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제2의 박정희일까

이명박은 박정희의 적자(嫡子)인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자나 반대자 모두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그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이 나라를 빈곤에서 구원하신 박정희 전(前)대통령의 개발독재의 전승자(?)라는 이미지다. 이 나라 경제개발의 주역인 현대 정주영 회장을 보좌하며 쌓아온 그의 이력이나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개발’을 뚝심 있게(?) 추진한 그의 저돌성과 과감성에서 많은 이들은 박정희를 오버랩 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쪽은 그래서 그를 지지하고 다른 한 쪽은 그래서 그를 반대한다.

그런데 사실 이번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에서 읽을 수 있지만 이명박 후보의 경제철학(?) – 만약 있다면 – 은 박정희의 경제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개발을 펼칠 것은 동일해보이나 박정희 식 경제개발이 철저하게 산업자본 및 금융자본을 국가의 경제정책의 하위범주로 귀속시켰던 계획경제 또는 관치경제였던 것과는 달리 이명박의 그것은 그러한 금융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만개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막말로 이명박은 현 참여정부의 경제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

우리나라에 세계화라는 화두가 등장한 시기는 군사독재 이후 민간정부가 권력을 잡은 시기와 묘하게 일치한다. 최초의 민간인 정부라 할 수 있는 김영삼 정부는 소위 ‘관치(官治)경제’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다. 아직도 집권자의 말 한마디에 은행의 눈먼 돈이 산업자본으로 대출되었다. 그 결과가 기업의 천문학적인 부채비율,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의 줄도산이었다. 그 이후 IMF가 훈계하였고 우리 스스로도 뼈저리게 느낀 것이 ‘관치는 정말 나쁜 것이구나’ 하는 체험이었다.

이후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생 정치세력들은 군사정권의 이른바 ‘관치(官治)’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그 거부감은 관치의 배경이 되는 전체주의와 국가주의가 결국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했다는, 즉 독재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변질된 것이다.

경제정책적인 관점에서 관치에 대한 이런 거부감은 정부의 역할 축소, 경제참여자의 경제적 권리 보호, 자유무역의 확산 등을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시민사회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바라보는 인식과 맥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가 마침내는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따라서 ‘관치’는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된 각종 금융규제의 자율화 내지 철폐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국가가 대주주인 여러 상업은행의 민영화와 통폐합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정책은 참여정부에 막힘없이 계승되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을 건전하고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신념이 꿋꿋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 상업은행의 대부분이 해외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개방화된 금융시장에서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되게 되었다.

시장은 튼튼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참여정부의 인식을 한번 들여다보자. 몇 해 전 KT&G와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간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관료들의 태도에서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절대적인 신뢰감을 강하게 엿볼 수 있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한덕수 부총리는 “KT&G가 경영을 잘해서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아이칸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과정에서 KT&G 기업경영과 지배구조가 튼튼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먹고 먹히는 것이 자본주의 기업의 속성이라면, 현재의 KT&G 사태도 자유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은가? 이것이 자유주의적 경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생각일 텐데, 이는 현대 금융자본, 좀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투기자본의 광폭함에 대한 무지 내지는 순진함을 드러낸 것이다. 실상 기업 사냥꾼들의 수법은 리버리지를 이용하여 낮은 자본비율과 그들에게 적합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차입매수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적인 투기형태일뿐 기업의 건실성은 아무 상관없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개방경제때문?

한편 노무현 정부는 이 와중에도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경제적 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한미FTA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현재의 EU와의 FTA협상에서도 그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소신있는 행보를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 중 하나는 재밌게도 박정희 시대에 대한 회고이다. 우리가 그 시대에 수출주도 경제 – 자신들 표현으로 개방경제 – 를 펼치지 않았으면 이런 경제개발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체제이긴 하였으나 개방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보호주의적인 경제였다는 점이다. 유치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금융적 지원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감히 써먹지도 못할 표현인 – 그래서 한동안 미국으로부터 빨갱이 국가로 의심받은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이행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었고 수입은 극도로 억제되었다. 이는 개방경제가 아니다. 거기에다 사실 그 시절의 경제성장률은 대만이나 동급의 국가의 그것과 비슷했을 뿐이다. 이들 나라들이 공히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관치경제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서구 경제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이다.

