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 후진국 중국을 보며 생각나는 또 다른 후진국

S&P나 무디스와 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주택 거품 당시 위험한 모기지 담보부 채권의 등급을 높게 매기고 금융위기의 와중에서야 사후적으로 정크로 강등해서 비난을 초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거의 12.7조 달러에 달하는 채무 중 겨우 1.4%만이 AA 등급 이상의 등급을 받았을 뿐이고 가장 높은 등급의 채권은 주로 정부가 보증하는 패니매나 프레디맥 같은 회사, 그리고 최상위 채무자가 발행하는 것들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최상위나 많은 보증을 받는 국유은행들에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지방정부나 민간 부동산 회사에 이르는 기관들이 똑 같이 높은 등급을 얻어내고 있다. [중략] 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다른 이들에 따르면 현지 신평사들은 특정 회사의 정부와의 관계가 그 비즈니스나 부채 상환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고려한다. 그들은 중국에서의 대부분의 차주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들이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높은 등급의 회사가 많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신평사들은 또한 해외에서 자금을 일으키는 국유기업들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와 연계된 회사들은 중앙정부와 연계된 회사들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Can All Chinese Debt Be Rated Top Quality?]

중국의 후진적인 신용등급 시장의 상황에 대한 WSJ의 글 중 일부다. 시장에서 채권가격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신용등급의 중요성은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례로 가깝게는 금융위기에서의 모기지 채권에 대한 엉터리 신용등급은 시장참여자들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고 금융위기를 심화시키는데 한 몫 단단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며 지금 그와 유사한 상황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신평사들이 못미더워서 자체적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겠다고 했던 중국 신평사들이 WSJ 보도에 따르면 정작 중국 본토에서 발행된 위안화 채권의 97%에 AA또는 AAA 등의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들 평가가 사실이라면 지금 중국은 세계 최고의 신용을 가진 국가인 셈이다.

해외 신평사가 국내기업에 대해 박한 이유로 공통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컨트리 리스크다. 남북분단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기본적으로 점수를 깎고 들어간다. 하지만 이 변수는 점차 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더 중요한 매크로 환경은 이른바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에서의 소유-경영의 불투명성에 따른 리스크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국내 신평사는 오히려 이런 특수성이 높은 신용등급의 근거가 된다. 즉, 순환출자로 엮인 “재벌”社에 속해있는 계열사는 회사 자체의 능력보다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신용 리스크 등이 불거질 경우 모기업에서 자금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믿음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부실한 공사(公社)의 프리미엄도 상당하다.[신평사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하지만 중국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신용평가 체계도 후진적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등급보다 상향 조정되곤 하는 평가등급은 “국내적 상황”이라 치부할 수는 있지만, 중국 신평사들의 고려사항인 정치적 고려요소가 국내 신평사들에게도 중요한 평가요소라는 점은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회사 자체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정부의 지원가능성”, “모기업의 지원가능성”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구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1 2013년 동양사태 이후 독자등급의 도입을 서두르던 당국은 최근 “시장충격을 고려한 신중론”으로 급선회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엉터리 대기업 계열사나 부실 공기업은 또 다시 생명을 연장하며 자금시장에서 갑질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1. 이런 유의 회사 채권등급 보고서를 읽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부실한 매출, 과다한 부채 등등 등급강등의 요소가 이러이러한데 정부의 지원가능성이 있으므로 AAA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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