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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3.0? 또는 사회주의 1.5?

다음은 저명한 경제학자 Dani Rodrik 이 Business Standard에 기고한 글 중 일부다. 전문은 sonnet님이 번역해주셨으므로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던 이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 하나에 대해 논박해야 할 것이다. :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재창조하는데 있어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진정으로 이 유연성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몇 세기 동안 주기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칼 마르크스를 비롯한 비평가들 보다 오래 살아남은 원인이다. 진정한 의문은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 살아남을 수 있다 – 세계의 지도자들이 현재의 곤경으로부터 발현될 다음 단계의 자본주의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Those who predict capitalism’s demise have to contend with one important historical fact: capitalism has an almost unlimited capacity to reinvent itself. Indeed, its malleability is the reason it has overcome periodic crises over the centuries and outlived critics from Karl Marx on. The real question is not whether capitalism can survive – it can – but whether world leaders will demonstrate the leadership needed to take it to its next phase as we emerge from our current predicament.[Dani Rodrik: Coming soon – Capitalism 3.0]

글의 제목부터 흥미롭다. “개봉 박두 – 자본주의 3.0”. 업데이트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황 또는 미래를 상징해주는 가벼운 말장난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담 스미드 시절의 ‘야경국가’가 1.0, 케인즈 시절의 ‘혼합경제’가 2.0 쯤 되고 이제 새로이 도래할 자본주의가 3.0 버전 쯤 된다. 그런데 2.0 버전 이후에 등장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일종의 버그로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 즉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체제가 개입주의적 체제로 거듭나며 발전했는데, 국민국가의 경제적 경계가 세계화에 의해 와해되면서 현재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필자는 자본주의는 “무한한 유연성”을 통해 생존할 수 있는데, 관건은 지도자들의 영도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에서 내가 “자본주의 유연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는 이유는 – 건방진 소리일지 몰라도 – 어릴 적 바로 그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당시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있던 한 선배와의 논쟁(?) 중에 내가 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사회주의가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 때문에 경직성을 띠고 이념의 과잉 현상을 보이는 반면,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의 고갱이만 유지할 수 있다면 – 예컨대 사유권과 시장 – 어떠한 변태로도 수정가능하지 않는가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경향이 심하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있다.(주1) 여하튼 그때의 치기어린 주장이 Dani Rodrik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감히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정말 대학교 2학년 시절의 나와 Dani Rodrik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자본주의는 특유의 유연성을 통해 “자본주의 3.0”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생 시절의 나라면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이제 “유연성”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생명력의 열쇠라는 Dani Rodrik의 논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무한하게 유연하므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라면 극단적으로 ‘자본주의가 아니어도 좋다. 자본주의기만 하다면’ 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일까? 사유재산과 시장이 자본주의의 고갱이라면 봉건체제도 딴에는 자본주의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변태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고 도래할 자본주의는 3.0이 아니라 4.0 또는 그 이상의 버전일 것이다.

내가 굳이 위대한 경제학자의 주장에 – 그것도 내 어릴 적 생각과 신기하게 일치하는 – 딴죽을 거는 까닭은 그가 주류(주2) 경제학자로서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용어에의 집착’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무한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면 ‘자본주의’라는 용어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것이 ‘사회주의가 아니어도 좋다. 사회주의기만 하다면’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과의 체제대결에서의 우월성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경제체제의 진정한 문제는 용어의 폐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용어가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의 폐지 여부일 것이다.

 

(주1)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의 대중음악 시스템은 레게나 펑크락과 같은 반체제적인 음악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상품성을 확인하면 메시지는 거세한 채 형식만을 상품화시킨다.

(주2) 주류라는 표현이 꼭 그가 보수주의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제학적 철학은 상당히 반골적인 기질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의 경제학계에서의 비중이나 입지적 측면에서의 주류적 위치를 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