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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뒤에 노동자 있어요

혁신은 상층부에서의 고숙련의 소수 일자리들이 상대적으로 저숙련인 일자리들을 감시하는 전통적인 노동의 피라미드 구조를 교체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이 바꾸는 것은 자동화를 통해 대부분의 반복적인 작업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보다 복잡한 작업을 계속하여 채워 넣음으로써 피라미드의 구성이다. [중략] 이러한 경향은 특별히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실존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구체적인 서비스를 팔기 위한 (양방향 시장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에서 명백하다. 우버의 차량호출과 배달 앱이 아무리 세련됐을지라도 이 회사는 차량 운전자와 배달 노동자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The Revenge of the Precariat]

어쨌든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말미암아 집밖에 섣불리 나가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이동의 제약을 우리는 배민과 같은 첨단 배달앱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편리해지고 있는 세계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편리성의 뒤편에는 바로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저숙련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곤 한다. 앱 이용 과정에서 그들을 마주치는 순간은 배달음식을 전해 받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 국한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라는 유명한 유머 게시물도 있었지만, 이 경우를 그 표현에 빗대어 보자면 “앱 뒤에 노동자 있어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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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eople/25232127@N00″>d. FUKA</a> from Yokohama, Japan –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hotos/25232127@N00/2307460971/”>Cleaner [Suzhou Station / Suzhou</a>], CC BY-SA 2.0, 링크

우버와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모델이 등장할 때만 해도 혁신이 노동의 피라미드 구성을 바꿀 것이라는 꽤 낭만적인 전망도 있었다. 노동과 자본을 공유하면서 세상은 좀 더 친환경적이 되고 계급의 피라미드 구성도 완화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예전에 JP모건 체이스가 분석한바 에어비앤비와 같은 자본 플랫폼의 참여자는 플랫폼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소득증가로 이어진 반면, 우버와 같은 노동 플랫폼의 참여자에게는 플랫폼 참여는 소득증가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대체소득의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즉, 노동 플랫폼에서 노동의 전통적인 피라미드 구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직노동이 비조직노동,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하는 상황만 초래했다.

긱이코노미의 비조직노동은 점차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며 지위를 개선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노동자는 전통적 노조나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화려한 조명을 받는 “혁신” 주도자들의 천문학적 부의 창출에 푼돈을 받아가며 기여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통적인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산업예비군들이 또 긱이코노미에 참여하게 되면 기존 노동자들의 지위는 더 열악해질지도 모른다.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배달 노동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냈는데, 실제로는 경쟁 증가로 인해 소득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노동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노동의 피라미드는 상층부에 세련된 소프트웨어, 하층부에 불안정 비조직노동이 자리잡는 형태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독립형 일자리 경제” 모델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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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er Torrenegra from Secaucus, NJ (New York Metro), United States – On my first @Uber ride in Bogota heading to a Startup Weekend. Priceless easiness and safety. I love disruptive innovation., CC BY 2.0, Link

어제의 여의도가, 요즘의 한국이, 그리고 요즘의 전 세계가 “공유경제(sharing economy)”1라는 신종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적잖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공유경제”라 불리는 분야에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지만, 가장 큰 갈등을 겪고 있는 분야는 우버나 카카오 카풀 등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등장한 신개념의 승차 서비스다. 이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라보는 경영인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우선 우버가 촉발한 갈등은 현재 서구 언론이 이 비즈니스 모델을 지칭하는 표현인 “독립형 일자리 경제(gig economy)”의 진위(?)를 둘러싼 갈등이다. 기그는 원래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즉석에서 고용하여 단기로 공연 계약을 맺던 것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서구 언론은 “공유경제”라는 보다 애매한 의미의 용어보다는 “독립형 일자리 경제”라는 고용 행태에 주목한 용어를 선호하고 있고 나도 이런 용어의 취사 선택이 어느 정도 합당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재판부는 우버와 우버 운전자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소송의 2심에서 운전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독립형 일자리 경제”라는 정의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즉, 우버 운전자들은 독립적인 사업자라기보다는 우버에 고용된 노동자이며 이에 따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판결 내용이다. 1심에서 판사는 “런던에서 우버는 3만 개의 작은 비즈니스가 플랫폼으로 연결된 모자이크라는 개념은 약간은 바보같다.”라며 운전자의 노동자성을 옹호하였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우버 운전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게 됨에 따라 회사는 그들에게 최저임금과 휴가 수당 등의 비용을 지급해야 하며, 노동시간은 운전자가 승객을 이동시키는 시간이 아닌 우버 앱을 켜놓은 시간으로 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버는 그동안 누리고 있던 결정적인 이점, 즉 전통적인 승차 서비스에서 갖추어야 할 노동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기회비용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다. 이미 우버와 같은 전면적 모델은 금하고 있는 와중에 택시 운전사들을 링크시켜 거대한 플랫폼을 형성한 카카오 택시는 이 황금알에서 만족하지 않고 ‘카카오 카풀’이라는 변종의 우버 모델을 도입하였는데, 이게 기존의 택시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서비스 성공 여부의 불투명함과 여론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모인 것을 보면 사태가 자못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났던 택시 운전사나 관련 공무원의 말을 종합해보면 택시 노동자는 플랫폼을 독점한 카카오가 이전의 콜택시나 신규 업자에 비해 우월한 계약조건을 강제하고 있던 와중에 이번에 카택이라는 기존의 서비스와 경쟁관계가 되는 카풀 서비스를 런칭하는 상황에 분노의 폭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우버가 내부에서의 노자(勞資)관계의 갈등이라는 카풀은 거대 플랫폼에 포섭되어 공존관계였던 기존 업계가 동업자의 배신에 분노한 형국이 된 셈이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벤처 사업자라면 기득권 세력이 비즈니스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승자는 플랫폼의 독점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영국 법원의 판결이나 한국 택시 노동자의 저항은 그들이 독점자로서 미처 마련하지 못한 자정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그들의 비즈니스가 “공유경제”와 “독립형 일자리 경제”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고민하는 비용 정도는 치를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