반면에 현재 체결된 한미FTA는 각종 조문에 해외자본의 투자를 강력히 보호하는 장치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나라가 전쟁 상태에 있을 때조차 자신들의 투자분의 기물파괴까지도 한푼의 손해없이 모두 보상받는다. 그리고 모든 분쟁은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해외의 법원이나 중재기관에서 해외의 룰을 적용받아 진행된다. 우리나라 헌법은 이제 휴지조각이다.

관치에서 벗어난 이후 튼튼해진(?) 경제의 모습

그간 국내에서 투기자본의 인수합병 사례를 보면 론스타, 뉴브릿지캐피탈 등을 닮은 해외자본이 국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인수한 이후 어떤 경영 행태를 취할 지 짐작할 수 있다. 대대적인 노동자 해고, 단기 성과주의 치중, 기업매각을 통한 막대한 시세차익 그리고 조세협약 등을 이용한 교묘한 탈세 등이 그것들이다. 한마디로 ‘M&A를 통한 기업자산의 우량화’ 같은, 경제학 책에서나 나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FTA가 정식 발효되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국세청이 감히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따위의 짓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또한 현재의 상업은행들의 행태에서도 그 부작용을 볼 수 있다. ‘중소기업 대출’과 같은 생산투자로의 대출은 손을 끊은 채 주택담보 대출 등 가계대출에만 주력한 결과 이 나라의 경제는 산업기지의 중국으로의 이전, 부동산 폭등 등 기형을 거듭하고 있다. 관치가 위정자의 이익을 위해 남용될 경우에도 그 사태가 심각하지만 적어도 국가자본주의 시절 박정희를 보좌하던 경제관료 들의 자원배분은 어쩌면 현재의 해외자본들보다는 국가경제에 있어 선순환적이었고 인간적이었다.(물론 이는 가혹한 노동자 탄압은 예외로 하고 하는 말이다)

현재의 금산분리 주장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한 몸뚱이다

재벌과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외국 투기자본의 횡포에 대한 대안으로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원칙의 폐기’, ‘국내 경영진에 대한 차등의결권 부여’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큰 도둑을 물리치기 위해 작은 도둑을 키우자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미 지나친 차입경영과 황제적 경영방식 등으로 IMF 외환위기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후진적인 기업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특권만 부여해 달라는 것이다.

그 주장을 지금 이명박 후보가 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박정희와의 차이점이다. 만약 박정희가 현세에 부활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그는 당연히 은행을 국유화시키겠다는 국가사회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 현 정부나 이명박과 경제관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동영이 금산분리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주장도 재밌다. 이미 재경부나 금감원의 많은 관료들이 금산분리 철폐작업은 남몰래 진행시켜온 와중에 과연 그가 금산분리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서 전선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명박은 역시 참여정부의 적자다

투기자본이 횡포를 부리는 근본 원인은 대안 없이 금융시장을 개방해버린 경제시스템과 이 시스템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료들의 무조건적인 맹신, 그리고 소신 있게 이 나라의 경제를 미국의 경제권 범위에 복속시키는 FTA를 체결해버린 노무현 정부에 있다. 국내 자본시장을 월스트리트 투기자본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주고 일부 놀이기구를 손보는 정도로는 사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어쩌면 우리가 후진적인 경제모델로 폐기처분했던 ‘관치(官治)’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개발독재 시절과는 질이 다른, 진정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관치여야 한다. 진정으로 절대다수의 근로계층의 이익을 위해 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말로만 서민층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서민들 알아들어먹을 수도 없는 이상한 말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747박수나 치는 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추억의 정치꾼 김민석이 다시 나타나 이명박을 ‘제2의 노무현’이라고 했다한다. 그가 뭐라 한들 신경 쓰는 사람도 없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나도 그 말을 쓰고 싶다. “이명박은 제2의 노무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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