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한진중공업 투쟁, 그리고 “양심의 자유”

어떠한 당사국도 자국 영역내 당사국 또는 비당사국 투자자의 투자의 설립,인수,확장,경영,영업,운영이나 매각 또는 그 밖의 처분과 관련하여, 다음의 요건을 부과 또는 강요하거나, 이에 대한 약속 또는 의무부담을 강요할 수 없다. [중략] 자국 영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 또는 사용하거나 이에 대하여 선호를 부여하는 것, 또는 자국 영역에 있는 인으로부터 상품을 구매하는 것.

한글번역본의 번역오류가 알려진 것만 300여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미FTA 협정문의 제11.8조 ‘이행요건’ 조항의 내용이다. 이 문장에도 혹시 번역오류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그 의미는 크게 어렵지 않다. FTA를 체결한 양 당사국들은 “자국 영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 또는 사용하거나 이에 대하여 선호를 부여하는 것”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제11.3조 ‘내국민 대우’와 일맥상통하는 조항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조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양국의 향후 지방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유시민 씨가 지난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놓은 “로컬푸드 무상급식” 건을 보자. 당시 경기도 지사 후보로 나선 유시민 씨는 도내 생산 식자재로 급식을 제공하여 건강과 환경을 챙기겠다고 약속했지만, 바로 위 조항의 “자국 영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 선호”하는 것이기에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협상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많은 지자체 조례가 비합치된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미FTA는 – 기타 대다수의 FTA를 포함하여 – 이밖에도 최혜국대우 원칙, 내국민대우 원칙, 시장접근제한 원칙 등을 통하여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FTA는 문자 그대로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을 넘어서 투자 및 지적재산권 등을 포괄하는 ‘통합된 자유경제지역’을 지향한다. 주의할 점은 ‘내국인/외국인’에서 ‘인(人)’의 권리는 절대다수 자연인이 아닌 법인의 권리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FTA는 단순히 우리의 경제생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와 연관된 모든 제반활동, 정치, 문화, 사회, 노동, 보건, 환경 등에 판단기준이 되어버린다. 요즘 국회에서 무슨 공익적인 조치를 하나 하려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가는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WTO나 FTA와 합치되지 않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유야무야가 되고 말 정도다. 그런데 FTA로 자유(free)를 부여받은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법인, 즉 자본일 뿐이다.

물론 한미FTA에도 이른바 ‘노동장(labor chapter)’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조항의 의도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한국의 노동권이 침해됨으로써, 저가상품이 유입되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미국 노동계의 요구일 뿐이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조항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분쟁해결절차가 별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협정문은 이외에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은 없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자. 이 사태는 근본적으로 입지 전략이 자유로워진 자본이 경영전략에 따라 입지를 옮겨버리는 바람에, 절대적으로 지리적 이동의 자유가 제약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져 버린 상황에 기인한다. 그런데, 한미FTA는 앞서도 말했지만 자본의 이런 입지이동의 자유를 한층 더 강화한다. 투자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한다는 것에는 타당성도 있을 것이나, 자본 대 노동의 구도로 보면 절대적으로 자본에 유리한 협정이다.

따라서 ‘한미FTA에 각종 독소조항이 있다’는 비판론자의 주장에 ‘다른 FTA도 다 들어있는 조항이다’라는 반박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재한 FTA의 근본모순을 당연시하는, 하나마나한 반박일 뿐이다. 비판론자들 역시 FTA 자체의 반노동성보다는 한미FTA의 반미적 감성에 의존하였던 실기가 있다. 그럼에도 비판론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FTA가 가지고 있는 근본모순인 자본 대 노동의 권리보호장치의 절대적 비대칭을 계속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유시민 씨는 한미FTA 정책에 대한 성찰을 하라는 진보정당의 요구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요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양심의 자유가 어느 범위까지 확대되는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반노동자성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는 FTA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 무지를 양심이라 하긴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보수를 자처하며 FTA를 찬성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부합할지 몰라도 “진보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가 요구할 자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진중공업 사태로 가보자. 사측이 노조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필리핀으로 제조기지를 옮겨버린 후 대규모의 배당을 실시한 정황을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어떠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경영상의 이유를 인정한다면, 이상적일지 몰라도 노동자도 같이 따라가던지 국내에서 다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 한국 노동자가 한미FTA를 통해 미국에서 미국 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트위터에서의 본문에 대한 의견에 따라 본문 일부 수정

출처

One thought on “한미FTA, 한진중공업 투쟁, 그리고 “양심의 자유”

  1. Pingback: 창비주간논평의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법’에 관한 글을 읽고 | foog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