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주의, 임금, 그리고 사회적 가치

많은 비(非)산업부문 일자리들에 부과된 낮은 일자리들에 부과된 낮은 지위는 대체로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는 유익하지만 임금은 형편없는 일자리들에 대해 우리가 키워온 혐오에서 비롯된다. 이는 실력주의(meritocracy)라는 신흥 종교의 부산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의당 그의 ‘실력’(merit)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신경제학재단(NEF) 싱크탱크는 2009년 여러 직업들의 사회적 가치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병원 청소부들은 일반적으로 최소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NEF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청결과 위생을 유지하고, 넓은 의미의 건강을 생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은 1파운드를 받을 때마다 10파운드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중략] 이 싱크탱크가 똑같은 모델을 런던 금융가의 은행가에게 적용해보았더니, 그곳의 금융활동이 초래한 손실을 고려할 경우, 그들은 임금으로 1파운드를 받을 때마다 7파운드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오언 존스, 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북인더갭, 2014년, pp234~235]

경제자유주의자에게 ‘과연 우리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가? 혹은 그에 부합하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그 질문의 우매함을 비웃을 것이다. 일단 그는 “사회적 가치”의 존재 여부에 회의적일 것이고,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해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NEF(the New Economics Foundation)는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고 가격과 가치가 일치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마 조직의 이름도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경제학”이라 지었을 것이다.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 Social Return on Investment)는 사회적, 환경적, 그리고 경제적 결과물을 이해하고 측정하고 보고하는 과정이다. SROI 비율은 금융적 조건에서 창출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투자비용에 대한 사회적 가치(social benefit)를 가늠하게 해준다.[Investing For Social Value : Measuring Social Return on Investment for the Adventure Capital Fund, NEF, 2008년, p6]

NEF가 2008년 내놓은 보고서의 이 문장을 통해 NEF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 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가치는 특정 노동이나 서비스, 또는 투자에 대한 ‘사회적(동어 반복적이지만), 환경적, 경제적 영향 혹은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NEF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병원 청소부와 은행가가 창출하는 각각의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영향을 평가한 후 – 각각의 인자도 결국 가격으로 측정되었을 것이다 – 이를 그들이 받는 임금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임금 단위당 사회적 가치를 평가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이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지만 – 일단 환자에게 청결이란 필수요소니까 – 대규모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청소부의 사회적 가치는 높게,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사회적, 환경적으로 이로운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한 – 일례로 산림을 파괴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주는 풍력발전 투자는 환경적으로 이로운가? 해로운가? – 경제위기 당시 대규모 경제손실을 초래한 은행가의 사회적 가치는 낮게 측정되었을 것이다. 결국 환원적으로 ‘사회적/환경적 인자의 정확한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회적 가치로 임금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방식이 불충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여러 방식도 저마다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임금협상을 할 때에 흔히 사측이나 노측이나 노동생산성 증감률을 임금협상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이 한 사회의 생산에 기여한 정도라기보다는 한 사회의 GDP를 개별 노동으로 나눈 산술적인 수치로 봄이 타당하다. 최근 인당 노동생산성보다 노동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더 타당하다는 연구도 있지만 여전히 노동생산성의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임금은 오언 존스도 지적했듯이 실력주의라는 “신흥 종교”의 – 사실 오래된 종교다 – 편견이 빚은 결과물이라 여겨진다. – 이 종교에 칼 맑스마저 다소간 경도되어 있는데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의 가치 차이가 있다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 에르메스 핸드백의 눈 튀어나오는 가격을 소비자가 수용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아직도 골드만삭스의 투자은행가가 병원 청소부보다 더 실력이 있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더 이로워 돈을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NEF의 시도는 그런 종교적 신념에 저항하는 새로운 종교 – 혹은 과학? –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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