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주택소유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표현인 셈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한 채밖에 없는 서민층’,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빈자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하우스푸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하우스푸어가 고통 받고 있다’고 떠들어대서 나온 결과가 강남 투기지역 해제 등을 골자로 하는 5.10대책이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DTI 규제완화가 빠졌다며, 더 규제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빚 얻어 집산 하우스푸어가 고통 받고 있으니 DTI를 풀어 빚을 더 얻게 하자는 희한한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 트윗에 썼듯 지금 하우스푸어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시장참여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를 꺼리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시장적 요법이 – 이미 5.10대책 이후의 시장이 증명하듯 – 별무소용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매일경제는 DTI 타도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