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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스릴러 The Black Dahlia

블랙달리아(Black Dahlia)의 시작은 다소 복잡하다.

1947년 1월 9일 미국 L.A.에서 소름끼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발견되었다. 시체의 신원은 무명여배우였던 엘리쟈베스 쇼트.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찢겨져 있었으며 사체에는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세척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그 선정적인 소재로 말미암아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언론은 온갖 추측성 보도를 해댔고 정신 나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수하였다. 하지만 아직껏 진범이 잡히지 않은 미결사건이다.

소재의 충격성은 많은 미스터리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LA Confidential로 명성 높은 추리작가 제임스 엘로이가 살을 보태 소설 블랙달리아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작품성이 높이 평가받았는데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감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심리 스릴러의 대가로 불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라면 이 작품을 영화화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의 걸작 Dressed To Kill이나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Snake Eyes 등을 생각해보면 그 공력으로 충분히 이 다소 복잡하지만 독자의 감성을 쥐어짜는 듯한 최고의 심리 스릴러 소설을 충분히 멋지게 영상에 옮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할 정도다. 요즘 뜨는 배우 조쉬 하트넷을 비롯하여 연기파 배우 힐러리 스웽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스칼렛 요한슨 까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을 총동원한 이 영화에서 스릴은 느낄 수 없고 연기는 밋밋할 뿐이다. 원작을 읽으면서는 느꼈던 피해자에 대한 형사의 처절한 연민의 독자로서의 공감이 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배우들은 감정을 표현하려 애썼지만 이미 극진행이 너무 지루하여 제 풀에 지쳐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뱀파이어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던 힐러리 스웽크나 그나마 선전하였으나 이마저도 극에 겉도는 느낌이었다. 마땅히 등장하여야 할 마지막 반전도 왠지 의례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역시 원작이 영화화하기에 너무 벅찼나 하는 생각이다. 원작은 극적반전이나 고도의 추리기법과 같은 정통 스릴러적인 맛보다는 동시대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던 실제 사건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임으로써 마치 내 이웃이 살해당하였고 그에 충격 받은 것 마냥 울림이 강한 드라마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사건을 엄정히 수사해야 할 담당형사가 흔들리는 모습은 스릴러치고는 이단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기부여는 원작소설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해설하다 제 풀에 지쳐버린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복잡한 설정이 스치고 지나가 관객들이 따라잡을 틈이 없다. 요컨대 원작에 너무 충실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 된 것이다. 차라리 가지 칠 것 치고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성공한 작품이 바로 제이슨 본 시리즈다. 만약 이 시리즈의 제작진들이 원작에 블랙달리아 제작진만큼 집착했더라면 관객들은 영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스파이물의 사례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영화화는 또 하나의 창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